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가 되어 입장했는데 너무 훌륭한 명화들이 즐비해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1824년 은행가 존 줄리어스 앵거스타인의 컬렉션 38점을 의회가 사들여 공개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1838년 현 건물로 이전하고 르네상스 이탈리아 회화를 구입하는데 힘쓰고 기증도 받고 터너 컬렉션이 더해져 확장되었다.
먼저 마사초의 <옥좌 위의 성모와 아기 예수>1426년. 을 만났다. 피사의 카르미네 성당의 대예배당을 위해 스카르시로부터 의뢰받아 제작한 작품의 중앙부란다. 고대 형식을 본뜬 구조로 나무 의자는 선과 직각을 기본으로 했고 뚜렷한 테두리는 튀어나와 보여 성모자의 공간을 제한하고 있다. 성모의 푸른 망또는 신의 축복을 상징하고 뒤편의 두 천사는 엄숙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지만 앞의 두 천사는 악기를 든즌채 작품 외부로 시선을 두고 있다. 로마의 화려한 석관과 유사한 구조다. 이질적 느낌의 구도와 짙은 색감은 고대에 대항하여 현대적 화풍을 갈라지는 시초로 인정된다.
얀 반 에이크의 <터번을 한 남자>다. 1433년. 모델은 군주 또는 권력자로 추정되며 원형 그대로 보존된 15세기의 진귀한 회화 작품이다. 윗쪽에 플랑드르의 격언 "원하는 곳"이 아닌 "가능한 것"이 적혀 있고 아래에 제작일자와 서명이 써 있다. 빛을 투시법에 따라 이용해 형상의 모습과 외면적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배경이 어두워 인물이 도드라지는데 살짝 찡그린듯한 얼술은 엄숙함과 결단력을 보여주고 날카로운 시선은 도전적 에너지를 내뿜고 있어 모델의 오만한 성품이 눈에 띈다. 에이크는 간소하면서도 세세히 표현했는데 터번의 붉은 직물의 흐름과 주름의 효과에 주력했다. 천의 끝부분은 좀더 휘감긴 효과를 내고 어두움과 밝음의 극명한 대조를 강조한다. 북유럽 스타일로 복잡하고 세심하게 주름을 잡아 덮는 터번은 당시의 유행이자 능력과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얀 반 아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조반니 아르놀피니와 조반니 체나미의 결혼)>이다. 1434년에 그려진 그림인데 바닥의 개는 충성심을, 부부간의 정절을, 벗어 놓은 신발은 결혼 서약의 신성함을, 창틀의 과일은 선악과(원죄 이전의 아담과 하와의 상태)를, 벽에 걸린 묵주와 거울은 순결을, 샹들리에의 촛불은 결혼의 맹세를 각각 상징한다. 뒷쪽의 거울에는 방으로 들어오는 두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중 하나는 화가 자신일 것으로 추정된다.
로히르 반 데르 바이텐의 <귀부인의 초상>이다. 1460년경. 모델은 넓은 이마에 머리카락은 완전히 정리되어 있고 멋진 모자위로 플랑드르식 베일을 쓰고 있는데 당시 이탈리아에 퍼지고 있던 유행이었다. 여인의 손은 기하학적으로 분명한 형태와 비율로 그려졌는데 이도 15세기 이탈리아의 유행이다. 초상화의 대가인 바이텐은 사방으로퍼진 옷과 베일, 머리 모양의 크기 등에서 플랑드르의 세밀함과 기하학적 구성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대각선의 배치는 순백의 얼굴과 베일, 어두운 배경의 균형을 강조한다. 어두운 배경에서 형상을 나타내는 기술과 얼굴을 3/4선에서 절단하는 기법, 차갑고 선명한 빛은 플랑드르파의 전혀적인 특성이다.
