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관/프라도미술관

프란시스코 리발타. 코에요(산체스, 클라우디오)

boriburuuu 2020. 11. 22. 15:27

프로테스탄트의 위협에 대한 저항과 가톨릭 자체의 개혁을 위해 몇 차례의 긴 공의회를 거친 교회는 신도들의 신앙심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는 ‘반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 미술을 주도하였다. 대체로 반종교개혁 성향의 그림에는 성인의 일화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신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그저 머릿속으로만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체험하게 함으로써 보다 크고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다. 스페인의 17세기 미술에서 유난히 성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고, 나아가 그들의 모습을 마치 실제 인물의 초상화처럼 크게 클로즈업해 등장시키곤 하는 것은 스페인이 그만큼 강력한 가톨릭 국가였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성 베르나르두스의 환상〉은 발렌시아에서 활동하던 화가 프란시스코 리발타(Francisco Ribalta, 1565~1628)가 자신의 후원자인 후안 데 리베라 대주교가 소장하고 있던 카라바조의 모사본들을 연구한 결과 탄생할 수 있었다. 극명한 빛의 대비와 압도적인 사실감이 특징인 카라바조의 화풍이 이제 지중해를 거쳐 발렌시아 항구를 통해 리발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림은 예수가 친히 십자가에서 내려와 성 베르나르두스를 보듬는 신비한 체험의 순간을 담고 있다. 성 베르나르두스는 클레르보 대수도원을 설립하고 수도원 제도를 창시한 성인이다. 짙은 어둠에 가려 있지만 성인을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이 얼마나 따사로운지는 성 베르나르두스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친밀도는 거의 관능적인 느낌까지 준다. 감정적인 자극을 강조하는 바로크 미술에는 딱 꼬집어 ‘그렇다’고 말할 수 없지만, 왠지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 드물지 않았다.

〈천사에게 위안받는 성 프란체스코〉는 성 프란체스코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 한 천사가 나타나 음악을 연주해주어 어린 시절 성인이 즐긴 음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그 병을 치유했다는 전설을 담은 그림이다. 천사나 성인이 입고 있는 옷 그리고 침대보와 양털의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리발타가 사물에 닿는 빛의 변화를 세밀하게 관찰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천사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빛과, 바로 오른쪽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 어느 존재는 그림의 분위기를 한껏 신비롭게 연출한다. 다소 과장된 바로크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성인의 발과 손에 난 상처는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오상을 실제로 체험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산체스 코에요의 〈이사벨 클라라 에우헤니아 공주와 막달레나 루이스〉다. 1585-88년. 펠리페 2세의 딸 이사벨 공주와 그녀의 보모이자 궁정의 시녀이기도 했던 막달레나를 함께 그린 초상화이다. 막달레나는 펠리페 2세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덕분에 왕이 국내외 순방을 떠날 때 수행하기도 했고, 가끔은 직언을 서슴지 않아 왕실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플랑드르 화가답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정교하고 꼼꼼한 터치로 그려진 공주의 의상은 막달레나가 입은 검은색의 수수한 옷과 대비되면서 더욱 압도적으로 그 화려함을 자랑한다. 이들은 서 있거나 무릎을 꿇은 자세의 차이뿐 아니라, 각자의 배경이 되는 고급스러운 커튼과 칙칙한 벽으로도 대비를 이룬다. 이사벨 공주의 손에는 이 모든 부와 권력을 가능케 해준 아버지 펠리페 2세의 얼굴이 새겨진 카메오가 들려 있다.

클라우디오 코에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승리〉 1664년. 클라우디오 코에요는 카를로스 2세 때 활동한 궁정화가였다. 당대 화가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루벤스나 티치아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벨라스케스처럼 사실주의적인 화풍을 펼쳤지만, 바로크 화가답게 웅대하고 환상적이며 동적인 구성이 가득한 화면을 펼쳐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승리〉에서 성자의 근엄하고도 우아한 형상은 극도의 사실감을 과시하지만 하늘을 떠다니는 천사, 기이한 형태와 색으로 얼룩진 구름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마땅히 사랑해야 할 신을 사랑하는 자가 의인(義人)이고, 신을 미워하면서까지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악인(惡人)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성인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기독교 초기 시절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중세 신학의 기틀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세계 3대 참회록의 하나로 자서전격인 신앙 고백서 《고백론》을 저술했다. 그림 속 아우구스티누스는 발치에 놓인 조각상을 무심한 듯 쳐다보고 있다. 고대 조각상들은 이른바 우상숭배를 암시하며, 그 곁에 악마의 상징이자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이 그려져 있다. 너풀거리는 그의 하얀 옷은 구름과 뒤섞이며 푸른빛을 발하는데, 이는 주홍색 겉옷과 황금색 주교관의 색과 대비된다.

클라우디오 코에요 〈성 루이 왕의 경배를 받는 성모자〉 1665-1668년. 〈성 루이 왕의 경배를 받는 성모자〉는 십자군 전쟁에 두 번이나 참여했고, 역시나 전쟁 중 튀니지에 원정을 떠났다가 흑사병에 걸려 사망한 프랑스의 왕 성 루이 9세(Saint Louis, 1226~1270)를 그린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프랑스의 왕권을 물려받은 그는 열두 살에 왕위에 올라 카스티야 출신 어머니의 섭정에 의존했지만, 여러 개혁 정치를 통해 약한 자를 구제하는 데 앞장섰다. 아기 예수는 성모의 무릎에 앉아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자신의 외할머니 안나가 건네는 꽃을 받아들고 있다. 그림 하단 왼쪽에는 양을 이끌고 있는 세례 요한이 자신의 상징이기도 한 낙타 털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 오른쪽에는 성 루이가 이들 가족에게 경배를 드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의 앞에는 홀과 왕관이 놓여 있다. 바로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다. 드라마틱한 빛의 구성, 늘어진 커튼이나 호사스러움 등은 높은 경지에 오른 클라우디오 코에요의 바로크적 회화 기법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