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미술관/런던 내셔널 갤러리

내셔널 갤러리 크라나흐, 홀바인, 베로네제, 뒤러, 조르조네

boriburuuu 2020. 11. 26. 12:41

루카스 크라나흐의 <비너스와 큐피트>다. 1530년. 

어린 큐피트가 꿀벌 집을 훔치려다가 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어머니인 비너스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큐피트 몸의 옅은 색채는 주변 풀들의 짙은 녹색과 배조를 이룬다. 비너스는 사랑의 화살로 꿀벌들을 성나게 한 큐피트를 나무라고 있다. 오른쪽 상단부 하늘에 라틴어로 된 시구가 적혀 있는데 테오크리토스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며 헛된 현실의 쾌락 추구에 대한 도덕적인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1500년대 유럽에서 성병이 집단적으로 발생했다. 화며의 3/4을 지틍ㄴ 색의 수풀이 차지하고 있는데 창백한 주인공들의 몸과 대조적이며 수풀안에는 은신처로 몸을 피한 사슴 한 쌍이 보인다. 우아하고 귀족적이지만 자극적인 비너스는 마체로 모자와 목걸이만 치장하고 있다. 이 모습은 선악과를 권하는 관능적인 이브를 연상시킨다. 고전적인 비너스와는 달리 매우 날씬하고 유연하다. 여신의 발치에 있는 돌 위에 작가의 상징물인 날개 달린 뱀을 작게 그려넣었다.

크라나흐의 <자선>이다. 1530-1540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성 바울은 믿음, 소망 및 사랑이라는 신학적 덕목으로 알려지게 될 세 가지 특성을 논의한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의 사랑을 표현한 자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여기 그림의 맨 위에 있는 ‘카리타스’라는 글씨가 여성 인물을 식별한다. 자선은 14세기 이후 예술에서 자녀와 함께한 여성으로 의인화되었다. 자선은 그녀의 몸 주위를 휘감는 투명한 베일에 싸여 있다. 그녀는 크라나흐가 일했던 작센 궁정의 여성들이 입는 보석 스타일로 초커와 금 체인을 착용한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자선과 그녀의 아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왼쪽에 있는 소녀가 들고 있는 인형은 현대 스타일의 녹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크라나흐와 그의 작업장은 이 주제를 약 12번 그렸다. 다른 많은 버전에서, 자선은 풍경 속에 앉아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크라나흐의 <비너스와 큐피트>다. 1529년.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잎이 무성한 나무에 기대고 욕망의 신인 아들 큐피드는 그녀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훔친 벌집을 움켜쥔 그는 벌들이 떼지어 그를 쏘자 불평하지만 비너스는 그녀의 아들에게 관심이 없다. 대신 그녀의 관심은 우리를 향하고 있다. 나무 줄기에 라틴어 비문은 비너스에 대한 관심 부족과 그림의 도덕적인 점을 설명한다. 짧고 덧없는 즐거움은 슬픔과 고통과 섞여 있다. 그것은 큐피드의 사랑의 화살이 쏘이는 것을 암시하는데, 이것은 어떤 벌침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고통을 야기한다. 크라나흐는 이 주제의 수많은 버전을 그렸다  도덕성 메시지와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을 결합한 그의 묘사는 특히 그의 후원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한스 홀바인의 <외국 대사들>이다. 1533년. 

등장 인물은 쟝 드 당트빌과 조르주 드 셀브로이며 영국 주재 프랑스 외교관이었다. 이들의 옷차림에서 보이는 차이점에서 화가는 활기찬 삶과 관조적인 삶을 대비시켜 보이려 한 것 같다. 많은 관측 기구들은 정보를 제공하는데 두사람의 나이는 선반위의 물건에 써 있다. 홀바인은 어수선하게 늘어놓은 사물들의 맏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실상의 순간을 정지시켜 놓은 것 같은 광경을 관심을 공유했던 두 젊은 프랑스인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선반 위쪽은 아나톨리아풍 카펫으로 덮여 있고 시간을 측정하는 여러 기구들이 놓여 있다. 아래쪽에는 류트와 끊어져 나온 현, 루터를 찬양하는 내용의 책이 펼쳐져 있다. 로마풍의 모자이크 바닥에는 두개골이 놓여 있는데 화가의 묘사력을 시험해 본 것 같다. 이 작품은 사실적인 요소에 치중해 있는데 마치 현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것 같다.

한스 홀바인의 <다람쥐와 별을 가진 숙녀(앤 로벨?) >이다. 1526-1528년. 

짙은 흰색 털이 달린 부드러운 모자를 쓴 엄숙한 여자가 무릎에 붉은 다람쥐를 앉히고 어깨에 광택이 나는 깃털을 뽐내고 있다. 15세기의 일반적인 애완동물들, 이 동물들은 또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시터의 정체성에 대한 단서 역할을 한다. 그녀는 남편인 프란시스 로벨 경이 영국 왕 헨리 8세의 궁정에 고용된 앤 로벨로 생각된다. 이 별자리는 아마도 이스트 할링의 운율적인 말장난으로 의도된 것일 것이다. 이스트 할링은 최근 가족이 큰 재산을 물려받았다. 다람쥐는 로벨 가문의 전령에 나오는 견과류를 갉아먹는다: 이스트 할링에 있는 교회의 창문에는 스테인드 글라스에 있는 가족의 팔코트 두 개가 포함되어 있는데, 각각 6마리의 붉은 다람쥐를 보여준다. 위원회는 1526년 봄에 부부에게 아들의 탄생을 기념할 수도 있지만 부유한 토지 소유자로서의 새로운 지위를 과시했다.

