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박물관

이스라엘박물관 여러화가들1

boriburuuu 2020. 12. 19. 18:45

피터 폴 루벤스의 <아도니스의 죽음(비너스, 큐피드, 삼은 은총과 함께)>이다. 1614년   그림의 유명한 신화적 주제는 오비드의 변태에서 아도니스의 죽음에 대한 설명에 바탕을 두고 있다. 루벤스는 비너스가 피를 흘리며 죽게 만든 멧돼지와의 치명적인 만남 이후 젊고 잘생긴 애인의 몸을 발견하는 비극적인 순간을 묘사하기로 했다. 플랑드르 양식 모티브뿐만 아니라 고전주의 양식을 결합한 이 그림은 슬픔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루벤스는 슬퍼하는 비너스와 함께 피에타 장면을 복제하는 세 명의 울고 있는 그레이스와 흐느끼는 큐피드의 존재로 비극적인 장면을 강화한다. 감정적으로 충전된 장면의 오른쪽에 서 있는 무성한 개들만이 여신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스런 사람들의 슬픔을 의식하지 못한 채, 그 무성한 아름다움 속의 자연이 정상적인 길을 따라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피터 폴 루벤스의 <로물루스와 티투스 타티우스>다. 1630-1634년.

니콜라 푸생의 <예루살렘 신전의 파괴와 삭>이다. 1625-26년.  푸신의 초기 이탈리아 시대의 이 작품은 그의 후원자인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의뢰하여 프랑스 국가원수인 리슐리에 추기경에게 선물로 바쳤다. 당시 바르베리니는 프랑스와 스페인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 종식을 협상하기 위해 헛되이 시도한 교황청의 수장이었다. 푸신은 그의 후원자인 평화주의자가 될 사람과 계몽된 이교도 황제 티투스 사이에 평행선을 그리는데, 그는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의 설명에 따르면 예루살렘과 그 신전의 파멸을 막으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고전 로마 건축과 조각품은 푸생에게 시각적 영감을 제공했다

렘브란트 반 레인의 <감옥에 있는 성 베드로( 무릎 꿇은 베드로)>다. 1631년.  렘브란트의 그림은 체포된 후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감옥의 사도 베드로를 보여준다. 이지 않는 출처에서 부드럽고 황금색의 빛이 그에게 떨어지면서 그림의 많은 부분이 완전히 무명 상태에 빠져 있으나 성자의 속성은 분명히 볼 수 있다. 두 개의 커다란 열쇠는 예수가 그에게 부여한 천국의 열쇠를 의미하며,이 상황에서 수감된 상태의 아이러니를 암시한다.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쭈글쭈글한 손(한때 어부의 손)을 기도에 꼭 쥐고 절망에 빠진 채, 늘어선 얼굴은 노인의 황량함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신의 천사가 아마도 신비한 빛의 원천에서 예시된 것처럼 곧 기적적인 탈출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베드로의 단순한 인간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그의 얼굴을 일종의 후광처럼 에워싸는 광채는 그의 신성함을 전달한다. 숙한 주제에 대한 이 다른 해석은 빛과 그림자의 언어를 통해 마음과 영적 자질의 상태를 묘사하는 렘브란트의 천재성을 예시한다

안소니 다이크의 < 앵글라바 파울루스 폰티우스의 초상>이다. 17세기 전반 


 알버트 쿠이프의 <조경에 나타난 가족의 초상>이다. 1641년.  이 그림은 사냥에서 돌아오는 순간을 포착하는 풍경과 가족 초상화 둘 다다. 상류층에게 부여된 특권인 사냥은 그림이 의뢰되었을 때 유행이 되었다. 제이콥의 수치는 다소 경직되고 뻣뻣하다. 그들의 얼굴은 가족과 닮은 점이 드러나고, 그들의 나이는 그들 아래 땅에 새겨져 있다. 극우의 하녀는 벨로우즈 한 세트를 들고 가족 나들이를 위해 준비한 닭고기와 함께 바구니를 들고 다닌다. 왼쪽에 하인과 함께 있는 아들은 트로피를 막내 여동생에게 건네주고 있어 그림을 활기차게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로 어린 소녀는 사냥된 게임과 배경에서 젖을 짜는 소처럼 자연의 현상금의 상징인 포도 한 다발을 들고 있다. 황금빛 빛깔로  얀 반 고옌의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광대한 풍경은 당시 21세의 청년이었던 아엘베르트가 그렸다. 소는 풀을 뜯고 우유를 짜고, 사람들은 들판에서 일한다. 모든 것은 이 풍요로운 가문에 속하며 그들이 신에게 축복을 받았다는 증거 역할을 한다. 

얀 비토르의 <하가르의 해산>이다. 1650년.

 

 

피터 라스트만의 <하가와 황야의 천사>다. 1625년.

피터 라스트만의 <발람과 그의 당나귀>다. 1622 

베르나르도 스트로찌의 <기적을 행하는 성 베드로>다.  17세기 전반 

바르톨로메오 베테라의 <음악적 악기와 책이 있는 정물화>다. 17세기 중반 

루카스 크라나흐의 <루크레티아>다. 1540년

주세페 디 리베라의 <성 바르톨로뮤의 순교>다. 1618  리베라의 초기 스타일의 세련되고 드문 예인 이 큰 구성은 사도들이 복음을 설교하고 왕의 동생을 기독교로 개종시킨 아르메니아의 성 바르톨로뮤의 순교를 보여준다. 왕의 명령에 따라 바르톨로뮤는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혔다. 리베라는 신화적 풍자 마르시야스의 비슷한 끝을 묘사한 로마 조각의 요소들을 각색했다. 이 주제에 대해  극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잡히고 조화로운 그림을 만들었다. 

토마스 로렌스의 <앤저스타인 부인의 초상화>다. 1795년

 조지 롬니의 <레이디 알비니아 컴벌랜드의 초상화>다. 1784년 6월

에드가 드가의 <"The Steeplechase"가 있는 스튜디오 인테리어>다. 1880-81.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드가는 현대 도시 모티프에 대한 그의 사례를 분명히 강조하면서 현대 주제에서 주제를 그렸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위적인 동료들의 그림과 다르다. 그는 풍경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그는 인공적인 빛을 배경으로 한 장면을 선호했다. 그는 그림을 강조했고, 그는 문밖이 아닌 스튜디오에서 그의 작품 대부분을 만들었다.

샤를 프랑수와 도비니의 <꽃이 핀 사과나무>다. 1860-1862년.

차일드 하삼의 <여름 해돋이(쇼알 섬)>이다. 1892년

막시밀리앙 뤼스의 <노트르담 드 파리, 몬트벨로 부두에서 본 정경>이다. 189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