피사넬로의 <성 에우스타키우스의 환시>다. 1435년. 피사넬로는 테피스트리 같은 원숙한 묘사력과 매혹적인 장식을 화용해 에베소서의 기적을 말한다. 메달에 새겨진듯한 우아한 모습으로 성인이 사냥을 나간 숲은 산토끼, 사냥개, 곰, 물새로 가득하다.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의 로마 장군이었던 성 에우스타키우스가 차분하고 온화하게 개종의 순간을 맞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숫사슴을 만나 뿔에 솟아난 찬란한 예수상의 전설을 숭배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네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영광스러운 예수이다." 짐승들과 함께 예수에게 경배한다. 화가는 기사의 옷, 안장, 사슴의 뿔, 끈으로 만들어진 발판을 더없이 화려하게 묘사했다. 말은 숫사습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라 뒷걸음치려 한다. 자연주의적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는 이 작품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 비현실적인 풍경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며 망상같은 장면에 진실성을 부여한다. 민첩한 사냥개가 상징하는 강한 이성과 정신력에도 불구하고 비논리적 신비주의, 깊은 초조함, 쇠퇴하고 있는 시대의 말기에 대한 영적인 해결책의 제시, 동시대 사조에 대한 불신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또 화가는 종이를 뒤틀린것처럼 보이도록 그리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피사넬로의 <성인들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다. 1435-1441년. 이 그림은 두개의 그림이 합쳐진 것 같다. 위에서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태양 안에서 마주보고 있다. 아래에서 성 앤서니 애벗은 15세기 갑옷을 입고 당시 프랑스 패션인 스타일리수한 밀집모자를 쓰고 있는 우아한 기사, 세인트 조지에게 종을 울린다. 성 조지의 상징인 용이 앤소니의 멧돼지에게 욱박지르고 있다. 이 그림은 피사넬로가 서명한 유일한 작품이며 그가 그린 네 점의 패널 중 하나다. 피사넬로는 궁정 화가였고 다양한 이탈리아 귀족 가문에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그림이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그것은 항상 하나의 패널이었고 그것의 작은 규모는 그것이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세례>다. 1450년. 성화는 화가의 고향인 토스카나 보르고 산 세폴크로의 성요한 성당을 위해 그려진 것으로 배경에 그곳 풍경이 그려져 있다. 대리석 기둥 처럼 보이는 아무 왼쪽에 세 명의 천사가 서서 감동적인 공생의 시작을 암시하며 애정어린 몸짓은 예언이 실현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빛은 그늘을 물리칠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 예수는 고대 신들의 자리를 물려 받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이로써 화가는 예수를 불가침한 신성의 영역으로 분리시켰다. 세례를 주고 있는 요한은 빛나는 옷을 입고 있다. 화가는 프레스코화같은 청량한 색조를 사용했는데 이는 명암의 대조를 극대화시킨다. 진주빛 피부는 빛을 받아 빛나고 푸른 하늘과 흰 구름, 뒤편 배경에 보이는 사람들의 화려한 옷색깔 등 강렬한 빛의 활기는 모든 사물을 투영한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탄생>이다. 1470-1475년. 화가는 빛을 그림의 다른 구성 요소로부터 분리시키고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집중했고 색채와의 관계도 면밀히 계산해 그림을 그렸다. 노출된 바위 위에 숫양과 폐허가 된 벽돌이 기대어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태어난 마굿간을 나타내며, 그의 출생의 가난과 겸손을 강조한다. 성모 마리아는 갓 태어난 아들의 피부를 맨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망토를 펼쳐놓았는데, 이것은 스웨덴의 성 브리짓의 기적적인 비전에서 영감을 받은 포즈였다(그녀의 경험에 대한 설명은 15세기에 널리 읽혔다). 성모님 뒤에는 양치기 두 사람이 있고, 남편인 요셉은 당나귀의 안장에 앉아 있다. 루트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천사 그룹은 이 촌스러운 장면에 천국의 사운드 트랙을 제공한다. 탑과 종탑이 보이는 뒷배경은 아마도 화가의 고향인 보르고 산 세폴크로인듯하다.
다음은 파올로 우첼로가 그린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1455>이다. 용맹한 기사인 게오르가우스는 흰 군마 위에서 용맹을 뽐내고 공주가 보는 앞에서 이교와 우상 숭배와 악의 상징인 거대한 용(영혼이 고양되지 못하게 막는 족쇄와 감옥)을 창으로 찔러 승리한다. 그림 속 공주는 때때로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 되기도 하는데 자신의 줄로 용을 잡아 길들이는 뉘앙스가 보이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용을 신성시하는데 서양에서는 주로 악을 상징한다.
