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미술관/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 클림트

boriburuuu 2019. 8. 18. 21:15

바우처와 출력물을 갖고 가서 비엔나 카드 3일권을 받았다.  오늘은 먼저 벨베데레에 갔다. 빈에 와야만 볼 수 있는 클림트의 키스를 보기 위해서였다. 버스에서 내려 화려하게 장식된 문으로 들어서니 깔끔한 궁과 분수가 나타났다.

 

 

먼저 벨베데레 상궁으로 들어간다.원래는 축제를 위한 공간이었지만 1995년 대대적인 보수를 마치고 미술관이 되었다. 1층에는 20세기 예술품, 2층에는 유겐트슈틸양식의 예술품, 3층에는 비더마이어 시대의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다리에도 궁 앞에도 말을 조련시키는 조각이 많았는데 생동감이 느껴지는 조각들이 훌륭했다.

머리를 땋아 내린 아름다운 스핑크스는 무섭기보다는 사랑스럽다.

우린 관람객이 몰리기 전에 키스부터 보러 갔다. 이 그림은 클림트의 창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나온 작품 중 하나로 '키스하는 두 남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항상 의문이었다. 클림트와 애인 플뢰겔일까? 연인의 농염하고 육체적인 사랑, 그리고 우주와 개인의 일치에 대한 놀라운 알레고리다. 이 그림은 다른 곳으로 대여하지 못하게 아예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 쪽에서 보니 여인은 그저 좋아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왠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밑의 꽃밭은 지금도 많은 곳에 재현되어 있다. 많은 곳의 꽃밭을 클림트의 그림처럼 가꿔 놓았다.그러고보면 빈은 클림트의 도시인가보다.

클림트는 주로 여인들을 그리고 여성편력도 대단해서 사후 14명의 여성들이 친자확인 소송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풍경화도 다수 그렸다. 꽃과 나무와 집 등 다양한 풍경화를 볼 수 있었다.

클림트의 <<Schloss Kammer on Lake Attersee III 1909/1910 >이다.

클림트의<화이트엔바흐 1세(Landhaus am Attersee)의 임업장 >이다. 1914년.  이 그림은 1914-1916년 여름 휴가를 보낸 클라임트에 있는 아터시의 바이센바흐 계곡에 있는 임업 주택을 보여준다. 집은 산의 경사면에 있는 중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클림트는 여기서 혼자 일할 수 있었다. 집 앞에는 넓은 초원이 여전히 있다. 임업은 모든 후기 풍경과 마찬가지로 쌍안경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려져 실제 모티프에 초점을 맞추어 이미지 컷을 극도로 좁혔다. 반면에 전경의 꽃밭은 근시안적으로 묘사되어 전경과 배경을 시각적으로 결합하여 보컬 단위로 만든다. 

클림트의 <<avenue to schloss kammer_1912 >다.

클림트의 <해바라기>다. 1907-08년.  클림트는 리즐버그의 농가와 단일 해바라기를 묘사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이미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영혼 감각에 맞게 매우 특정한 상태에 대한 꽃의 반응을  하지만 클림트는 자연 그대로를 그렸다.   패션 사진에 대한 지식으로 해바라기의 모양은 은유적 수준에서 에밀리 플루지와 관련이 있다. 아름답지만 외로운 꽃의 자아로 닫힌 묘사는 그녀와 클림트 사이의 결코 정의되지 않은 삶의 관계와 일치한다. 그녀는 여전히 외롭고, 잠겨 있고, 모든 사람들이 존경한다.

드디어 유디트를 볼 수 있었다. 빈의 팜므파탈의 전형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1899년 즈음 성경의 인물 '유디트'를 위해 모델을 섰다. 이것은 공식적인 초상화는 아니지만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통해 아델레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데 이 목걸이는 부유한 제당회사 사장인 페르디난트 블로흐 바우어가 아내에게 선물한 것이기 때문이란다. 유디트는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 주제가 되었지만 클림트의 작품은 그 중 매우 강렬하고 특별하다. 클림트는 이전에도 그녀의 초상화를 두 점 그렸지만 그것들과는 달리 이 그림에서는 관능적인 분위기로 표현하고 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들고 있는 그녀는 가슴을 드러낸 채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데 클림트는 이 모습이 진정한 그녀의 모습이라고 봤는지도 모르겠다.

 

클림트의 <클라비고의 조셉 르읜스키 알 카를로스의 초상>이다. 1895년.  이 그림은 "비엔나 극장"(Volume II, Part 3)의 화려한 작품에 대한 삽화로 사회의 증식 예술을 대신하여 제작되었다. 배우는 검은 색 의상에 어두운 속에 나타나 얼굴과 흰색 셔츠만 어두운 배경에서 벗어난다. 이 상대적으로 좁은 중앙 부분은 거의 같은 넓은 측면 필드가 있는 두 개의 측면 필드가 있으며, 오른쪽은 고대 향 보일러의 연기에서 나오는 극장의 우화다. 

클림트의 <신부(마리 클레너 폰 마리 라우엔)>다. 1891-1892년.  1862년 5월 1일, 그는 안톤 커너(나중에 마리룬의 커너)와 결혼했다. 1891년 11월, 쿠너에 대한 구스타프 클림츠의 새로 발견된 편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예술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의도된 아내의 이미지를 의뢰했다. 

클림트의 <벽난로 앞의 여인>이다. 1897/1898 년.

클림트의 <비가 내린 후>다. 1898년. 1898년 8월 구스타프 클림트는 잘츠카머굿에서 할슈타트 호수 근처애서 여름 휴가를 처음 보냈다. 이 체류 기간 동안 장미 , 과수원 ,저녁 과수원 ,비가 내리는 후 등 4개의 풍경화를 그렸다. 이 첫 번째 풍경에서 클림트는 프랑스 인상파의 스타일에 중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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