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관/프라도미술관

페데라, 마이노, 후안 미란다(괴물)

boriburuuu 2020. 11. 22. 17:18

안토니오 데 페레다의 <제노아의 구원>이다.  1634-1635년.  스페인의 동맹국인 제노아가 사보이 공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포위된 것을 스페인의 명장 산타크루즈 후작이 구원하는 장면을 담았다. 호호백발로 그려진 제노아의 통수권자는 중앙에 갑옷을 입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산타크루즈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림 속 이들이 입고 있는 의상, 예컨대 모자 소매 장식 등은 워낙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티치아노를 연상시킨다. 화면 왼쪽의 창들은 그가 벨라스케스의 〈브레다의 항복>을 참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후안 바우티스타 마이노의 <바히아의 탈환〉이다.  1635년.  엘 그레코의 제자로, 이탈리아 고전 바로크의 대가 안니발레 카라치에게도 그림을 배웠다. 한때 도미니쿠스 수도회에 들어가면서 붓을 꺾었지만, 펠리페 3세의 명을 받고 궁정에 들어와 당시 왕자였던 펠리페 4세의 개인 그림 교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 시절 그는 궁정에서 열린 그림 경연대회에서 우승자로 벨라스케스를 선택하는 탁월한 안목을 자랑하기도 했는데, 이윽고 벨라스케스와 함께 부엔레티로 궁정의 방을 장식하게 된다. 그림은 스페인-포르투갈 연합군이 신대륙 브라질에서 네덜란드를 대파시킨 장면을 담고 있다. 오른쪽에는 네덜란드 군대의 장수가 초록에 노란 옷을 덧입은 스페인-포르투갈 연합군 총지도자 돈 파드리코 데 톨레도에게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돈 파드리코 데 톨레도가 가리키는 태피스트리에는 전쟁의 여신 미네르바로부터 승리의 월계관을 받아 쓰는 펠리페 4세의 모습이 보인다. 펠리페 4세의 곁에는 올리바레스 공작이 있다. 그림 왼쪽에는 바히아에 사는 포르투갈 여인이 쓰러진 병사를 치료해주고 있다. 후안 바우티스타 마이노는 살육이나 피비린내 나는 장면 대신 진지하고 침착한 표정의 여성들이 남성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아이들과 더불어 아군이건 적군이건 상관없이 고통받는 이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른바 전쟁 속에 핀 자비의 꽃을 보는 듯하다. 카라바조 화풍의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후안 카레뇨 데 미란다의 <괴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두 그림은 에우헤니아 마르티네스 바예호라는 여자 아이의 초상화로 한 점은 누드로 연출되어 있고, 또 다른 한 점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들은 고야의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마하 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스페인을 비롯한 서구 옛 왕실에서는 가끔 신체적으로 기형인 이들을 기용해 왕실 아이들이 장난감이나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놀도록 했다. 그녀의 선천적인 기형에 대한 세인들의 호기심은 벗은 몸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화가는 그러한 관음증적 욕구에 부응해 이처럼 잔인하고 비인격적인 초상화를 제작했다.  옷을 벗은 여자 아이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1680년경 제작

후안 카레뇨 데 미란다의 <마리아나 데 아루스트리아의 초상화>다. 1670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후안 카레뇨 데 미란다는 화가인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마드리드로 건너와 벨라스케스의 도움으로 왕실 화가가 되었다. 그 역시 알카사르궁 장식에 동원되기도 했으며 몇몇 종교화도 제작했지만, 무엇보다도 왕실 가족의 초상화로 이름을 높였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도 등장하는 마리아나 왕비(스페인어로는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라는 뜻의 ‘마리아나 데 아우스트리아’라고 표기한다)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3세와 스페인의 마리아 안나 사이에서 태어난 큰딸로, 펠리페 4세의 조카였다. 그녀는 펠리페 4세의 아들 발타사르 카를로스 왕자와 결혼할 예정이었으나 왕자가 요절하자 예비 시아버지였던 펠리페 4세와 결혼한다. 펠리페 4세는 첫 아내 이사벨과 사별한 터였다. 마흔이 넘었던 펠리페 4세로서는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다른 나라의 이익과는 전혀 상관없는 혈통이어야 했기에 며느리로 삼을 뻔한, 심지어 조카인 겨우 열다섯 살의 그녀와 막장 드라마 같은 결혼을 추진했던 것이다. 왕은 전처 이사벨과의 사이에서도 제법 많은 자식을 두었지만 거의 요절했고, 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다섯 명의 자식 역시 그리 수명이 길지는 않았다. 겨우 살아남은 두 아이 중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나오는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신성로마제국을 통치하는 삼촌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한 후 역시 요절했으며, 아들 카를로스 2세는 발달이 늦고 몹시 허약한 채로 왕위를 계승했다. 그림은 펠리페 4세가 사망한 후 병약한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펼치는 마리아나 데 아우스트리아의 근엄하고도 강직한 모습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