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술관/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고전 작품 2

boriburuuu 2020. 11. 24. 22:36

다시 국립 미술관으로 갔다. 어제 못봤던 작품을 다시 봐야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책읽는 여인>이다. 얼핏 보고 처음에는 르노와르의 작품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많이 다르다. 로코코 화가로 유명했던 프리고나르는 혁명 후 명성을 잃고 곤궁한 삶에 빠졌고 프랑스에서는 신고전주의가 유행했다. 이 그림도 그런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정말 단정하고 아름답다.

 

 

 

 

 

 

천정을 판테온처럼 만들어 놓았네.

고야의 <돈 안토니오 노리에가의 초상>이다. 1801 년. 카를로스 3세의 파란색과 흰색 리본이 안토니오 노리에가 베르메데스의 재킷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의 기사 작위, 다른 사무실 목록, 1801년 날짜는 식탁보와 시터의 손에 있는 종이에 스페인어로 새겨져 있다. 돈 안토니오는 1801년 7월 23일에 기사 작위를 받았고, 고야의 초상화는 그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관공서 묘사에서 관례처럼 고야는 스페인의 높은 회계 담당자를 직장에서 그렸다. 태연한 몸짓으로 돈 안토니오는 단추가 없는 조끼 안에 손을 얹고, 국가의 재정에 대한 권위와 통제권을 암시한다. 사실, 그의 행정부는 비참하게 비효율적이어서 국가 부채를 거의 두 배로 늘렸다. 1808년 나폴레옹 침략자들로부터 도망치던 돈 안토니오는 잘못 프랑스군과 협력했다고 생각한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고야의 <마리아 테레사 데 부르봉 왕가와 발라 브리가, 후기 백작 부인, 1783 >이다. 고야의 주요 초상화 위원회는 1783년 그가 37세 때 시작되었다. 그해 8월과 9월에 고야는 스페인 왕 카를로스 3세의 동생의 요청에 따라 왕자의 딸에 대한 매력적인 이미지를 포함하여 가족 초상화를 그렸다. 왼쪽 아래에 고야는 스페인어로 다음과 같이 썼다. " 세렌 유아와 돈 루이스의 딸인 세노리타 도냐 테레사는 2세 9개월의 나이다." 라고. 아이는 실제로 4 살 반이었다. 고야는 왕실의 시터의 나이를 잘못 묘사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었을 때 테레사는 카를로스 4세의 악명 높은 부패한 총리 마누엘 고도이와 결혼했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스페인 독립에 대한 그녀의 지지는 그녀에게 큰 인기를 가져다 주었다. 테레사는 마드리드 서쪽 산악지대의 아빌라 근처의 아버지 시골 궁전 테라스에 서 있다. 고야는 17세기 스페인의 궁정 예술가 디에고 데 벨라스케즈의 이 형식을 차용했는데, 그는 야외에서 개들과 함께 왕실 아이들을 묘사했다. 고야는 빠르게 일을 했고,

프란치스코 고야의 <폰테호스 후작부인, 마리아 아나 데 폰테호스 이 산도발 (1762-1834)의 초상>이다. 1786년.

장 오노레 프리고나르의 작품들이다. 왼쪽 작품은 <맹인의 buff>다. 1775-1780년. 

오른쪽의 작품은 <그네>다. 1775-1780년.

프랑수와 드루에의 <가족 초상화>다. 1756년.  화려한 채색을 주로하는 로코코풍 화가라 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다비드의 작품들은 언제나 밝고 아름다워서 참 좋다.<레이몽 드 베르니낙 부인의 초상>이다.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초상>이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는 미천한 신분을 딛고 일어나, 19세기의 가장 성공한 화가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반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는 전무후무한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였다. 터너는 런던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런던 토박이였고, 정신이상인 어머니까지 두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불리한 조건들을 극복하고, 그는 어린 나이에 최고의 명문인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는 코벤트 가든 광장에서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이발소의 창문에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불과 열다섯 살의 나이에 왕립 아카데미에서 전문적인 전시회를 여는 등 급속한 발전을 보였다. 터너는 수채화로 지형학적인 풍경을 그리는 숙련된 화가로서의 자신의 명성을 빠르게 확립해나갔다고 한다. 영국에서 많이 보았던 윌리엄 터너의 작품들이다.

윌리엄 터너의 <달빛에 의해 석탄을 싣고 있는 용골 >이다. 1835년.

윌리엄 터너의 <로테르담, 페리 보트>다. 1833년.

 

 

 

 

 

 

 

 

 

 

나이아가라 폭포의 캐나다쪽 호슈폭포의 모습이다.

 

미술관이 문을 닫아 쫒겨 나왔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은 보지도 못했는데. 내일 하루밖에 시간이 없어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딸은 친구랑 왔은 때 볼 것도 없는 워싱턴이었다는데 나는 이틀밖에 시간을 잡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