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호텔에는 빠짐없이 현재의 왕과 그 아버지 어머니 사진을 프런트에 걸어놓고 있었다.
<호텔 프런트에 걸어 놓은 현재의 왕과 그 부모 사진>
우리는 7시30분에 호텔을 출발해서 미국 대사관, 훈센총리 관저, 정부종합청사, 프놈펜역 등을 보면서 프놈펜국립대학교 앞을 지나갔다. 캄보디아에는 우리나라 중고차들이 도로를 많이 질주했는데, 이곳의 현대중고차 매매센터에는 많은 차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자는 ‘캄보디아는 모계사회의 특성이 강해서 재산의 대부분은 부인 명의로 되어 있으며, 상속도 장녀에게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또한 프놈펜에서 시아누크빌로 가는 3번 국도는 우리나라의 극동건설이 확포장 했는데, 여기에서는 가장 좋은 도로 중 하나라고 했다. 초등학교 학생의 수업시간은 아침 7시부터 시작해서 11시에 끝나며 대부분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통학한다고 했다.’ 이들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는지, 초등학생도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비가 적게 오는 곳이라, 집집마다 빗물을 받는 커다란 시멘트 물독이 있었다. 예전에는 여자들이 시집올 때는 우리나라에서 이불을 해가듯이, 여기는 반드시 큰 물독을 하나 이상씩 가져왔다고 한다. 이 세상 어디를 가보아도, 사람들은 그곳 기후풍토에 맞추어 사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우리는 휴계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깜뽓(Kampot)에 도착(11:00)했다. 여기는 캄보디아에서 유일한 시멘트공장이 있는데, 지금도 열심히 시멘트를 생산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은 가뭄이 심한 곳이라, 우리나라 금산사 주지인 월주스님이 주민들을 위해 우물을 1,000개 파준 곳이라고 한다. 깜폿 바닷가에 나가 염전을 찾았다. 염전은 우리의 서해안이나 남해안에서 만드는 천일염과 비슷했으나, 그 방법은 확 달랐다. 우리와 같이 소금을 만드는 염전은 논과 같이 편편하게 되어있으나, 흙 위에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았다. 게다가 소금이 생산되기 위해서는 염도 23~25도가 되어야 소금 꽃이 피기 때문에, 우기에는 비가 와서 소금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넓은 염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소금을 많이 생산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 사업가들이 우기와 건기를 불문하고 시설을 갖춰 소금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이곳 염전운영자와 협의를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한 치 앞 만보고, 멀리 생각하지 않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아직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영세하게 염전을 운영하고 있었다.
<깜폿의 염전>
<깜폿 염전의 소금창고를 보는 일행 모습>
<깜폿 염전에 있는 소금창고 내부 모습>
<깜폿 염전에 검은 비닐을 깔지 않고 흙으로 된 모습>
<염전 부근에 "함초"가 자라는 모습>
<깜폿 염전과 소금창고 모습>
우리는 버스로 복꼬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복꼬 국립공원”은 깜폿 시내에서 42Km 떨어진 산 위에 있었다. 여기는 시소왓 왕이 통치하던 프랑스 식민지시절(1922년)에 만들어진 곳으로, 프랑스인들의 별장, 교회, 카지노 등이 있었던 휴양지였다. 이곳 휴양지는 해발 1,075m로, 여기에서 내려다보는 깜뽓 시내, 해변, 시아눅빌 지방의 전망은 가히 놀랄만하다고 한다.
우리가 탄 버스는 산허리를 감돌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위로 올라갔다. 산 중간에는 커다란 여자동상이 있었다. 일행은 그곳에서 버스를 내려 안내자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으나 나는 동상을 보기 위해 위로 뛰어 올라갔다. 보고 난 후 폐허가 된 별장들이 문짝이 뜯겨나간 채 휑하니 서있는 곳으로 갔다. 안에는 누가 했는지 모르겠으나, 낙서의 천국이었다. 여기가 한 때는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로 복잡했으리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은 일어났다가는 쓰러지고 만다는 것이 불변의 법칙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복꼬 국립공원 산 중허리에 있는 폐허가 된 프랑스인 별장 1>
<복꼬 국립공원 산 중허리에 있는 폐허가 된 프랑스인 별장 2>
<폐허가 된 프랑스인 별장 안에 그린 그림과 낙서들>
일행은 다시 여자동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것은 불상도 고승의 동상도 아닌, 평범한 아주머니의 동상이었다. 이동상의 얼굴은 깜폿 해변을 바라보고 있어, 이곳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정상부근에 있는 구 카지노 건물로 갔다.
