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관/프라도미술관

고야 풍속화 위주

boriburuuu 2020. 11. 22. 11:41

고야가 소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것은 〈양산〉처럼 성 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왕실 여자들에게 스페인 사람들의 낙천적인 일상을 보여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신화나 종교적 주제를 다루는 ‘역사화’에 대한 왕실의 선호가 주춤하기 시작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18세기가 무르익으면서 프랑스를 위시한 서구 미술계는 딱딱하고 고루한 역사화보다는 귀족들의 향락적인 문화를 담는 아기자기하고 세속적인 로코코 미술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왕가 역시 프랑스 왕가 부르봉의 혈통으로 이어지면서 소위 ‘프랑스적인 것’에 대한 애정이 두드러졌고, 로코코 역시 그런 연유에서 자연스레 흡수되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이 퇴폐적이기까지 한 귀족 놀음들에 대한 계몽주의의 비판이 거세지자 스페인 지식인들 역시 각성하기 시작했다. 〈부상당한 석공〉이나 〈겨울(눈보라)〉은 가난하고 혹독한 삶을 겪어내고 있는 스페인 소시민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부상당한 석공〉는 원래 술 취한 사람을 동료들이 옮기는 내용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고야는 가톨릭의 엄격함이 몸에 베어 있던 스페인 왕실에서 술에 취해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들의 추태나 주사를 혐오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이를 부상당한 모습으로 바꾸어 버렸다. 졸지에 이 작품은 소위 산업재해보험처럼, 작업 중에 부상당한 노동자들에게 국가가 지원하는 법령을 막 발표한 왕실의 업적을 선전하는 그림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기게 되었다. 1786-1787년.

 

〈결혼〉은 소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네덜란드 장르화의 전통을 일견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장르화는 신화, 종교의 역사적 주제를 벗어난,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묘사한 그림을 일컫는다. 정중앙 검은 옷을 입고 화면 왼편을 바라보는 신부의 얼굴은 결혼에 대한 환상이나 설렘보다는 왠지 슬픔과 체념, 그리고 두려움이 더 가득해보인다. 그런 신부의 뒤를 쫓는 붉은색 옷차림의 남자는 여자들이 애정을 느끼기 힘든 추남으로 그려져 있다. 말하자면 이 그림은 돈에 의해 팔리다시피 하는 가난한 여자의 모습을 담은 슬픈 풍속사라 할 수 있다.  1791-1792년.

〈꼭두각시〉는 한편으로는 귀족 여인네들의 즐거운 놀이문화를 담은 로코코 풍의 유쾌한 그림으로도 볼 수 있지만, 돈 많은 여자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살아야 하는 광대의 슬픔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791-1792년.

고야의 <양산>이다. 1777년.  〈양산〉은 카를로스 4세 왕세자 부부가 살던 엘파르도 궁으로 보낼 태피스트리의 밑그림으로 제작된 것이다. 당시 태피스트리 그림은 대부분 그리스 로마 신화 혹은 종교적 주제가 주를 이루었지만, 고야는 이탈리아로부터 시집와 그렇잖아도 적적한 터에 신분상 궁 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세자비를 위해 스페인 소시민들의 삶을 아기자기하게 담아내기로 했다. 그림 속 두 남녀는 각기 다른 복장을 하고 있다. 여자는 전형적인 프랑스 부유층 옷을 입고 있는 반면 초록 양산을 든 남자는 이 시기 스페인에 유행하던 ‘마호’ 옷차림이다. 마호(Majo, 여성의 경우 마하(Maja)라고 부른다)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살던 집시들을 부르는 말이었으나 점차 하층민으로 변변치 않은 일을 하며 생계를 이으면서도 빼어난 패션 감각을 뽐내고 살던 소위 ‘한량’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이들의 이른바 ‘집시풍’ 패션은 스페인 대중과 귀족들 사이에도 크게 유행했다. 한편 당시 왕가의 혈통이 합스부르크가 아닌 프랑스의 ‘부르봉’으로 이어지면서 스페인 상류사회에서는 자연스레 프랑스 풍이 대세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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