벨라스케스의 <이솝>이다. 왕실 사냥터에 세워진 별장 토레다데라파라다의 벽면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작품이다. 우리에게 《이솝 우화》로 유명한 이솝은 기원전 6세기 인물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따라서 이 그림은 실제 모델을 두고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벨라스케스가 그에 대한 지식과 관념으로 만들어낸 상상적 인물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벨라스케스의 이솝은 이탈리아의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델라 포르타가 쓴 인상학 서적의 ‘황소머리 유형’을 참고했다. 이솝은 학식과 재능에서는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였지만, 노예로 태어나 델포이 신전에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다는 누명을 쓰고 절벽에 떠밀려 죽은 비운의 인물이다. 소크라테스도 추남 중의 추남이었다고 하나 이솝은 그보다 더 흉했고, 심지어 곱사등이에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 이솝은 허름한 옷차림과 주름 가득한 큰 얼굴의 볼품없는 중년 남성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무심한 듯 던지는 시선 속에서 알 건 다 아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현자의 총기가 서려 있다. 짙은 어둠의 왼쪽 벽 배경은 오른쪽으로 갈수록 점차 옅어져 바닥의 물건들과 함께 공간의 실제감을 높이고 있다.
〈바닥에 앉아 있는 난쟁이. 1644년. 〉는 돈 세바스티안 데 모라(Don Sebastian de Morra)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거의 움직이는 장난감 수준의 취급을 받던 이들 난쟁이는 꽤 높은 보수를 받긴 했지만 때로는 심지어 어린 왕자나 공주가 받아야 할 체벌을 대신 받기도 했다. 두 발을 나란히 한 채 앉아 있는 난쟁이는 아마도 화가의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뭉툭한 손과 짧은 다리는 그의 신체적 결함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지만, 날카롭고 강직한 눈매에는 위엄이 살아 있다. 이처럼 벨라스케스는 비단 합스부르크 왕족이나 고관대작뿐 아니라 왕실을 지키는 시종, 시녀, 그리고 광대나 난쟁이 등도 자주 화폭에 담았다. 아무래도 왕가의 초상화보다는 이런 인물들을 그릴 때 좀 더 자유롭고 과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광대 파블로 데 바야돌리드. 1635년〉의 경우는 벽과 바닥을 가르는 경계도 없으며, 그곳을 실제 공간처럼 느끼게 하는 어떤 것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경의 색조와 빛의 양을 미묘하게 조절한 뒤 마지막 방점처럼 찍은 그림자 때문에 인물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바닥에 발을 붙이고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기막힌 배경 처리는 고야나 벨라스케스 등 스페인 회화에 깊은 감동을 받은 프랑스의 19세기 화가 마네가 〈피리 부는 소년〉을 그리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레스코노의 초상〉 이다. 1635-1645년.
벨라스케스의 <El bufón Calabacillas. 호박>이다. 1635-39년.
벨라스케스의 <개와 함께 있는 난쟁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광대 돈 크리스토발〉 이다. 163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