파올로 베로네제의 <알렉산더 대왕 앞의 다리우스 일가>다.  1565-1570년. 

이수스전투에서 패한 페르시아왕 다리우스와 그의 가족들에게 베푼 알렉산더의 유명한 자비 일화로 작품을 구성하는데 더없는 소재이자 기회였다. 베로네제는 베네치아의 풍요로운 정신과 화려한 색채를 구현해 작품을 그려 때로는 티치아노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이 거대한 작품은 사실적인 묘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화가의 화려한 희곡적인 표현의 묘미가 잘 드러나 있다. 배경에는 친구였던 팔리디오가 설계한 것과 같은 방식의 아치 모양 복도가 대리석으로 이어져 있고 가득찬 햇살이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첫번째 줄의 인물들은 역광을 받아 배경의 매혹적인 빛과 대조를 이루 있다. 화가는 갖가지 사물들의 단단함, 성질과 조직, 무기와 갑옷, 동물들, 그 외 필요한 모든 것들에 대해 누구도 필적할 수 없을만큼의 재능을 펼쳐보였다.

베로네제의 <막달라마리아의 개종>이다.  1548년. 

이것은 베로네즈가 18세쯤에 그린 가장 초기의 작품 중 하나인데, 아마도 베로나의 고귀한 후원자를 위한 것일 것이다. 오른쪽에서 빛은 특정 위치, 아마도 예배당의 측벽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그림의 주제는 많은 논쟁의 문제가 있었지만 이제는 막달라 마리아의 개종을 보여주는 것으로 믿어진다. 중세 이후 서양 기독교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문란한 여성 또는 매춘부로 간주되었다. 마르다는 그녀의 영적 건강에 대해 걱정하면서 그녀의 여동생 마리아를 사원으로 데려가 예수의 설교를 듣는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히고 무릎을 꿇는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개종하여 경건한 삶으로 변한다. 목에서 미끄러지는 보석은 세속적인 것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기로 한 그녀의 결정을 암시한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화가의 아버지>이다. 1497년. 헝가리의 귀금속 세공사이자 뒤러의 첫 스승이기도 했던 아버지는 인상부터 엄격한데 화가는 번민하는 듯한, 또는 화나보이는 얼굴과 코에서부터 찡그리는 눈의 시선, 눈썹 한올 한올,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움직이는 듯한 모자의 형상에서 인물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묘사하는데 주력했다. 이 그림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5년전 화가 나이 26세였던 1497년 제작되었는데 처음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 2년에 걸쳐 제작되어 르네상스 풍취를 보이고 있다.

알브레히느 뒤러의 <성 제롬>이다. 1496년. 이 작은 양면 그림은 아마도 사적인 예배를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앞쪽에는 세인트 제롬이 나무 그루터기에 쐐기를 박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그리스도의 열정(십자가에서의 고문과 죽음)에 공감하여 바위로 가슴을 때린다.옆에 앉아 있는 사자는 발에서 가시를 떼어내는 순간부터 그의 동반자였다. 수년 동안 성인이 살았던 사막 또는 황야의 뒤러 버전은 특히 북유럽풍이다.예를 들어 그의 무릎 주위의 풀과 꽃은 면밀히 관찰되며 여러 가지 다양한 품종을 포함한다.작은 금핀치 두 마리가 개울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는데, 한 마리는 그 개울에서 물을 마신다(새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의 열정의 상징이었다). 그 반대는 어두운 하늘과 행성, 혜성이나 운석 또는 일식일 수도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으며, 아마도 계시록에 기록된 에반젤리스트 성 요한의 종말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

조르조네의 <시인에의 경배>다. 1500년경.

그림의 주제는 정확하지 않으나 황금시대의 신화에서 지배자인 평화의 신의 강림이란 설이다. 같은 숲안에 사슴, 공작, 표범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시인(시, 문학)에 대한 존경의 형태로 나타낸 것이란 해석도 있다. 의자에 앉은 인물은 파라솔과 월계수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월계수는 시와 예술을 상징한다. 왼쪽 바위의 그늘진 곳에 은둔자의 작은 형상이 보인다. 새들과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아 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잔에 담은 소시지와 다른 선물을 바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책들이 흩어져 있는 연단의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은 류트를 연주하고 있다. 무미건조하고 비대칭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강한 자연주의적 성격의 애정이 가득한 작품이다.

조르조네의 <일몰>이다. 1506-1510년.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흑사병을 막아주는 수호성인인 성 로코와 그에게 치료 받는 동료 고타르도이며 몰리서 승냥이와 싸우고 있는 말탄 기사는 성 조르지오이고 오른쪽 끝의 어두운 동굴에 보이는 사람은 전염병에 대항하는 수호성인인 성 안토니오다. 풍경을 통과하는 일몰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할 만큼 아름답다. 이 일몰은 멀리 푸른색의 지평선과 햇빛 비치는 알프스의 언덕으로 시선을 유도한다. 우아하고 아르다우며 엷고 따뜻한 햇빛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명암의 연기에 잠긴것처럼 보인다. 환상적인 지질학적 기본 요소들의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