파올로 우첼로의 <산 로마노의 전투>다. 1455-1460년. 이 작품은 1432년 산 로마노 근처에서 벌어졌던 피렌체와 시에나의 전쟁을 다룬 최초의 작품인데 우피치와 루브르에도 작품이 있다. 왼쪽에서 공세의 묘사가 두드러지는데 뒤쪽의 군대는 창과 군기, 나팔 등을 지니고 산을 오르고 있고 중심부의 군사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피렌체의 지휘관 톨렌티노는 솔로몬의 매듭으로 상징되는 군기를 보기 쉽게 들도록 지시한다. 피렌체 군사들은 부러진 창, 방패와 무너진 갑옷들을 십자로 교차시켜 형성한 장벽이 배경의 확장을 막고 잇으며 바닥 부분의 원근법은 3차원적인 구성을 강조한다. 이 그림은 배경에도 투시법을 이용해 역동적인 말과 인물의 뼈대를 기하학적으로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금색과 은색을 사용해 빛나는 금속 장식과 옷감 또한 섬세하게 표현했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뇌>다. 1460년. 배신자 유다가 체포하려는 군인들은 안내해 도착하기 전,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이 올라 기도하는 모습이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누워서 깊은 잠에 빠져 있고 예수 홀로 성부의 뜻에 복종하며 괴로운 순간을 보내고 있다. 왼편 위에서 다섯 천사가 앞으로 다가올 수난의 도구들을 내보이고 있다. 고대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만테냐는 석재, 붕괴의 흔적, 대리석의 윤곽 등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 배경에 단단한 돌과 뚜렷하게 층진 바위의 모습을 그려넣을 만큼 지질학에 해박하게 되었다. 덕분에 바위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에서 모든 사물이 정지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과감한 원근법으로 표현되었고 인물들의 몸짓과 동선에도 비유적이고 암시적인 화가의 의도가 잘 나타나있다.
안토니오 델 폴라이올로의 <아폴로와 다프네>다. 1470-1480년. 마치 새처럼 묘사된 아폴론은 르네상스 시대 젊은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메디치가의 분위기를 풍기는 의상을 입음으로써 신화를 현실적 분위기로 연출하고 있다. 사랑에 빠진 마폴론은 활기 있는 삶을 상징하는 신이다. 납화상을 맞은 님프 다프네는 강의 신인 아버지에게 나폴론에게 잡히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월계수 나무로 변해간다. 월계수는 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이 우월하다는 상징물이다. 배경을 가득 채운 풍경은 토스카나의 모습과 비슷해 장면의 서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로버트 캄핀의 <빨간 모자를 쓴 남자의 초상화>는 캄핀의 <여자의 초상>과 한 쌍을 이루고 있다. 1535년. 모델들은 분명히 남편과 아내였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옷은 그들이 잘사는 마을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마도 캄핀이 살고 일했던 투르나이에서 온 것 같다. 캄핀은 나이든 남편의 옷과 얼굴을 정리하여 자신의 성격을 전달했다. 그는 세상에 지치고 불확실하며 환멸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얼굴은 희미하게 빛나고, 그의 피부는 턱 아래로 처져 둔탁한 눈 주위에 까마귀의 발을 형성한다. 그는 몸을 구부린다. 그의 머리는 중심에서 벗어나 있고, 모자는 앞으로 내밀어 머리를 누른 것 같다. 그는 우리를 내다보는 대신 아내를 건너다본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캄핀이 만든 패턴의 떨어지는 선을 강조한다. 그의 손은 이 패턴과 상충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여자는 남편보다 젊어 보이고, 더 강압적이고 낙관적이다. 캄핀은 남편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패널 중앙에 가까운 눈을 두었다. 피부는 매끄럽고, 밝고 활짝 열린 눈은 구석으로 휘어지며, 머리장식의 주름이 자연스럽게 져 있다.
