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베트남 일주

응우엔 왕조 왕궁을 돌아보며

boriburuuu 2016. 3. 6. 00:36

 훼 역에서 짐을 챙겨 내리자, 택시 승차장을 지나 일행이 타고 갈 버스가 있었다. 베트남은 지금까지의 여행지와 다르게 각도시마다 차량이 달랐다. 베트남에서는 반드시 지방 차량과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하는 곳인 것 같았다.

 

<훼 역전에 택시가 있는 풍경>

 

 훼를 남북으로 가르는 흐엉강(香江, Song Huong)은 길이가 80Km에 불과하지만, 왕궁을 위해서 강을 준설해 폭을 넓힌 것이었다. 식물과 향기로운 나무들이 강을 따라와 향기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흐엉 강변에는 응우엔 왕조의 왕궁과 황제들의 무덤 및 불교사원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흐엉강에 놓인 짱띠엔교(Trang Tian Bridge)1886년에 건설됐으나, 이듬해 태풍으로 피해를 입었다. 그 후 다리는 1899년 아치형 철교로 복원되었으며, 귀스타브 에펠(1832~1923)이 설계한 것으로 410m라고 했다. 그러나 현제의 모습은 1968년 구정 대공세로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일행은 흐엉강의 짱띠엔교 위에 있는 푸수언교를 건너 왕궁 주차장에 도착했다. 응우엔 왕조 왕궁은 훼 구시가에 있는데, 자롱 초대황제가 1804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해서 민망 황제 때인 1832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도시를 감싼 성벽의 길이는 총10Km이고, 성벽의 높이는 7m, 폭은 20m로 쌓았으며 10개의 출입문을 만들었다. 구시가를 들어가려면 해자를 건너 작은 다리와 성문을 통과해야 했다. 이 왕궁은 훼의 가장 큰 볼거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왕궁으로 들어가는 해자와 성벽의 첫 번째 문>

 

 일행을 안내할 가이드는 한국에 가본 적은 없었으나,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사람으로 우리말을 잘 했다. 일행이 버스에서 내려(10:20) 가이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대포가 진열된 곳에 닿았다. 이 대포는 1803년 자롱 황제가 만든 청동대포로 상당히 정교하게 만든 것이었다. 대포 한 개의 길이는 5.1m로 원래는 왕궁의 정문인 응오문 앞에 9개의 포가 있던 것을 깃발 탑 오른쪽에 5개의 포를 진열했고, 이곳에 4개의 포를 진열했다고 한다.

 


<응우엔 앙조의 초대 자롱황제가 만든 청동 대포>

 

 이어서 깃발 탑 앞으로 갔다. 탑은 잔디밭을 가로 질러 멀리 있었지만, 일행은 깃발 탑 사진을 찍고, 왕궁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기도 했다. 붉은 베트남 국기를 매달은 깃발 탑은 어떤 관광객이 오는지를 관계치 않고 바람에 따라 펄럭이고 있었다.

 

<왕궁 반대방향에 있는 깃발탑에는 붉은 베트남기가 휘날리고>

 

 해자를 건너 구시가 내부로 들어가니, 성벽에 둘러싸인 또 다른 축성도시인 호앙탄(황성)이 나왔다. 먼저 얼굴을 내민 것은 동쪽의 왕궁 정문인 응오문(午門)이었다. 응오문은 정오가 되면 태양이 문 위에 떠오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출입문은 모두 5개였다. 중앙의 커다란 출입문은 황제가, 그 좌우에는 무관과 문관이 출입하였으며. 좌우의 작은 문으로는 일반인들이 이용했다고 한다.

 

<응우엔 왕조 왕궁의 해자와 성벽 모습>

 

<응우엔 왕조 왕궁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긴 일행 1>

 


<왕궁의 정문인 오문(午門) 풍경>

 

<왕궁의 정문인 오문 현판>

 

 오문을 들어서면 2개의 패방(牌坊)이 세워져 있었다. 첫 번째 패방에는 군주의 통치이념인 정직탕평(正直蕩平), 두 번째 패방에는 높고 밝은 것은 영원하다는 뜻의 고명유구(高明悠久)라고 적혀 있었다. 이 패방들은 모두 한자로 적혀 있어 당시에도 베트남은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문 안에 있는 "정직탕평"이 쓰인 패방>

 


<오문 안에 인공호수와 독참파(라오스 국화)가 있는 풍경>

 

 바로 앞에는 태화전이 있었으나,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로 서쪽에 있는 묘문(廟門)으로 갔다. 묘문은 종묘를 출입하는 문이라는 뜻으로 이곳을 들어서니 현임각(히엔럼깍, 顯臨閣)이 나타났다. 현임각은 3층짜리 누각으로 민망황제가 1824년에 건설했다. 응우엔 왕조의 건설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공적을 기리는 일종의 왕실사원으로, 황제들이 이곳을 찾아 선조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현임각으로 들어가는 묘문(廟門>

 

 누각의 높이는 13m로 후대의 황제들은 왕궁 내부에 더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해서, 현재까지도 왕궁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남아 있었다. 현임각 안에는 커다란 “9개의 정(九鼎)”이 있었다. 청동으로 만든 9개의 정은 민망황제 때인 1836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1~9대 황제들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무게는 2톤이 넘는다고 한다. 가장 큰 것은 중앙에 있는 자롱 황제의 것으로 높이 2.5m , 무게 2.6톤이라고 한다.

