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술관/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마르크 샤갈. 후안 미로

boriburuuu 2020. 11. 27. 21:58

마르크 샤갈의 <라일악 꽃속의 연인들>이다.  1930년.  현재 벨로루시의 비테브스크 마을을 본 샤갈은 1923년 소련의 세계 전쟁 이후의 삶의 경건함을 피하고 10월 혁명을 피하기 위해 파리로 이주했다. 파리의 쾌적한 편안함에서 사는 샤갈은 창조적으로 자라며,이 기간의 경직된 라디에이트와 기쁨으로부터 그의 작품이다.

마르크 샤갈의 <에펠탑의 패씨 다리>이다. 1911년.

마르크 샤갈의 <연인>이다. 1913-14년. 러시아 마을의 동화 같은 세부 사항은 파리에서 그려진 비테브스크에 있는 차갈의 상상 속의 방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다. 연인들은 그의 약혼자인 벨라 로젠펠드와 함께 그 예술가를 대표한다. 주로 독학한 샤갈은 정서와 환상을 혼합한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했는데, 이는 시인 기 아폴리나레가 "초자연적인"이라고 부르는 효과였다."

마르크 샤갈의 <파라솔을 든 황소>다. 1946년. 

마르크 샤갈의 <A Pinch of Snuff: 유대인 랍비>다. 1912년.

마르크 샤갈의 <부채를 든 신부>다. 1911년. 

마르크 샤갈의 <바다 보른과 페르시아의 왕 바드르 바심>이다. 1948년

후안 미로의 <별자리 : 레인보우를 향해 >다. 1941년. 1919년 후안 미로는 모국인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로 향했고, 그곳에서 동료 스페인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초현실주의의 선구자 중 한 명이 되었다. 미로는 이 운동이 형식과의 심리학과 시적 놀이에 관여하는 데 영감을 받아 현실에 대한 기발한 암시와 서정적이고 공상적인 색채의 작곡을 바탕으로 꿈같은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1940년 5월, 침략한 독일군이 프랑스 북부 해안의 마을인 바렌지빌에서 미로의 조용한 삶을 방해한 후, 그는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6월에 그는 팔마 데 마요르카 마을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1941년 여름까지 머물 예정이었다. 팔마에서 미로는 바렌지빌을 떠날 때 버린 그의 별자리 시리즈 작업을 재개했다. 레인보우를 향해는 1940년 1월부터 1941년 9월까지 21개월 동안 생산된 23개의 구아치 시리즈 중 15번째다. 프랑스 체류가 끝날 무렵 시작된 작품과 스페인에서 그려진 작품들의 특징인 종이 전체 시트는 모래시계 모양과 얇은 검은 선으로 연결되어 환상적인 연철 스크린이나 어쩌면 우주에서 마법의 별자리를 연상시키는 별, 눈, 원, 삼각형, 초승달래를 암시하는 수많은 형태로 덮여 있다.각각의 그림은 완성하는데 약 한 달이 걸렸다.

후안 미로의 <감자>다. 1928년.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방에서 태어난 후안 미로는 자국의 토착 풍경과 예술적 유산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프랑스 초현실주의와 그 실무자들과 관련이 있었고 경력 초기에 파리에서 살았지만 제 2차 세계 대전 후 스페인에 정착하기 위해 돌아 왔다. 예술 세계의 중심에서 의도적으로 제거된 이 의도적인 것은 미로의 독립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예술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표시할 기질이다. 초현실주의에 의해 장려된 자유 발명 가능성을 바탕으로 미로는 고도로 개인화되고 심리적인 참고 문헌에서 도출된 스타일을 개발했다. 종종 인식 가능한 출발점으로 시작하여 미로는 기발한 색과 자유로운 놀이를 통해 피사체를 변형 시켰다.  감자는 현실에 대한 미로의 시적 소동을 상징한다. 그것은 그녀의 팔을 넓게 뻗는 거대한 여성 인물을 주제로 한다. 그녀는 푸른 하늘과 땅 위에 세워져 있다. 아마도 감자밭일 것이다. 그림의 팽팽한 흰색 모양은 기둥의 허수아비처럼 구성의 중앙에 있는 빨간색 기둥에 부착된다. 미로는 그의 즐거운 "포타토-지구-여성"을 공상적인 장식품으로 둘러쌌는데, 그 중 일부는 "지옥"이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 이 인물은 엘핀 생물들이 그녀 주위의 하늘에서 펄럭이는 것처럼 길고 검은 구불구불한 실을 "스퀴어"하는 갈색과 검은 가슴을 가지고 있다. 왼쪽에는 미로가 가장 좋아하는 모티브 중 하나인 사다리를 오르는 다른 생물들이 갈색 바나나 같은 코에서 빨갛고 노란 '나비여인'이 날아간다. 주제의 흙을 넘어, 그림의 제목은 실제 인식 가능한 감자의 표현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이마에 박혀있는 것은 작고 갈색이며 타원형의 물체이며, 그 속에서 3개의 힘줄이 자라난다. 

