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미술관/런던 내셔널 갤러리

피터 폴 루벤스와 디에고 벨라스케스

boriburuuu 2020. 11. 26. 14:26

피터 파울 루벤스의 <밀짚모자>다. 1622-1625년. 여자는 실제로는 펠트와 타조 깃털장식의 모자를 썼다. 모델은 1630년 루벤스의 두번재 부인, 헬렌의 큰언니였던 수잔나 푸르망일 가능성이 크다. 1622년 수잔나가 아놀드 룬덴과 재혼할 당시 결혼 초상화로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른손의 반지가 뒷받침한다. 여인의 영혼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한 분위가를 자랑하는데 모자 차양의 어두운 색조와 배경의 푸른색, 소매 부분의 붉은 색이 대조를 이룬다. 구성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주의 깊은 탐구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모자의 차양과 목둘레의 노출한 부분에 두른 벨벳 천, 가슴에  포개 모은 팔의 모양에서 대각선의 치밀한 효과를 노렸다.

주로 많이 그려지는 주제로 페터 파울 루벤스가 그린 <파리스의 심판>이다. 1632-1635년.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중요한 결혼식에 초대되지 않은 유일한 신이었다. 그녀는 소외된 것에 화가 나서 잔치에서 모든 여신들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게'라고 새겨진 황금 사과를 던졌다.  미네르바, 주노, 비너스라는 세 여신은 서로 황금사과의 주인이라고 주장했다.  신들의 우두머리인 제우스는  파리스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 젊은이는 양치기로 자랐지만 사실 트로이의 왕자였다. 루벤스가 묘사한 이 선택의 순간이다: 헤라는 파리스의 부와 권력을 주겠다고 했고, 미네르바는 지혜와 힘을 주갰다고했다. 비너스는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인 스파르타의 헬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황금 사과를 중앙의 아름다움의 여신인 비너스에게  건네준다. 머리 위의 구름 속에는 견딜 수 없는 퓨리, 알렉토가 있다. 질투심에 불타서 헤라는 그녀에게 트로이인들을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파리스로하여금 헬렌을 납치하게 했고,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루벤스는 여성의 나체를 유연하고 감각적이며 관능적으로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루벤스의 후기 화풍으로 원숙함의 절정을 보여 주며 자연과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거침 없는 찬미를 느낄 수 있다.

루벤스의 <삼손과 데릴라>다. 1609-1610년.  루벤스가 상상한 삼손은 근육질 몸매를 드러낸 채, 데릴라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다. 잠든 사자 같은 천하장사를 안은 델릴라의 옷은 핏빛처럼 온통 붉은색이다. 가슴을 드러낸 데릴라의 하얀 살결과 붉은 옷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그 붉은색이 곧 삼손의 두 눈에서 철철 쏟아질 피처럼 보여서 이 그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오른편의 문간에는 그의 눈에 박을 커다란 나무 송곳을 든 병사들이 웅성거리며 서 있다. 루벤스는 〈삼손과 데릴라〉를 그리기 직전까지 8년간 이탈리아에 머무르고 있었고, 이 때문에 이 그림에서는 자연스럽게 미켈란젤로의 영향이 엿보인다. 당시 루벤스의 친구들은 이 그림을 가리켜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의 결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루벤스 본인도 왼쪽 뒤편에 고대 로마풍의 조각상(비너스와 큐피드)을 세워 놓아 이 그림이 이탈리아에서 영향을 받은 것임을 분명히 했다.

 

루벤스의 <앤 브뢰겔의 가족>이다 1613-15년.  이 부드러운 초상화는 루벤스가 자주 협력하는 얀 브루겔 더 엘더와의 우정을 축하하는데, 그의 그림에서 루벤스는 종종 이 인물들에 기여했다.  친밀한 그룹의 중심에는 얀의 두 번째 부인인 카타리나가 있는데, 그는 그녀의 두 자녀인 피에터와 엘리자베스를 그녀 가까이 끌어들인다.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다. 1611년.   루벤스는 앤트워프 성당을 위한 제단을 그리도록 위임받았다.,이 작품은 커미셔닝 길드와 대성당 관리인들에게 승인을 받기 위해 제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큰 제단에서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작은 사이즈의 그림을 그려 보여주는 것이 관례다.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몸이 강렬한 슬픔의 장면에서 어떻게 십자가에서 제거되는지 본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파란색)는 아들을 만지기 위해 앞으로 손을 뻗는다. 

