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미안마(2014.01.04-18)

2014년 1월 17일 (16일) 양곤 시내투어(쉐다곤, 국립박물관,디너쇼)

boriburuuu 2016. 3. 7. 10:41

쉐다곤 파고다에 갔다. 양곤 시내 어디서나 커다란 황금색 불탑이 눈에 띈다. 이 탑이 바로 쉐다곤 파고다로, 미얀마의 자존심이자 국민들의 불심을 대표하는 이미지기도 하다. 2,500여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곳은, 현재에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불공을 드리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585년, 미얀마의 두 형제 상인이 인도에서 부처님께 봉양한 후 얻게 된 머리카락 여덟 발을 이곳에 묻고 탑을 조성한 것이 쉐다곤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 후 지진으로 초기 파고다의 형상은 없어졌고 현재 파고다의 모습은 15세기 무렵 당시 맹위를 떨치던 바고(양곤에서 동북쪽으로 약 70Km 가량 떨어진 고대 도시)의 여왕 신소부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양곤은 ‘다곤’이라는 이름의 상업도시로 번성했는데 바고의 여왕이 이곳에 자신의 몸무게와 같은 양의 금을 보시하여 탑을 만들었고 그 후 역대 왕이나 부자들이 경쟁하듯 이곳에 자신의 몸무게만큼 혹은 그 배에 이르는 금과 보석 등을 보시하여 오늘날처럼 어마어마한 크기(높이 98m)의 탑을 이루게 되었단다. 현재에도 권력자들이나 부자들을 비롯, 국민들의 보시가 끊이질 않고 있어 주변 탑도 진짜 금이라고 했다.. 이 탑은 ‘싱구라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건축 당시 치수를 위해 원래의 언덕을 더 높였다 한다. 필요한 흙은 그 앞의 호수에서 퍼 올려 썼는데, 그 호수가 Royal Lake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깐도지 호수다. 참 대단하다. 입구는 절의 사방에 나 있는데, 각 입구마다 커다란 사자 한 쌍이 호위하고 있다. 금이 64t이나 쓰였고 4600개 이상의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등으로 장식된 파고다라고 했는데 망원경을 사용해도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고 갤러리에 전시된 사진 속에서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요일별로 심지어는 오전, 오후를 나누어 태어난 요일의 부처를 찾아 기도하고 물로 목욕을 시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둥, 문을 장식한 조각, 종, 다양한 파고다 등 볼거리가 정말 많았고 여러 나라와 부족 등이 뒤섞여 관광하고 있었다. 정말 화려하고 정교한 파고다를 오래 보다가 박물관에 가서 유물도 보고 중국화가의 전시회를 보고 밤에 야경을 보러 올 것을 기약하며 돌아섰다.
 
