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미술관/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에곤 실레

boriburuuu 2020. 12. 5. 15:45

에곤 실레의 <인테리어>다. 1907년. 

에곤 실레의 <겨울에 집(아텔리에에서 본)>이다. 1907년.

클림트의 제자 에곤 쉴레의 그림도 눈에 띄었다.

에곤 실레의 <에듀아르드 키스멕의 초상>이다. 1910년.

에곤 셀레의 <헤르베르트 라이너의 초상>이다. 1910년.

에곤 실레의 <푸른 강변의 도시>다. 1911년.

에곤 실레의 <해바라기 1>이다. 1911년.

에곤 실레의 <창문들>이다. 1914년. 쉴레가 그린 풍경화도 남다르다.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이다. 1915년. 상당히 큰 규격의 유화인 이 작품은 1918년 분리파 미술관의 대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그림 속 붉은 머리의 소녀는 4년간 실레와 동거하며 수많은 작품의 모델이 되어 주었던 발리 노이첼로 추정되는데 중산층 여인인 에디트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를 버린다. 제목에서 죽음이라고 언급하고 있듯이 에곤 쉴레는 남녀 사이에서 관계의 죽음을 실제 죽음이라는 은유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대다수의 화가가 보여주는 작품 구성에서 남녀라는 단순한 대립적인 구조를 넘어서, 남과 여, 죽음과 삶이라는 떼놓을 수 없는 영원한 만남의 싸이클을 묘사한다. 남자의 눈은 공허하고 여자는 가녀린 팔로 그를 붙잡으려하지만 남자의 다리는 이미 이불 밖으로 나와 이별을 통보하고 있다.

에곤 실레의 <가족, 혹은 어머니와 두 아이들>이다. 1915-1917년. 시체처럼 창백한 엄마와 아기의 모습에서 실레를 사로잡았던 삶과 죽음의 세계가 엿보인다. 이 그림의 배경에는 실레가 직접 겪어야 했던 1차 세계대전도 있지만 그의 가족사도 있다. 어렸을 때 누나를, 청소년기에 아버지를 잃어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 자신도 젊은 나이에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어쩜 예감이 있었던건 아닐까 싶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이다. 1916-1918년.

에곤 실레의 <네그루의 나무>다. 1917년. 충격적인 인물화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난 개인적으로 그의 풍경화가 참 마음에 들었다.

에곤 실레의 <포옹>이다. 1917년. 이 그림에서 실레는 초기 초상화에서 자주 나타나던 초록색 피부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1918년 빈 분리파 미술관의 대전시회에 선보였던 작품인데 그림의 주인공은 에곤 실레 자신과 에디트로 추정된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실레의 집착은 종교적 열정과도 비슷한 것으로 실레 자신과 그렇게 이해되기를 바랬다고 한다. <포옹>의 부드러운 일체감은 단순히 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여타의 회화나 드로잉과 큰 차이를 보인다. 또한 이 작품은 결혼 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반영하기도 하는데 스페인 독감으로 아내 에디스가 사망하고 3일 후 실레도 숨을 거둔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에곤 셀레의 <빌드니스 박사 프란츠 마틴 하버디즐 >이다. 1917년.

에곤 실레의 <가족>이다. 1918년. 실레는 1918년 전쟁 당시에 이 유화에 <쭈그리고 앉은 두 사람>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그가 죽은 후 제목이 <가족>으로 바뀌고 이 작품이 초상화라는 분석이 내려졌단다. 실제로 그림 속 남자의 얼굴은 실레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여성은 아내 에디트가 아니고 게다가 여인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아이는 뒤늦게 덧그려진 것이란다. 이전에는 대신 꽃다발이 있었다고 한다.


에곤 실레의 < 빅터 리터 본 바우어>다. 1918년

에곤 실레의 <예술가의 아내인 에디트 쉴레의 이미지>다. 1918년.

에곤 쉴레의 <휴고 콜러 박사>다. 19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