후항 미로의 <덩굴과 올리브나무, 타라고나>다. 1919년.  미로는 세밀하고 시적인 상상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전경에 있는 식물의 작은 잎, 잔가지, 뿌리를 모두 그렸고, 멀리 있는 산들은 투명한 접힘과 우중충한 빛으로 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술가는 몽트로이그 근처의 가족 농장에서 일하면서 여름을 보냈는데, 1914년에서 1922년 사이에 그려진 거의 40개의 풍경에서 마을과 그 주변 환경에 대한 사랑을 기록했다. 

후안 미로의 <사진 : 이것은 내 꿈의 색입니다.>1925년.  이 작품은 1924년부터 1927년 사이에 만들어진 시리즈의 일부분으로, 텍스트와 수수께끼 같은 상징을 결합하고 꿈과 잠재의식에 대한 그의 관심을 반영한다. 빈 흰색 캔버스에는 오직 세 가지 요소, 즉 "사진"이라는 단어, 파란색의 패치, 그리고 "ceci est la couleur de mes rves"(이것은 내 꿈의 색이다)라는 문구가 떠 있다. 검은 글자는 어린이의 필기용 프라이머처럼 크기에 대한 가이드 역할을 하는 거의 보이지 않는 연필선 위에 놓여 있다. 

후안 미로의 <서커스 말>이다. 1927년.  이 작품은 미로가 1927년에 만든 70여 장의 "꿈" 그림 모음집에 속한다. 초현실주의와 폴 클리의 서사 기하학에 영향을 받은 미로는 1920년대 내내 기발하고 꿈 같은 그림을 만들었다. 서커스의 이 그림에서 밝은 푸른 땅은 춤추는 말과 중앙 인물, 아마도 링마스터가 명상적이고 사색적인 선으로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경기장을 제공한다. 1928년 비평가가 말했듯이, 미로는 "마법의 세계에서 행동한다."

후안 미로의 <네덜란드식 인테리어>다. 1928년. 1928년 미로는 네덜란드로 2주간의 여행 중에 수집한 17세기 네덜란드 장르 장면의 엽서에서 영감을 얻은 일련의 3점의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서 그는 꿈 같은 왜곡을 위해 이 모델들의 고조된 자연주의와 정밀성을 버렸다. 그는 예술적 속기를 사용하여 중심 인물인 궁수를 렌더링했지만 화살과 조류 표적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후안 미로의 <부제>다. 1931년.  잉크 라인과 생물 형태는 이 그림에서 나무 위에 조용한 꿈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미로 시리즈의 일부는 신경쇠약(1929–31)을 겪은 후 그랬다.

후안 미로의 <밤의 여인과 새>다. 1944년.

 

후안 미로의 <여자, 새, 별>이다. 1949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한 달 전인 1939년 8월, 미로는 아내와 함께 프랑스 노르망디의 바렌지 빌로 이사했다. 나치 점령 기간 동안 미로는 이 그림이 바탕이 되는 일련의 구아치인 콘스텔레이션을 만들었다. 안드레 브레튼은 미로의 얼굴, 별, 날개, 선, 초승달을 "세계 밖과 외부 시간도 마찬가지"라고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