<복꼬 국립공원 산 중허리에 있는 아주머니 동상>
이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오기 때문인지 음식점과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었다. 여기저기에는 쓰러질 것 같은 별장들이 있는 가운데, 앞에는 커다란 유령의 집 같은 구 카지노가 우뚝 서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건물은 아직 탄탄해 보였다. 지금은 안개가 건물을 휘덮고 있지 않았지만, 어두운 밤에는 옆에서 도깨비가 나타날 것 같았다. 건물을 지나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으나 구름이 끼어 있어 전망이 좋지 않았다. 이곳 산자락에도 어김없이 이름 모를 예쁜 노랑 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복꼬 국립공원 산 정상 부근에 있는 구 카지노 건물>
<구 카지노 건물 입구 모습>
<캄캄한 밤이면 유령이나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은 구 카지노 내부>
<날이 흐려서 내려다 보는 전망이 좋지 않은 모습>
<구 카지노 건물 뒷편을 배경으로>
<이 언덕에도 폐허가 된 프랑스인 별장은 있고>
<구 카지노 건물 언덕에서 내려다 본 교회가 있는 풍경>
<구 카지노 건물 언덕에서 내려다 본 연못이 있는 풍경>
<구 카지노 건물 언덕에 있는 마치 쌓아 놓은 것 같은 돌들>
<이 언덕 산자락에도 이름 모를 노란 꽃은 피어 있고>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와 현재 운영하고 있는 카지노에 닿았다. 여기는 성당, 사당 및 카지노가 있어, 이곳을 돌아보고 알아서 점심을 먹은 뒤 시아누크빌의 숙소로 간다고 했다. 나는 룸메이트와 사당을 들려보았다. 사당은 삼산국왕(三山國王), 천후성모(天后聖母), 복록노야(福祿老爺) 등이 모셔져 있었다.
<신 카지노 건물 왼쪽에 있는 민간신앙 사당>
<민간신앙 사당에 모신 삼산국왕(三山國王)>
<민간신앙 사당에 모신 천후성모(天后聖母)>
<민간신앙 사당에 모신 복덕노야(福德老爺)>
카지노 앞은 조각과 분수 등으로 꾸며놓았고, 정원에는 여러 가지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조성해 놓았다. 건물 안에는 상점, 식당, 숙소 등이 있어 카지노에서 놀다가 마음대로 쉴 수 있도록 했다. 일행 중에서도 몇 사람이 카지노에 올라가 놀았는데, 한 사람만 따고 다른 사람은 조금씩 잃었다고 한다.
<복꼬 국립공원의 신 카지노 건물 전경>
<신 카지노 건물 앞에 있는 거북이>
<신 카지노 건물 안 풍경>
우리는 복꼬 국립공원을 출발(14:20)해, 산을 내려와 시장에 들렸다. 이곳은 재래시장이라,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시아누크빌로 가다 들린 재래시장 풍경 1>
<시아누크빌로 가다 들린 재래시장 풍경 2>
우리는 시장을 보고 숙소인 리조트에 도착하니 17시 30분이었다. 시아눅빌(Sihanouk ville)은 캄보디아 남부에 있는 도시로, 타이만 연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도시의 이름은 노르돔 시아누크 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여서 많은 음식점과 호텔이 있었다.
숙소는 오츠디알해변과 가까워서, 룸메이트와 해변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음식점은 수없이 많았으나, 관광지이기 때문인지 가격은 프놈펜보다 비쌌다. 이곳에는 대장금, 서울갈비 등 한국음식점도 몇 군데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침 마트가 있어서 맥주를 사가지고 와서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시아눅빌의 일행 숙소인 캄보디아 리조트 간판>
<시아눅빌 오츠띠알해변의 야경>
<시아눅빌의 서울갈비(한글 간판) 모습>
<시아눅빌 사자상 앞의 노점상 부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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