스와비안의 <호퍼 가문의 여성 초상화>다. 1470년. 뻣뻣하고 각진 주름으로 이루어진 붓글씨 같은 그 여자의 커다란 흰색 머리장식이 어두운 배경을 향해 솟구치고 있다. 접힌 곳을 따라 그늘을 드리우면 깊이가 강화되고, 예술가는 자신의 환상에 속아 넘어간 파리가 머리장식 위에 착지하려 했다고 생각하길 바라는 것 같다. 파리는 물론 속임수의 일부이며 아마도 예술가의 숙달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모델은 잊혀진 나지막한 가지를 가리키며 손짓한다. 꽃은 때로는 결혼의 상징 이었기 때문에 약혼을 기념하기 위해 묘사되었을 수도 있지만 기억을 언급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들은 부재할 때, 혹은 그녀가 죽은 후에도 이 초상화를 통해 모델를 기억하라는 초대장일 것이다. 그림의 맨 위에 새겨진 글씨는 다음과 같다: GEBORNE HOFERIN.,이것은 여성이 호퍼 가족 출신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만, 당시 독일 남부에서 일반적인 성 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서재의 성 예로니모>다. 1475년. 건물의 끝부분에 위치한 서재는 딷닥하고 엄격한 분위기인데 플랑드르화파의 특징이다. 화가는 형식 뿐 아니라 분위기에서도 플랑드르파의 배경에 대한 개념에서 전반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그림의 시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는 빛과 어둠의 대비가 만들어낸 것으로 위쪽의 두개의 창 밖 맑은 하늘의 부분에서 극치를 이룬다. 창밖에는 작은 새들이 날고 있고 창틀에는 까마귀가 앉아 있다. 수도사이자 학자인 예로니모는 나무 책상에 앉아 라틴어 성경을 번역하고 있는데 금박으로 장식된 책들이 책상에 꽂혀 있고 옆에는 한더미의 여러 물건들, 펼쳐진 책, 여러 모양의 상자들, 도자기 등이 놓여 있다. 안쪽으로 보이는 십자창은 원근법에 의한 풍경으로 보여주는데 나무들, 물가의 노젓는 배, 도시 풍경, 산악지대 등이고 빛은 의자를 스치고 원근법에 의해 바닥의 타일들을 뒤덮는다. 이 건물은 스페인의 후기 고딕풍으로 그 시대 나폴리 궁전과 시칠리아에서 볼 수 있었던 양식이다. 오른편 어 둠 속 성자의 동료인 사자 한마리가 어슬렁 거리고 있고 하단부의 자고새와 공작은 진리와 불멸의 상징이었다.
알레소 발도비네티가 그린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의 초상>이다. 1465년 황금 머리, 장밋빛 입술, 창백한 피부는 15세기 피렌체에서 여성미의 이상이었다. 이 초상화에 나오는 모든 특징들은 아마도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긴 목에 커다란 진주가 달린 펜던트 세트가 달린 오렌지 구슬을 착용했다.순결을 상징하는 진주, 결혼의 결정적인 미덕인 진주 장식이 그녀의 정교한 헤어스타일을 장식한다. 발도비네티는 보석의 모양과 광택을 강조하기 위해 작은 흰색 점들을 사용해 왔다. 여인의 커다란 팽팽한 소매 위에는 리본으로 묶인 야자수 세 개가 자수되어 있고 금빛 깃털 두 개가 액자에 걸려 있다. 아마 이 옷은 그녀의 미래의 남편의 팔코트였을 것이다. 신랑의 가족이 신부에게 새 옷과 보석을 제공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르네상스 초기의 초상화가 그러하듯 측면의 초상화이다. 머리 카락이나 옷의 무늬 등 너무나 섬세하다.
한스 멤링의 <세 폭 제단화: 성인들과 의뢰인과 함께한 성모자>다. 1475-1480년. 성모의 왼쪽 무릎 꿇고 있는 사람이 웨일즈의 귀족인 존 돈으로 작품의 의뢰인이다. 그 옆의 성녀 카타리나는 순교의 상징인 칼을 내밀고 있다. 오른쪽에는 존 돈의 부인 엘리자베스와 성년이 된 딸 앤이 보인다. 그 옆 성녀 바르바라는 아버지가 그녀를 감금했던 탑을 손에 들어 보이고 있다. 존 돈 부부는 요크 당의 상징인 황금 장미가 달린 목걸이와 에드워드 4세로부터 받은 사자가 조각된 십자 훈장을 두르고 있다. 양 쪽 패널에는 성 요한과 세레자 요한이 그려져 있다. 세례요한 뒤에 있는 인물은 화가 자신으로 보인다. 넓은 복도는 넘치는 빛으로 채워서 연출했고 지평선에서 시작한 빛은 널리 퍼져 그림 정면부의 드라마틱한 빛과 어슴프레한 그늘의 분리를 강조하고 있다.
