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관/프라도미술관

정물화

boriburuuu 2020. 11. 22. 11:20

멜렌데스는 자신이 그린 그림 몇 점을 훗날 카를로스 4세로 왕위에 등극하는 왕세자 부부에게 보내 인정받으면서 그림 주문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왕세자 부부가 멜렌데스의 그림을 걸어두려고 했던 곳이 하필이면 왕립아카데미 건물 2층이어서 결국 전시되지 못하고 있다가, 훗날 아란후에스 궁정으로 옮겨져 소장되었다. 이는 당시 스페인 사회가 심지어 미술계마저도 실력보다 인맥과 처세술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루이스 멜렌데스의 <주방용 음료, 오렌지, 마늘, 조미료, 요리기구가 있는 와인 의 정물화>다. 1772년.

루이스 멜렌데스의 <살구, 빵, 캔버스 위에 있는 오일 용기가 있는 와인 >이다.

루이스 멜렌데스의 <정물화>다.  1770년.  검은 배경, 명료한 선 그리고 사진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인 묘사는 산체스 코탄이나 수르바란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대상들의 표면 처리가 너무나도 뛰어나 눈으로 보는 그림이 아니라 거의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거칠거나 부드러운 모든 질감을 느낄 수 있으며 정물의 밀도감까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냄새까지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여기 신선하고 딱딱한 빵은 코르크 표면처럼 거친 질감이 느껴진다. 그만큼 작은 구멍까지 꼼꼼히 표현되었고 뒤에 놓인 둥그런 나무통을 두르고 있는 벨트의 질감과 나무 표현의 묘사는 정말 섬세하다.

루이스  멜렌데스의 <체리, 자두, 주전자, 치즈 접시가 있는 와인 >이다. 1760년.

후안 산체스 코탄은 오르가스에서 태어나 주로 톨레도에서 활동했다. 많은 미술사학자들은 검은 배경이 인상적인 그의 깔끔하면서도 섬세한 정물화를 두고 고대 로마의 학자 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나오는 일화를 언급하곤 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고대 그리스의 제욱시스는 자신이 그린 포도송이가 너무나 완벽한 나머지 새가 날아들어 그것을 쪼려다가 죽었다며 의기양양해했다. 자만에 찬 그는 파라시우스에게 어서 그림을 보여달라며 그림 앞 커튼을 열어젖히려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커튼이 바로 파라시우스의 그림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림이 ‘완벽할 만큼 진짜’ 같을수록 훌륭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사람의 눈을 속여 그것을 그림이 아니라 실제 같이 느끼도록 하는 기법은 트롱프뢰유(‘눈을 속이다’라는 프랑스어에서 나온 말이다)라고 불리는데,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는 단연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물화는 16, 17세기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화가들이 자주 그렸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받는 만큼 이 지역 회화의 특성이 전해진 스페인에는 ‘보데곤’이라 하여 식기나 요리 재료들을 그린 그림이 유행했다. 그림은 스페인 가정의 부엌 모습을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천정에는 레몬과 사과가, 그 곁에는 사냥물이 매달려 있다. 아래 왼쪽에도 잡은 새들을 꼬챙이에 꿰어 놓은 모습이 보인다. 선반 위 늘어진 당근과 무 옆에 엉겅퀴과의 채소 카르둔도 있다. 화가 자신이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평신도 자격으로 세고비아의 한 수도원에 들어간 전력까지 있어 그의 작품은 말 그대로 영적인 훈련을 위한 묵상의 대상으로, 인간의 죄와 그 정화에 대한 일종의 종교화로 읽히기도 한다. 예를 들면 카르둔은 창세기의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게 되리라”(3장 18절)라는 구절을 근거로 원죄를 안고 낙원에서 추방된 뒤 시작된 인간의 노동, 그 힘겨움을 암시하는 것으로 본다. 나아가 사과는 원죄를 의미하며, 레몬은 독을 제거하는 효능으로 인해 죄의 정화로 읽기도 한다. 하지만 정물화를 무조건 종교적 상징으로만 읽는 것은 동전의 한 면만 바라보는 것과도 같다. 당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고, 그만큼 늘 봐오던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찰이 요구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수르바란의 <정물화>다.  1633년경.  종교화가 주류였지만 수르바란은 정물화도 충분히 가치있는 작품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산체스 코탄의 계보를 잇는 화가로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사물은 단순히 늘어 놓은 것 같지만 양 끝의 금속 찻잔 받침의 곡선이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고 중앙의 흰색과 붉은 색의 테라코타 그릇이 살짯 다른 위치에 놓여 화면에 깊이감을 주게 구성되었다.  배경은 어둡고 앞쪽 왼편에서 들어오는 빛이 사물에 반사되어 질감을 드러내 항아리에서 구와 같은 볼륨감이 느껴진다. 항아리 둘레를 도는 부드러운 줄무늬 모양이 탁월하게 묘사되었고 오른쪽 손잡이는 어둠에 가려져 손잡이라는 느낌만 살짝 준다.

'스페인 미술관 > 프라도미술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벤스 2  (0) 2020.11.22
피터 폴 루벤스 1  (0) 2020.11.22
모랄레스, 베로네제,귀도 레니,바로치  (0) 2020.11.21
벨라스케스 3  (0) 2020.11.21
벨라스케스 2  (0) 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