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관/프라도미술관

벨라스케스 시녀들 외

boriburuuu 2020. 11. 20. 12:43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다. 그림 속에 이처럼 시녀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시녀들〉이라고 불리지만, 〈시녀들 및 여자 난쟁이와 함께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로 적혀 있을 뿐이며,  〈벨라스케스의 자화상〉 또는 〈펠리페 4세의 가족〉으로도 불렸다. 〈시녀들〉이라는 제목은 1843년 이후에야 비로소 등장한다. 사실 작품 속 상황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벨라스케스는 어린 공주 마르가리타를 그리고 있다. 답답하고 지루한 나머지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몸이 움찔거리는 공주를 위해 시종들이 급하게 공주 주위로 몰려들어 달래고 있고, 한 시녀는 공주에게 화장품을 들이밀고 있다. 때마침 공주가 지루한 모델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보기 위해 국왕 부부가 행차했다. 그들의 등장은 거울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달리 볼 수도 있다. 벨라스케스는 현재 관람객의 위치에 서 있는 국왕 부부를 그리는 중이다. 아빠 엄마가 모델을 서고 있는 장면을 보기 위해 공주는 시종들을 거느리고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도 가능하다. 화가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자신을 제대로 평가해주고 있는 국왕 부부와 궁중의 시녀들 그리고 공주까지 곁다리로 그리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의 캔버스 안에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바로 이 그림이 스케치, 혹은 마감되기 직전의 상태로 그려져 있을 것이다. 대형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이니만큼 이 그림은 최대한 거리를 확보한 채 봐야 전체 화면을 조감할 수 있다. 마치 그런 상황을 예견한 듯 벨라스케스는 그림 속 대상들을 촘촘하고 세밀하게 하나하나 그리지 않고 대충 뭉개거나 흐릿하게 처리함으로써 오히려 그것들의 사실성을 강조한다.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의 결이나 머리카락, 심지어 멍하니 앉아 있는 개의 털 등은 멀리서 보면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더듬는 듯하다. 하지만 바싹 다가가 관찰하면 화가가 의도적으로 구사한 느슨한 붓 자국이 확연히 느껴진다. 이런 기법은 훗날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예를 들어 모네의 그림이 멀리서 보면 그 전체적인 인상이 무척이나 자연스럽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툭툭 선이 끊어져 있기 마련이고, 색 또한 자연색을 벗어나 있으며 무엇보다 붓 터치가 엉성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떠올리면 알 수 있다. 화면 왼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그림 속에서 마르가리타 공주만큼이나 압도적인 지위를 자랑하는 벨라스케스 자신은 다소 거만하게 관객을 쳐다보고 있다. 그의 가슴에는 붉은 십자가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바로 ‘산티아고 기사단’의 표식이다. 이 기사단은 무엇보다도 순수한 혈통의 귀족만이 가입할 수 있었다. 중세에 비해 미술가의 위상이 현저히 높아졌고 그 자신도 펠리페 4세가 가장 총애하는 궁정화가로 군림할 수 있었지만, 그의 목표는 아무래도 ‘진짜 귀족’이었다. 출신 탓에 몇 번 탈락의 고배를 마시던 그는 드디어 왕을 비롯해 교황의 특별 허가까지 받아내며 기어이 그 꿈을 이루었다. 그림 속 훈장은 작품이 완성된 지 몇 년이 지나 비로소 귀족의 칭호를 거머쥔 뒤 수정, 첨가한 것이다.

벨라스케스의 <바쿠스>다.  1628-1629년.  벨라스케스는 궁정화가들이 참여한 회화 시합에서 승리하면서 왕의 신임을 얻게 되고, 이윽고 〈바쿠스〉를 제작해 왕의 마음을 확고하게 사로잡게 된다. 이 작품은 술의 신 바쿠스(디오니소스)가 농부들 틈에 앉아 한 사람에게 화관을 씌워주는 장면으로 연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농부들은 비천한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지만, 벨라스케스는 그들을 힘겨운 노동을 이겨낸, 그야말로 신의 축복을 받을 만한 존재로 그리고 있다. 한동안 〈술꾼들〉이라는 제목으로 불렸던 이 그림은 중앙의 모자를 쓴 남자의 흥겨운 표정에서 보듯 낙천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다른 인물들보다 훨씬 매끈하고 환한 피부를 가진 바쿠스는 카라바조의 〈바쿠스〉를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신이라기보다 바쿠스신의 역할을 맡았던 젊은 배우의 모습인것 같아 보인다. 바쿠스의 상징인 포도화관을 쓰고 그다지 진지하지 않은 모습으로 자기를 숭배하는 신도들에게 월계관을 씌워주고 있다. 카라바조처럼 신의 모습이라기보다 실존 인물을 그린듯하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사람들의 웃음이 엄숙한 대관식을 즐거운 여흥거리로 연출하며 그림의 해석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있다. 아마도 이 장면은 싱화적 에피소드를 패러디하고 있거나 어떤 문학이나 축제를 상기시키는 풍자적인 장면인득하다.  화면 아래 바쿠스의 발치에 놓인 술병, 그릇, 술잔 등의 묘사가 매우 뛰어나다. 테라코타로 만든 물병과 헝겊 옆에 쓰여진 밑 부분만 보이는 유리병의 질감이 잘 묘사되어 있다. 아주 얇은 층으로 빛의 농담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며 유리 표면에 반사된 빛이 유리병의 부피감을 전해준다.  화가로서 쌓아올린 벨라스케스의 정확하고 사실적인 묘사 기술이 집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쌍처럼 보이는 그림이다. <기도하는 필립 4세>다. 1655년.

벨라스케스의 <기도하는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다. 1655년.

벨라스케스의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다.  1652-53년.

벨라스케스의 <말 등에 올라타는 오스트리아의 마가렛 여왕 >이다. 1630-1640년.

벨라스케스의 <필립 4세의 초상화>다. 16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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