헤르트헨 토트 신트 얀스의 <탄생>이다. 1480년. 화가는 1세기전의 카라바조식 대담한 명암법을 구사해 그리스도의 겸손과 인공적인 빛의 효과, 미세한 농담법을 연구하여 이루는 어둠에 묻히고 일부는 미광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천사들의 모습을 창조해냈다. 이 엄격하면서도 감성적인 작품에는 재미있고 꾸밈없는 밤 풍경과 자연을 주의 깊게 관찰한 화가의 뛰어난 능력, 특히 빛을 다루는 재능이 잘 드러나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다. 1490-1500년. 기과한 그림을 주로 그렸던 화가의 걸작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이나 그와 관련된 주제를 다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소수 인물의 상반신만 그려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전념하고 있다. 오른쪽위의 사형집행인은 떡갈나무 잎의 머리장식에 못이 박힌 동물용 몰걸이를 하고 있는데 양치기 개에게 씌우는 것으로 그의 동물적 성격을 암시한다. 배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화면을 가득 채워 대각선의 구성으로겹쳐 놓음으로써 과장되게 예수의 수난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리스도만이 온화한 모습으로 순수를 상징하는 희 옷을 입고 바깥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고 쇠장갑을 낀 잔인한 간수의 손이 후광처럼 빛나는 가시관을 그리스도에게 씌우고 있다. 위쪽에 위치한 두명은 무정하고 음을한 분위기이고 아랫쪽 두명은 다혈질에 급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왼쪽 아래 노인이 쓰고 있는 머리장식에 달려 있는 낫 모양의 이슬람 초승달과 별은 히브리인들에 대한 이슬람교도들의 불신을 상징하고 있다.
피에로 디 코시모의 <프로크리스의 죽음>이다. 1495년. 이 그림은 긴 의자나 혼례품 상자를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 듯하다. 내용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실려 있는 케팔로스와 오비디우스의 이야기인데 남편의 정절을 의심해 나무뒤에서 숨어서 지켜보는 아내를 짐승으로 오인해 아내가 선물한 마술의 창으로 죽이게 된 케팔로스의 모습이다. 케팔로스가 사티로스였다는 언급은 없었지만 코시모가 이 그림을 그린 후 여러 회화에 등장했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초록색 배경은 순간 정지하며 유울하고 서글픈 침묵만이 주변을 감싸고 있다. 여인을 죽인 치명적인 상처도 단지 목과 가슴, 꺾인 팔에 가늘게 새겨진 두개의 줄로만 표현되었다. 그림속의 개는 투창과 함께 다이아나 여신이 프로크리스에게 준 것으로 그녀는 이 두가지를 남편에게 선물했다. 화가는 단순히 개가 아니라 에전의 추억을 되살리며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표현했다.
안토니오 알레그리 다 코레조가 그린 <비너스 앞에서 큐피트를 가르치는 머큐리>다. 만토바의 군주였던 곤자가 가문의 페데리코 2세를 위해 그려진 신화를 주제로 삼은 여섯점의 사랑 그림중의 하나다. 그림 속의 아프로디테와 헤르메스는 에로스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으며 흡사 가족처럼 보인다. 코레조의 그림은 18세기 로코코 회화의 섬세한 낭만적인 매력을 예견했으며 19세기 이탈리아를 여행한 화가들의 경탄을 받았다.
자코포 틴토레토의 <제자들의 발을 씻는 그리스도 :세족식>이다. 1575-1580년.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후 그리스도는 일어나서 발을 씻기 시작했다 (요 13 : 2-17). 베드로가 이것을 허락하지 않자 그리스도는 베드로가 발을 씻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와 함께할 곳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리스도에게 손과 머리도 씻으라고 했지만, 그리스도는 깨끗한 사람들은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본보기를 따라 서로의 발을 씻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에피소드는 침례와 참회에의 한 정화뿐만 아니라 자기 비하와 형제애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이 사진은 스쿨라 디 산티시모 새크라멘토가 베니스 S. 트로바소에서 가장 성스러운 성사 예배당을 위해 의뢰한 것으로,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오늘도 여전히 예배당에 걸려 있다) 맞은편에 걸려 있었다.
