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박물관

이스라엘 박물관 여러화가들 2

boriburuuu 2020. 12. 19. 16:01

앙리 에드몽 크로스의 <프로방스 숲 속의 빈터>다. 1906년.

루이 발타의 <누드>다. 1904년. 1904년 누드를 그렸을 때 발타트는 초기의 모든 다양한 영향을 동화시켰다. 툴루즈 라트렉의 흐르는 에코, 아르누보 아라베스크는 해안가에 앉아 있는 인물의 긴 오번 트림에 나타나는데, 그의 손은 그녀의 오른쪽 다리를 그녀의 몸으로 끌어당긴다. 누드의 풍부한 비율에 르누아르와 마일롤의 반향이 존재하며 인상주의에서 배운 교훈은 흑인의 완전한 부재에 반영된다. 붓놀림은 두껍고 활기차며,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에서 흔히 그렇듯이 풍경이 녹아 물질성을 느슨하게 하는 표현력으로 가득 차 있다. 색은 또한 형상의 윤곽을 그리는 데 사용되며, 형상의 등 곡선과 허벅지에서 발목까지의 통로를 강조한다. 빛은 이 감각적인 장면을 가득 메우며, 순수한 색의 곡선 스트로크가 병치되어 하늘, 산, 바다 및 땅을 구분하는 다양한 조합이 있다. 그녀의 눈은 명확한 정의가 부족하고, 얼굴은 평온해 보인다.

귀스타프 크루베의 <셰퍼드와 당나귀가 있는 주라 풍경>이다. 1866년

에밀 베르나르의 <마리 르마송의 초상화>다. 1892년. 마리 레마슨의 초상화는 버나드가 프랑스에서 출발하기 전 해에 10년 이상 그려졌다.  강하고 어두운 윤곽은 색 덩어리를 묘사한다. 우아하고 기념비적인 이 인물은 분홍색과 갈색 색조로 옷을 입고 초록색의 추상적인 평면 배경에 놓여 있다. 그녀의 얼굴은 섬세하게 모델링되어 있고 블라우스는 장식적인 모티브로 취급되는 흐르는 리듬의 아라베스크 무늬로 구성되어 있다. 치마의 양식화된 접힘과 정면의 상징적인 포즈는 예술가의 영감의 주요 원천이었던 중세 예술을 연상케 한다.

폴 세뤼지에의 <아이들의 저녁 식사>다. 1909년. 

폴 세뤼지에의 <풍경>이다. 몽화적인 느낌이다.

피에르 보나르의 <식당>이다. 1923년.  그의 반복되는 주제들 중 많은 것들이 식당에 있다. 그는 종종 아내 마르테를 그려서 탁자나 닥스훈트와 함께 앉혔고, 정물화는 고립되어 있거나 방의 일부로서 그려졌다. 이 그림에서 마르테의 옆 얼굴은  수심에 찬 분위기를 암시하는 그림자로 덮여 있다. 맨 오른쪽의 그림은 자의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잘려져 있으며, 드가가 자르기를 좋아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작은 개만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그림의 상대적인 평탄함과는 대조적으로, 테이블 위의 과일은, 정물화가로서의 본나드의 재능의 웅장한 예로서, 색만 세심하게 조작하는 것으로 완전히 모델링된다. 사실 작품의 가장 뛰어난 측면을 구성하는 것은 색채뿐 아니라 응용 방식이다. 전체 그림은 황금빛으로 빛나며, 짧은 스트로크와 여러 겹의 층에 적용된 자유롭고 임의적인 색상 하모니와 대조의 조합으로 넘쳐난다. 

에두아르 뷔야르의 <긴 의지에 앉아 있는 미샤>다. 1900년. 모델은 폴란드의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이자 1893년 라 레뷰 블랑쉬의 편집자인 타데 나탄슨의 아내인 미시아 나탄슨(고데브스카 출생)이다. 1890년대에 미시아는 그의 시적인 인테리어와 정원 장면에서 다시 일어나는 인물인 부일라드의 여성적인 뮤즈가 되었다.인상파의 순간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긴 의자의 미시아는 부르주아 목가의 장식적인 기념비, 즉 너머 세계의 혼란에 방해받지 않고 영원한 마트론-모모가 지배하는 개인 집이다. 이 그림은 그의 장식적인 미학만큼이나 빌라드의 민감한 정신을 말해준다.,

에두아르 뷔야르의 <창 앞의 여자>다. 1895-1900년.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의  작지만 미적으로 강력한 이미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자는 마치 아래 누군가에게 자손을 보여주거나 더 넓은 세상을 엿보려는 듯, 분홍색 옷, 아마도 소녀일 것이다. 그 여자는 아이의 엄마든 보모든 파란 물방울 점이 있는 유행하는 흰색 상의를 입고 있다. 이 섬세한 옷은 아기의 분홍색 작업복과 함께 창문의 강력한 대각선이 지배하는 구성을 위한 따뜻한 중심을 형성한다. 창문 위의 녹색 상인방과 그 아래 회색 실은 익명의 건물의 맨 외벽에서 내부 공간의 어두운 공동을 강제로 분리함으로써 그림에 연극 드라마의 느낌을 더한다. 이 그림은 두 가지 스타일의 혼합에서 시각적 힘을 얻는다. 

막스 리베르만의 <이젤 앞의 자화상>이다.

 

막스 리베르만의 <유치원>이다. 1879년

오스카 코코슈가의 <드레스덴의 엘베>다. 1918-1922년

앙드레 드레인의 <나무 세 그루, 에스타크>다. 1906년

구스타프 클림트다.

앙리 루소의 <세인트 클라우드의 전망>이다. 1909년

마크 로스코의 <무베>다. 1955년.  마크 로스코는 인간의 정신을 반영하려고 했다. 그의 첫 번째 이미지는 신화적이었지만, 점차 다양한 비율과 색상의 넓은 직사각형 영역에 자리를 내줬고, 부드러운 가장자리가 있고, 제목이 없는(1955년)에서처럼 다른 이미지 위에 맴돌았다. 로트코는 시청자가 자신의 색깔에 싸여 감정적이고 실존적인 상태로 휩쓸리도록 의미했다. 

움베르토 보시오니의 <공간에서의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다. 1972년

나움 가보의 <두상2번>이다. 1953-1957

마르셀 뒤샹의 <사과나무 사이의 집>이다. 1907년.  뒤샹은 변기만 기억나는데 이런 회화 작품도 있다.

마르셀 뒤샹의 <봄의 젊은 남자와 소녀>다. 1911년

마르셀 뒤샹의 <L.A.O.O.Q>다. 1919/1964

마르셀 뒤샹의  <샘>이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의 <로즈 셀러비 스탠딩>이다. 1921년

마르셀 뒤샹의 <자전거 바퀴>다. 1913

앤디 워홀의 <첼시 4시리즈 : 재키 케네디의 초상화 4개>다. 1964년

앤디 워홀의 <20세기 유대인의 초상화 10점>이다.1980년

앤디 워홀의 <20세기 유대인 10인의 초상화에서 온 사라 베른하르트>19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