 점심을 먹을겸 일부는 호텔로 우리는 호텔 근처에 있는 백화점으로 갔다. 일행들은 모두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으러 갔으나 호기심이 왕성한 우리는 뚜레이와 함께 타이,인도식당에 가서 신메뉴 등을 시켜 먹었다. 뚜레이 역시 평범한  젊은이이기에 백화점에 들를 때마다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 본다고 했다. 쇼핑을 하려 했으나 적당한 물건이 눈에 띄지 않고 시간이 없다.
 오후에는 양곤 국립 박물관에 갔는데 특별히 뚜레이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미얀마의 국립 박물관은 1952년 건립되어 1996년 현 장소로 이동했는데 이곳은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비롯한 여러 문화재들은 물론이고, 각 민족의 생활양식이나 국내 유명 화가의 그림 등도 전시되어있는 ‘복합 박물관’이다. 총 다섯 개 층으로 되어있어 규모면에서도 그리 작은 편은 아니지만, 너무 여러 분야의 것을 한군데 모아놓아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많은 전시품 중 박물관에서 가장 자랑하는 것은 높이 150여년 역사에 8.1m에 이르는 Lion Throne(사자의 왕좌)인데 이것은 만달레이 왕조의 마지막 왕 티보가 사용하던 것으로,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영광과 굴욕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영국군이 만달레이 왕조의 가치를 격하시키기 위해 캘커타의 박물관으로 가져갔던 것을 독립 후에 반환받았다. 원래 이와 같은 왕좌가 8개 더 있었으나, 나머지는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왕궁을 둘러보아 이미 모조품을 보았었다.
 너무 정교해서 육안으로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장식들이 수 없이 달려있다. 주로 만달레이 왕조의 유물과 바간, 인레의 악기, 유물들이 많아서 많이 보던 것들이어서 반가웠다.
 양곤을 대표하는 제 1 시장인 보조 아웅 산 마켓을 갔는데 영국 식민시절인 1926년 건설된 이곳은, 중앙에 돔형식의 단층 건물이 있고, 그 주변을 2층 건물이 감싸고 있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현지인들은 스캇 마켓(Scott Market)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시장은 주로 금이나 옥 등의 보석류와 의류,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밀집되어있다. 미얀마의 관광지들을 상징하는 그림이 들어있는 면 티셔츠(이상하게 해당 관광지에서는 이런 것들을 팔지 않는 경우가 많다)나 미얀마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입고 다니는 전통 치마 ‘론지(여자용은 타메인)’ 등도 이곳에서 구할 수 있다. 남성용은 주로 체크무늬이고, 여성용은 꽃무늬가 압도적으로 많다. 론지 천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여행 시작이었으면 쇼핑을 했겠지만 ‘쇼핑의 귀재’라고 자처하는 나로서도 살만한 물건이 없었다.
 숙소에 들어와서 잠시 쉬다가 까라웨익 팔래스로 출발했다. 깐도지 호수의 선상 레스토랑. 외형은 호화로운 황금색 새 모양으로, 내부 역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전통 무용수들이 입구에서부터 사진촬영을 같이 하고 서비스하고 있었다. 뒤쪽에 보이는 쉐다곤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다채로운 뷔페 음식과 함께 전통 무용 등의 공연이 펼쳐져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마지막 날이라 짯을 달러로 교환한 우리는 25불로 알고 갔는데 식사 도중 34불, 혹은 30000짯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당황했다. 일행의 짯을 긁어 모아 10만 짯을 만들고 20달러를 지불해서 간신히 결재를 했다. 왠지 속은 느낌이었다. 관광 책자에 10불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는데 미안마의 살인적인 물가인상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택시비도 간당간당하게 있어서 나와서 걷다보니 음악소리가 들린다. 일본밴드가 거리공연을 하고 있다. 박수도 미소도 반응도 없이 앉아 있는 양곤 사람들을 보니 옛날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일행 11명이 박수를 치고 장단을 맞춰 주니 밴드도 흥이 나는 모양이고 청년들 중에 함께 호응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급기야 우리는 중앙 무대에 진출하여 각자 개성에 맞는 춤사위를 펼쳤다. 나중에 한 분이 동영상으로 촬영한 것을 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청년 두 명은 함께 춤출 것을 청해 일행 두 분과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쉐다곤의 야경을 보기 위해 1000짯을 외쳤으나 1500짯이란다. 돈이 없는 우리는 간신히 설득하여 쉐다곤을 갔으나 올라가서 야경을 보기는 시간상(10시에 문 닫음) 어려워 밖에서 사진을 찍고 택시로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마음씨 좋게 생긴 택시기사는 인도인처럼 생겼는데 버마족이란다. 호텔을 못 찾아 뱅글뱅글 돌다가 간신히 찾아 우리는 미안한 마음에 1불을 팁으로 주고 호텔로 갔다. 마지막 날이라 아쉬워진 우리는 환전을 위해 대장님을 찾았으나 못 찾고 돈을 빌려 맛사지를 받으러 갔다.
  역시 양곤은 맛사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