자코포 틴토레토의 <은하수의 생성>이다. 1580년. 이 작품은 프라하의 루돌프 2세궁의 신화를 주제로한 4점의 연작 중 일부인데 은하수의 생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우스는 인간인 알크메나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인 헤라클레스를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헤라의 젖을 먹이기 위해 잠든 헤라의 가슴에 올려놓게 한다. 넘쳐흐른 헤라의 젖은 하늘로 뿜어져 은하수의 별을 만들고 땅으로 떨어져 백합이 되었다. 구조적으로 부자연스러운데 그림의 하단부가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잘려나간 부분에는 백합사이에 의인화된 어머니 대지가 표현되어 있었을 것이다. 발톱으로 화살 뭉치를 꽉 쥐고 있는 독수리는 헤라클레스의 아버지인 제우스의 상징이고 공작새는 헤라의 상징이다. 날개 달린 어린 소년이 들고 있는 그물망은 제우스가 부인인 헤라 몰래 벌인 애정 행각에 대한 대가를 암시한다. 쿠셩과 시트로 둘러싸인 헤라의 침대와 하늘의 별들, 구름에 걸친 금실로 수놓은 비단 커튼 등의 부분에서는 화가의 재치가 엿보인다. 나체의 여인과 비행하는 물체, 대담한 단축법과 화려한 색채들, 유쾌하고 환상적인 느낌은 틴토레토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헤리트 반 혼트호르스트의 <대제사장 앞에 선 그리스도>다. 1617년. 혼트 호르스트는 네덜란드 화가로 밤의 제라르도라 불릴 정도로 우아하고 매혹적인 밤 풍경을 때로는 드라마틱하게 빛나는 촛불의 명암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데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촛불의 빛은 효과적이고 섬세한 심리 해셕의 소재가 되며 극적인 일회에 진실성을 부여한다. 또 그림속 주인공들의 표정에 관람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리스도의 흰 옷은 빛을 강하게 반사시켜 마치 그 자신이 환하게 빛나는듯 보인다.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이 그림은 로마 화단에서 큰 호응을 얻어 수많은 복제품이 등장했다.
위대한 작품들을 따라 그리며 자신의 실력을 연마하는 사람도 있고
그 감동을 몸으로 표현하는 현대 무용가도 있다.
바리톨로메 베르메호가 그린 <악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미카엘 대천사>다. 1468년.
빛나는 갑옷은 14세기에 처음 등장한다. 이전의 미카엘은 비잔틴의 긴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칼은 대천사에게 속한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대천사는 이 칼로 악마와 싸우고 반역천사들을 무찌른다. 용은 묵시록의 악마인 아바젤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권세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의 <라자로의 부활>이다. 1517-1519년.
나자로의 부활에 얽힌 신화들, 빛나는 육체들의 무리, 몸짓, 화려한 색채, 가지각색의 표정을 지닌 얼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빛난다. 화가는 상징적인 표현의 숙달된 기술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1500년대 르네상스 시대의 개시를 의미한다. 레오나르도와 라파엘로의 영향을 받았고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의 화풍과 결합해 베네치아로 건너가 조르조네의 스타일로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인물들의 감정을 강하게 표현한 점, 활기 넘치는 분위기, 강조된 유연함, 축복을 내림으로써 평등을 주려고 하는 예수의 모습으로 볼 때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인도교가 있는 풍경>이다. 1518-1520년.
독립적으로 풍경을 그린 첫번째 예로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일트도르퍼는 다른 독일 화가들과 함께 자연 풍경을 통해 주제를 감동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주력했다. 이것은 1500년대에 독일에 퍼진 극동에서 유래한 회화 기법을 표방한 것이다. 나무다리에 수직으로 세워진 나무와 잎은 중국, 일본의 풍경화 같은 느낌이며 색의 단계를 나누어 풍부하게 표현한 짙고 빽빽한 나묵잎은 작가의 특징인 세심한 관찰력을 보여주고 구림의 구성은 북구의 전형적인 모습과 환상적인 인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화가가 살았던 도나우강 유역 골짜기들의 지형에 기초를 두고 있다.
로렌조 로토의 <루크레치아>다. 1530-1533년.