루벤스의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다. 1635-1640년.  로마인에의 한 사비니 여성 납치의 전설은 몇몇 고전 작가들에 의해 묘사된다. 설명은 다양하지만, 주요 세부 사항은 일관된다. 로마의 창시자이자 왕인 로물루스는 인상적인 도시를 건설했지만 여성이 부족했다. 그는 근처의 산에 살았던 사비니족을 초대하여 미혼 여성들을 붙잡으려는 아내와 딸을 전차 경주 축제에 데려왔다. 이 그림에서 로물루스는 실루엣으로 앉아 있다. 그는 납치를 시작하라는 그의 부하들에게 신호로 데이의 여성들을 가리키고 있다. 여자들은 괴로워하며 다시 비틀거리고, 전경에는 첫 번째 희생자들이 실려가는 모습이 클로즈업된 모습이다. 루벤스는 어둠과 단호하고 근육질의 로마인들과 창백한 피부와 눈이 휘둥그레진 여성들의 무력감을 대조하면서 관련된 폭력을 강조하는 데 분명히 신경을 썼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 순간을 에로틱하게 했다 – 몇몇 여성들은 이미 젖가슴을 노출시키고 있고, 한 군인은 다른 여성의 치마를 들어올린다. 

벨라스케스의 <스페인의 왕 필립 4세의 초상>이다. 1656년.  벨라스케스는 그의 통치 기간 내내 스페인 왕 필립 4세의 많은 초상화를 그렸다. 이것은 1623년부터 그의 궁정 예술가로 일했던 그 남자가 마지막으로 그린 왕의 이미지다. 그는 중년이고 피곤해 보인다. 그의 처진 살과 부은 눈은 그의 오랜 통치 기간 동안 어깨에 놓여 있는 책임의 무게를 암시한다. 벨라스케스의 초상화들 중 많은 것에서처럼 필립은 그의 독특한 콧수염을 뽐내고 있다. 왕의 창백한 얼굴이 그의 옷의 검고 평범한 배경에 눈에 띈다.그는 금색 사슬에 매달린 양가죽의 형태를 취한 기사도적 질서인 황금빛 양털 훈장을 착용한다.필립의 머리카락이 규칙적으로 흔들린 바람에 그의 얼굴은 헝클어지고 옷깃은 단정하게 얹혀 있다. 그는 존경을 명령하지만 또한 강렬한 인간이라는 표정으로 꾸준히 밖을 내다본다. 

벨레스케스의 <브라운과 실버의 스페인 필립 4세 >1631-1632년.   스페인의 왕 필립 4세는 보통 꽤 좀 더 칙칙한 옷을 입고 보여졌기 때문에, 여기서 그의 의상의 특이한 화려함은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1632년 그는 카스티야 코르테스가 아들과 후계자인 발타사르 카를로스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중요한 의식을 위해 비슷한 옷을 입었다. 민소매 재킷과 바지, 흰색 실크 소매, 망토는 모두 은색 실로 풍부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모자는 섬세한 깃털로 장식되어 있다. 그는 황금빛 양털 훈장(명망 있는 기사도 질서)의 배지를 달고 한 손을 칼에 얹는다. 필립은 젊은 남자로 등장하는데, 그의 무뚝뚝하고 자기주장적인 표정은 그의 힘을 전달한다. 필립이 들고 있는 탄원서에 벨라스케즈의 서명이 나타나 궁정 화가로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화가는 그의 작품에 서명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작품들만 서명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거울 속의 비너스>다. 1647-1651년.  이 독특한 누드화는 20세였던 연인(플라이니아 트라바)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화가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여인 누드상이다. 큐피트가 거울을 잡고 있는 자세에서 신화적 묘미가 느껴 지며 관능적인 자세로 몸을 누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거울 위에 포개어 놓은 큐피트의 손목에는 리본이 드리워져 있는데 이는 여신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비너스와 큐피트의 관게를 의미한다. 창백한 피부와 흩어지는 빛은 곡선을 토해 끊임 없이 강조되고 남색과 은색의 시트는 여신의 자세로 인해 구겨지고 커브를 이루고 커튼도 주름진 채 드리워져 있다. 화가는 사물위 소재를 표현하는데 짧고 강력한 필치를 사용했고 머리카락과 새틴 옷감의 구겨진 윤곽을 표현할 때는 긴터치를 사용했다.  거울 속의 얼굴은 빛에 대한 연구로 북유럽의 거장들과 비슷한 기법이라고 한다. 고야의 〈옷 벗은 마하〉와 마네의 〈올랭피아〉에 큰 영향을 미친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