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이다. 1639년. 새로 지은 부엔레티로 궁을 장식하기 위해 펠리페 4세는 플랑드르와 이탈리아 등으로부터 다량의 작품을 주문하였다. 루벤스의 경우는 거의 1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제작하기로 계약되었는데, 〈파리스의 심판〉도 그중 하나다. 그림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자신 앞에서 한껏 미모를 과시하는 세 여신을 심사하는 장면이다. 올림포스 신들의 연회에 정식으로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은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자가 새겨진 사과를 신들의 식탁에 던졌다. 하지만 누구를 뽑아도 뒤끝이 좋지 않을 것을 염려한 신들은 그 사과를 인간 세상으로 던져버렸다. 신들의 분란이 인간 세계의 분란으로 이어진 것을 그림 속 파리스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그의 뒤에는 뱀이 꼬여 있는 지팡이를 늘 들고 다니는 머큐리(헤르메스)가 서 있다. 물망에 오른 세 여신 중 가장 왼쪽은 미네르바이다. 곁에 있는 방패를 통해 전쟁의 여신인 그녀를 식별할 수 있다. 중앙의 여신은 화살통을 맨 아들 큐피드를 대동하고 있어 비너스임을 알 수 있다. 화려한 모피 옷을 걸친 오른쪽 여신은 주피터르의 아내 주노이다. 유난히 광채가 나는 비너스의 머리에 아기 요정이 장미가 달린 화관을 씌우려는 모습으로 보아, 사과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에게로 돌아갈 듯하다. 장미는 종교화에서는 주로 마리아를 상징하지만, 신화에서는 비너스의 꽃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사과를 주면,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할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예쁜 여자’에 대한 집착은 파리스도 비켜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러나 비너스가 소개해준 여인은 하필이면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로, 유부녀였다. 파리스가 그녀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감행하자 스파르타가 트로이에 전쟁을 선포해 그 기나긴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여신들의 몸매는 살집이 강하게 느껴진다. 풍만한 여체는 루벤스 특유의 밝고 환한 빛을 타고 꿈틀대며 농밀한 관능을 자극한다.
루벤스의 <삼미신>이다. 1630-1635년. 비너스를 모시는 세 여신이 정원에서 서로 회동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보통 삼미신 그림은 여인의 몸을 이쪽 저쪽 여러 시점으로 감상하려는 남성 후원자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해소하는 데 적격이었다. 이 여신들 역시 루벤스의 그림답게 풍만한 여체를 한껏 자랑하고 있다. 그가 그린 분홍빛 살짝 감도는 여인들의 피부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루벤스는 첫 아내와 사별한 뒤 나이 쉰을 넘어 자기보다 무려 서른일곱 살이나 어린 엘레나 푸르망과 재혼했다. 결혼 당시 그녀의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아내들에 대한 루벤스의 애정이 각별했는지, 이 그림 속 왼쪽 여신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엘레나 푸르망을, 그리고 오른쪽은 전 부인 이사벨라 브란트를 모델로 했다. 부인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다분한 만큼 루벤스는 이 작품을 누구에게도 팔지 않고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루벤스의 <필리포멘의 인식>이다. 1609년.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스파르타와 싸운 아에키아 연맹의 전략가이자 장군인 필로포멘은 메가라시를 방문했다. 그의 차분하고 겸손한 모습 때문에, 그 집의 아가씨는 그를 하인과 혼동하여 일하게 했다. 현재 장면은 남편이 자신의 성격의 웅장함을 숨기고 있는 겸손한 외모 아래 장군의 진정한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을 묘사한다. 루벤스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직후에 그려진 이 작품은 고전 문화에 대한 예술가의 심오한 지식을 드러낸다.그것의 공식적인 측면, 강력한 인물 및 빛에 대한 거의 장신구적인 대우 또한 그의 남쪽 영향을 목격한다. 이 두 예술가가 같은 작품에서 함께 수행한 아이디어는 루벤스와 스나이더스의 유익한 협력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한 협력은 사실 플랑드르 예술가들 사이에서 꽤 빈번했다. 루벤스는 전경에 있는 큰 정물화가 스나이더스에 의해 이루어지는 동안 이 작품을 만들었는데, 스나이더스는 칠면조나 백조와 같은 그의 경력 내내 반복할 동물들 중 일부를 묘사하면서 정물에 대한 같은 취향을 보여준다.이 작품은 마드리드의 알카자르 궁전에 걸려 있던 1660년 스페인에서 처음 등재되었다.
루벤스의 <성 조지와 용>이다. 1606-1608년. 자코포 데 라 보라긴의 황금 전설에 따르면 세인트 조지는 실린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용을 죽여서 페릴에서 공주를 구한다. 이 그림에서 기독교 영웅은 흰색 말을 타고 검을 휘둘러 용을 무찌른다. 옆에서 공주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 작품은 루벤스의 젊은 시절 제작되었으며, 이탈리아로 여행하면서 그 기간부터 대가들의 영향을 받은 예이다. 또한 그 당시부터 그의 작품의 특징은 직접적인 빛과 매우 역동적인 구성의 사용했으며, 실제로 캔버스를 두 부분으로 나누는 말의 강력한 대각선 배치를 볼 수 있다.
루벤스의 <동방박사의 경배>다. 1609년. 루벤스가 1628-29년 외교 사절단으로 마드리드를 방문했을 때 그는 이 그림을 발견했는데, 이 그림은 1609년 앤트워프 시의회를 위해 자신이 그린 것으로, 현재 필립 4세의 소장품에 속해 있었다. 그는 그 구성을 상당히 바꾸었다. 그는 장면의 상단과 오른쪽에 스트립을 추가하고 그림의 표현을 티티안에서 크게 영감을 얻은 스타일에 맞게 조정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고귀한 지위를 의식해서 금사슬과 칼로 말을 탄 자신의 초상화를 포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