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박물관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카미유 코로

boriburuuu 2020. 12. 18. 23:49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이다. 1907년

클로드 모네의 <에트타트의 풍경>이다. 1868년

클로드 모네의 <아발의 절벽, 에트레타트>다. 1885년

클로드 모네의 <태양 효과, 지버니의 젊은 여성들>이다. 1894년  태양 효과의 젊은 부인들은 건초더미가 제대로 건설될 때까지 악천후에 대비하여 임시 대피소를 구성하는 시브 모양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루앙 대성당 시리즈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조 평원에 그려졌다. 주제는 또한 곡물 더미이지만, 1888년 이전의 시리즈와 그 형태가 다르며 많은 수의 스택이 대표된다. 같은 장의 세 점의 그림 중 하나로 구성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여기서 모네는 무거운 임파스토로 캔버스를 작업해 왔다. 스택이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으니 예술가는 정오에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카미유 피사로의 <르리 정원, 오후, 태양>이다. 1900년  그의 경력의 대부분을 시골 생활의 화가로 알려 졌던 피사로는 이제 도시의 광경과 움직임에 흥미를 느꼈다. 그의 딜러인 듀랜드-루엘이 예술가의 도시적 견해가 더 눈에 띄는 것을 발견한 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1888년 피사로는 눈병인 눈물관 염증을 일으켜 남은 생애 동안 간헐적으로 그를 괴롭혔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려웠다. 처음에는 호텔 방에서 도시 시리즈를 그렸지만 나중에 그는 아파트를 임대하고 더 오랜 기간 동안 머물렀다.

카미유 피사로의 <잔의 초상화>다. 1893년 거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은 화가지만 아주 가까운 사람들의 그림은 그렸다.  잔의 초상화는 피사로의 유일한 생존 딸인 코코테라는 별명을 가진 잔 마르게리테 에바를 묘사하고 있다. 코코테(b. 1881년)는 사춘기 직전인 이곳에서 12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헐렁하고 긴팔 노란 드레스를 입고 무릎은 마우브 커버렛으로 덮여 있다. 그녀의 머리는 3/4의 시야에 있는데, 피사로가 초상화를 위해 선호하는 위치다. 이 작은 회전은 피사체를 뷰어에서 측면 거리로 돌리는 동시에 피사체에 대한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상호 작용을  활용한다.

카미유 피사로의 <아침, 일광 효과, 에라그니>다. 1899년  아침, 햇빛 효과의 인물은 돌에 앉아 있고, 그녀의 등은 깨지기 쉬운 나무 줄기에 의해 지탱된다. 빛에서 나온 그림자가 근처 나무의 잎사귀 사이로 가려져 그녀를 단풍과 연결시켰다.그 뒤로는 하늘을 만나는 마지막 줄의 나무들에 의해 닫힌 들판이 수평 띠로 물러난다. 여자는 일에서 벗어나지만, 보라색과 타버린 오렌지색의 촉감이 깃든 꽃이 만발하는 녹색 금빛 들판에는 온통 풍성한 분위기가 감돈다. 이것은 표면을 활성화시키는 수많은 작은 터치인 다양한 기술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69세의 이 예술가의 기술적 기교는 여기서 즐겁고, 능숙하게 적용되고, 빠른 다색의 페인트 스트로크에서 표현을 발견한다.

카미유 피사로의 <폰토이즈 공장>이다. 1873년  피사로는 1866년 폰토이즈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대신 현지에서 재배한 설탕 비트에서 알코올을 증류하는 지역 공장을 그렸는데, 이는 현대 산업 활동의 풍경 조화의 상징이다. 1872년에 그는 강 건너편에서 볼 수 있는 오이즈에 새로 확장된 공장의 네 가지 버전을 그렸다.

카미유 피사로의 <에라그니에서의 일몰>이다. 1890년

카미유 피사로의 <풍요로운 수확<이다. 1893년  이 그림에서 피사로는 전통적인 풍경에서 목자 대신 괭이를 들고 땅을 파는 남녀를 소개했다. 그의 인물은 이전의 인물과 달리 풍경의 부분이 아니라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게다가 피사로의 태도는 이전의 많은 풍경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분리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현장에서 실제 작품을 묘사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강가에 있는 에이브레이의 마을 >이다.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강에서 고기잡는 사람>이다.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모테폰테인: 작은 울타리로 가는 길>이다. 1850-60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고기 잡는 어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