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술관/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에두아르 마네

boriburuuu 2020. 11. 30. 12:48

에두아르 마네의 <늙은 음악가>다. 1862년. 이 그림에서 마네는 집시 소녀와 유아, 곡예사, 성게, 술주정뱅이, 그리고 래그피커가 나란히 있는 산책하는 음악가를 대표했는데, 이 음악가는 그의 스튜디오 근처에서 관찰했을지도 모른다. 겉보기에는 무심코 모인 이 모임은 도시 빈곤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마도 하우스만의 프로젝트에 의해 폐기될 것이다. 일화도 감상도 아닌 마네의 묘사는 편견이 없는 구경꾼의 세심한 중립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뚜렷하게 현대적인 모호성과 분리는 모든 마네의 작품의 특징이다. 마네는 색소를 혼합하기보다는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완성된 작품에서 예비 유화 연구의 즉각성과 직접성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 기법으로 생산된 효과는 학문적 방법을 사용하여 얻은 효과보다 더 날카롭고 바삭바삭했다. 1860년대 초 마네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모네와 르누아르는 그의 회화 방식에 감탄하고 인상주의로 알려진 스타일을 위조하면서 모방했다.

에두아르 마네의 <죽은 토리더>다. 죽은 토리더, 아마 1864년

에두아르 마네의 <1873년 오페라에서의 가면 무도회 >다. 1873년. 마네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이 그림은 그가 사랑했던 세련된 파리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시골에서 불편했고, 대신 도시의 화려함을 선호했다. 이 우아한 남성과 교태가 있는 젊은 여성들은 사순절 동안 매년 열리는 가면 무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마네는 현장에서  스케치했지만, 그의 스튜디오에서 몇 달 동안 그렸다. 그는 작가, 예술가, 음악가로 주목받는 몇몇 친구들의 포즈를 취했고 심지어 붐비는 장면에 자신을 포함시켰다. 그는 아마도 시청자를 내다보는 수염을 기른 금발 남자일 것이다. 그의 발치에는 쓰러진 댄스 카드에 화가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마네의 <철도>다. 1883년.  1873년 파리에서 가장 크고 분주한 기차역인 생라자르역은 이 그림에서 볼 수 없다. 열차 여행의 진보는 마네의 그림에서 여성과 어린이의 장르 묘사에 거의 보이지 않는 배경으로 남아 있다. 철책의 검은 막대에 의해 뒷받침되고 아래를 지나가는 기차에서 위로 올라온 증기 구름에 의해 고립된 좁은 공간에 묶여 있는 마네의 두 모델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이 여성은 1860년대 마네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인 빅토린 뮤런트로, 아이는 마네가 자신의 정원을 이용해 철도를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한 동료 화가의 딸이었다. 이 구성은 두 인물의 복잡한 대위법적 표현이다. 한 명은 파란색 활로 장식된 흰색 드레스를 입고 다른 한 명은 흰색으로 장식된 짙은 파란색 옷을 입고, 한 명은 좁은 검은 리본으로 묶인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검은 모자 밑에 흐르는 트림을 하고, 한 명은 뒤에 서서 익명의 기차와 건물을 보고, 다른 한 명은 시청자들과 직접 대치하기 위해 앞을 내다보고 있는 한 명의 성인이다. 마네는 1874년 파리 살롱에 네 편의 작품을 제출했다. 그 네 개 중 철도와 수채화 두 개만 받아들여졌다. 검토자들은 철도의 미완성된 출현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철도역 자체가 그림에서 잘 정의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마네의 <경주>다. 1875년.

마네의 <플룸 블란디>다. 1877년.

마네의 <화가의 정원에 있는 조지 무어>다. 1879년.

마네의 <여인의 초상>이다. 1879년.

에두아르 마네의 <멜론과 복숭아가 있는 정물>이다. 1866년.

가운데 그림은 <굴>이다. 1862년. 오른쪽 그림은 <배>다. 1880년.

왼쪽 그림은 <찰스 스패니얼 왕>이다. 1866년.         오른쪽은 <일본개, 타마>다. 18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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