루쿠레치아는 로마의 타르퀴니우스 6세에게 강간당하자 남편에게 알린 후 단검으로 자살한 로마의 귀부인이다. 역동적인 동작으로 묘사된 그림속의 그림은 스스로를 찌른 그녀를 모든 여성의 모범으로 명시하고 주인이 남편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희생이자 절대적 헌신의 상징이었다. 머리의 터번과 손가락의 결혼 반지가 기혼부인임을 암시하는데 결혼 직후로 보인다. 여인의 오른손은 분명하고 도전적인 손짓으로 의도하는 바를 명시하는데 가리키는 자 위 종이에는 라틴어 문구가 써 있다. "루쿠레치아의 예를 본받아 부정한 여인은 누구도 살 수 없으리라."라고. 그녀는 자신이 루쿠레치아와 같은 부류로 부부간 미덕을 확고히 하려는 목족을 보여준다. 탁자 위 서양제비꽃은 정절의 상징이다. 로토의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든 편평한 구도로 로토는 초상화가로서의 능력을 스스로 시험해본 듯하다.
피터 브뢰겔의 <동방 박사의 경배>다. 1564년.
이 그림은 풍경이 없이 복잡하고 웅장한 성격의 화면을 만들기 위해 인물들로 채우고 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화풍과 뒤러의 세밀한 묘사를 연상케하는데 브뢰겔은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다 로마에 정착했는데 화풍에서 나타난다. 대각선 형태로 교차된 복잡한 구성이나 세심한 묘사 등은 전형적인 이탈리아식이다. 비뢰겔의 예술은 디이하고 환상적인 세계와의 접촉, 히에로니무스 보쉬나 플랑드르 전원화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들장 인물들은 심지어 예수를 부릎에 앉힌 채 어색하게 잡고 있는 성모까지도 기이하고 풍자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 마치 여관에서 연극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발타질(동방박사)은 주름을 잡은 헐렁한 흰 옷을 입고 정교한 금세공 향로를 바치고 있는데 동양의 바다에서 나는 작은 배 모양의 진귀한 앵무조개와 수정 구슬로 장식한 것으로 북구의 금세곡사의 솜씨를 보여준다.
브론치노가 그린 <비너스와 큐피트의 우의>라는 작품이다. 이 유명한 작품에 대해 바사리는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데 메디치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에게 헌정한 작품'이라고 기술했다. 관능적 사랑의 축제를 표현하고 있으며 오른쪽 베일 위에서 웃고 있는 소년의 이름은 '쾌락'으로 두 연인에게 장미꽃을 뿌릴 준비를 하고 있고 왼쪽에는 절망에 빠져 고뇌하는 '질투'(매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물들의 몸은 균형 잡힌 상아빛이고 선명한 색채는 얼굴과 신체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큐피트는 비너스의 왕관을 훔쳐내려고 하고 있고 비너스는 큐피트의 화살을 뽑아내려고 하고 있어 정열과 육체적 사랑이 책략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고 발치에는 늙은과 젊음의 두 개의 가면이 있다. 위의 모래시계와 수염난 노인은 시간을 상징하고 있고 중앙부터 청색의 천을 덮고 있는 것은 정열을 덧없다는 것을 강조해 그당시 세태와 악습을 지적한 것이라고 한다.
야코모 바사노의 <골고다 가는 길>이다. 1545년.
예수가 넘어지자 박해하는 자들과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 소동이 벌어진다. 서 있는 성모 마리아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그리고 있다. 가시관, 밧줄, 호송병의 구타 등은 예수의 수난을 나타내지만 예수의 온화한 표정은 '하나님의 어린 양'을 상징하고 있다. 십자가를 지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는 비틀거리며 쓰러진다. 그리스도의 처형자 중 한 명이 주먹을 들어 그를 때리고 다른 한 명은 허리에 밧줄을 잡아당긴다. 멀리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힐 두 개의 십자가가 있는 불모지 언덕인 골고다가 있다. 성모님은 아들을 따라가 눈물에 젖은 뺨을 닦는다. 성 베로니카는 그리스도에게 베일을 내밀고, 그 베일에 그의 얼굴의 이미지가 기적적으로 각인될 것이다. 이 그림은 성 베로니카에 헌정된 예배당의 제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이름은 라틴어로 된 베라 이콘과 관련이 있는데, 이것은 '진정한 이미지'를 의미한다. 베로니카의 베일인 수다륨은 그리스도의 진정한 그림으로 존경받는 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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