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미술관/런던 내셔널 갤러리

내셔널 갤러리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

boriburuuu 2020. 11. 26. 09:43

미켈란젤로의 <세폴크로의 매장>이다. 1501-1506년.

운동선수처럼 보이는 예수의 몸은 부측을 받아 무덤 쪽으로 운반되고 있다. 왼쪽의 인물은 사도 요한과 아리마대 요셉으로 부분적으로 미완성이다. 두사람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 끈으로 매어 지탱하고 있다. 왼쪽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막달라마리아가 예수의 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오른쪽 아래 공간은 울고 있는 성모가 있었을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치밀한 구성을 이루고 있고 배경을 축소했음에도 파도의 역동적인 움직임 등 곤찰에 의해 선명한 윤곽을 강조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멘체스터 마돈나>다. 1494년.

이것은 아마도 미켈란젤로의 생존 그림 중 가장 이른 것일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망토를 검은 색으로 모델링한 것은 아직 마지막 파란색 코트가 없었고, 왼쪽의 천사들은 거의 시작되지 않았다.우리는 왜 그 그림이 완성되지 않았는지 모른다. 성모님은 그리스도와 어린 세례요한과 함께 바위에 앉아있다. 천사들은 양쪽에 서 있다 – 우리는 그들의 옷의 접힌 부분을 표시하기 위해 그려진 선과 전통적으로 그 위에 칠해질 분홍색 살색 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용된 녹색 언더페인팅 영역으로만 왼쪽에 있는 두 개를 알아낼 수 있다. 세례 요한은 낙타 가죽을 입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한 길을 준비하는 그의 역할을 제안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인물이 거의 전체 패널을 채우는 방식은 대리석 구호와 유사하며 조각가로서의 미켈란젤로의 훈련을 반영한다.

티치아노의 <나에게 손대지 말라>이다. 1510-1515년.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한 그리스도가 막달라마리아에게 나타나자 진정 예수인지 확인하려 매달리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색조의 구성과 인물의 심리가 잘 드러나는 행위와 조화되는 배경 등에서 스승인 조르조네의 화풍이 나타나는 화가의 청년시절 걸작이다. 신성한 주제와 전원의 주위 풍경은 매우 잘 어울리며 발 밑의 우거진 수풀, 멀리 보이는 양떼를 감싸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 등을 강조하여 표현했다.

티치아노의 <남자의 초상>이다. 1512년. 

모델은 시인 루드비코 아리오스토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젊은 시절의 자화상이라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청년 티치아노가 초상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 존형적인 예로 아주 유명한 작품이 되었다. 당시 베네치아파의 곤례를 깨고 흉벽을 비스듬한 방향으로 배치해 보는 이의 시선을 지나가게 했다. 가슴에 이어지는 탁한 비둘기색의 소매는 값비싼 직물에 딯아 진동하는 빛을 정확하게 표현했으며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화가가 3차원 공간에서 물체의 현태를 바꾸는데 굉장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소매의 초상화>라고 불리기도 했다. 렘브란트는 이 작품에 깊이 영감을 받아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다.

티치아노의 <다이아나와 칼리스토>다. 1556-1559년. 

님프 칼리스토는 사냥의 처녀 여신 다이애나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변장했다. 티티안은 다이애나가 캘리스토에게 사냥 후 옷을 벗기고 목욕하도록 강요하는 순간을 그리고 임신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을 그렸다. 이 드라마는 티티안의 자유롭고 표현적인 붓놀림으로 고조된다. 티티안은 1556년에서 1559년 사이에 가장 강력한 후원자인 스페인의 필립 2세를 위해 다이애나와 칼리스토, 다이애나와 액태온(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과 국립 갤러리 공동 소유)을 그렸다. 로마 시인 오비드의 변신을 바탕으로 한 이 그림들은 함께 전시되도록 설계되었고 그들의 역사를 통해 함께 남아 있었다. 이 흐름은 한 그림에서 다른 그림으로 이어지고 요소와 포즈가 메아리쳐 두 캔버스에 걸쳐 리듬을 만들어낸다.

티치아노의 <바쿠스와 아드리아네>다. 1522-1523년. 

이 작품은 페라라 공작 알폰소 데스테가 집무실을 장식하기 위해 의롸한 것으로 오비디우스와 카툴루스(시인)에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낙소스섬에서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는 갑자기 만취해서 춤추는 바쿠스의 행렬에 놀라고 있는데 바쿠스는 마치 그녀의 남편처럼 나타나 왕관을 하늘에 잇는 별의 고리로 바꾸고 있다. 대담무쌍한 젊은 신은 아리아드네를 잡기 위해 마차에서 뛰어내리고 있다. 포도 넝쿨로 만든 머리 관과 나부끼는 포도주빛 망토는 바쿠스의 표식이다. 앞에는 고대신의 모험을 암시하는 한쌍의 표범이 바쿠스의 마차를 끌고 있다. 반인반수의 괴물인 켄타우로스가 바쿠스 행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신의 위엄을 보여주는 의식에는 항상 코브라가 등장한다. 종종 파충류가 인간의 몸을 휘감는 모습으로 묘사되곤하는데 라오콘상을 떠올리게 한다. 티치아노는 바쿠스가 금마차에서 도약하는 순간을 포착했는데 여기에서 삶과 그림에 대한 화가의 사랑에서 비롯된  엷고 빛나는 색조의 활기찬 대소동을 볼 수 있다.  

티치아노의 <비너스와 아도니스>다.  1554년. 

 동일 주제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며 스페인 국왕 필리페 2세의 의뢰로 그려진 8편 중 두번째의 그림으로 영국 여왕 메리 1세와 결혼하기 위해 런던에 머물던 필리페 2세를 위한 그림이다. 사냥을 하다가 자신을 탄생하게 도움을 준 멧돼지에게 죽을 운명임을 알았던 비너스가 적극적으로 사냥을 말리지만 아도니스는 사냥을 떠나 죽게 된다. 운명을 거역할수는 없는 법인가 보다. 그가 죽은 후 흘린 빨간 피에서 붉은 장미가 피어났고 비너스가 흘린 눈물이 아네모네가 되었다는 그리스 신화의 내용이다. 이 그림은 티티안과 그의 스튜디오가 그린 많은 버전의 주제 중 하나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1553년 필립 공에게 전달되었으며, 나중에 스페인의 필립 2세에게 전달되었으며 현재 마드리드 프라도에 있다. 국립 미술관의 캔버스는 티티안의 작업장에서 티티안 자신이 그린 붓 그림 위에 예술가들이 그렸을 것이다.

 

티치아노의 <신중함의 우화>다. 1550년. 

삶의 다른 단계에서 세 남자의 머리가 세 마리의 동물의 머리와 짝을 이룬다: 늑대, 사자, 그리고 개. 세 개의 머리와 일치하도록 나누어진 라틴어 비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됩니다. '어제부터 배우는 것은 그가 내일을 망치지 않도록 신중하게 행동한다.' 이 그림의 의미와 목적은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 그림은 신중함의 우화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성은 그림 그리는 동안 광범위하게 수정되었다. 동물의 머리는 늦은 단계에서 추가되었고 상당히 간단히 처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