 

<묘문 안에 있는 왕궁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현임각>

 

<왕궁에서 제일 높은 현임각 현판>

 

<현임각 안에 있는 9개의 정>

 

 정원에는 들어가면서 오른쪽에 범종이, 왼쪽에 법고가 있었다. 그 앞에는 바로 테또미에우(세조묘, 世祖廟)였다. 세조묘는 정면 13칸짜리의 기다란 단층 건물이었다. 본래 초대인 자롱 황제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었으나, 현재는 역대 황제들의 위패를 같이 모시고 있었다.

 

<현림각 오른쪽에 있는 범종>

 

<새조묘 앞 향로가 있는 풍경>

 

<현임각 안에 있는 세조묘 건물>

 

 정 중앙에 자롱 황제의 위패를 모시고, 오른쪽으로 2,4,9,8,10대 황제의 위패를, 왼쪽으로 3,7,12,11대 황제 위패를 모시고 있었다. 10명의 황제 위패밖에 없는 것은 프랑스통치에 반기를 들다가 폐위된 황제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8, 10, 11대 황제의 위패는 프랑스군이 완전히 철수한 1959년에 들어와서야 종묘에 모실 수 있었다고 한다.

 


<세조묘 안의 중앙에 모셔진 초대 자롱황제 위패를>

 

<세조묘 안의 역대 황제들의 위패를 모신 모습 1>

 


 <세조묘 안의 역대 황제들의 위패를 모신 모습 2>

 

<세조묘 안의 황제들 위패를 모신 옆에 있는 "편종">

 <세조묘 안의 황제들 위패를 모신 옆에 있는 "편검">

 일행은 흥조묘를 보지 않고 건너 뛰어 휴식을 취한 다음, 창덕문을 거쳐 태화전에 도착했다. 왕이 낮던 자리가 있는 뒤쪽에 있는 문은 왕만이 드나들던 곳이라고 한다.  일행은 유물들을 살펴본 후, 일정패방(日精牌坊)과 월영패방((月英牌坊)을 보고 대궁문(大宮門) 앞에 모였다. 대궁문에서는 뜨검단(자금성)쪽으로, 좌우에 온전한 모습의 건물이 보였다. 국사를 논의하기 위해 입궁한 문관(오른쪽)과 무관(왼쪽)이 머물던 곳이었다. 거기서 가이드는 앞으로 20분간 자유 시간이므로 1140분까지 다시 이곳으로 모이라고 했다.

 


<왕궁의 서문인 창덕문>

 

<태화전 원경>

 <태화전 내부-왕이 앉던 자리>

<대궁문 앞에 있는 "일정(日精)" 패방>

 

<대궁문 앞에 있는 "월영(月英)" 패방>

 

<기름을 펄펄 끓여 범죄자를 죽여 일벌백계를 했다는 가마솥>

 

<뜨검단(자금성) 앞에 입궁한 문관이 머물던 "우무">

 

<뜨검단(자금성) 앞에 입궁한 무관이 머물던 "좌무">

 

 시계를 보니 부지런히 걸어야 북문까지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베트남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된 뜨검단(紫禁城)이지만, 터만이라도 밟아보고 싶어 그곳으로 갔다. 생각했던 대로 궁궐은 계단만 남은 채 허허벌판이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왕조가 바뀌고 사람이 달라진다고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궁궐터는 나의 작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왼쪽에 있는 연수궁과 장생궁은 복구 작업을 하는 중이라 가지 않고, 북문인 화평문으로 향했다.

 

<궁권 터인 뜨검단(자금성)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돌계단>

 

 화평문 앞에는 넓은 해자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며, 해자 옆에는 커다란 나무가 예전의 일을 모두 잊은 듯 무심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해자의 다리를 건너자, 생각했던 것보다 초라한 화평문(和平門)이 서 있었다. 그곳에는 열심히 살아가는 베트남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다리를 건너 되돌아와 아름답게 꾸며진 태평루(泰平樓) 정원을 구경했다. 가이드가 있는 대궁문에 이르니 거의 정시에 도착한 것 같았다. 일행과 함께 걸어서 궁전의 동문인 현인문(顯仁門)을 지나 일행이 출발한 오문을 향해 성벽을 타고 걸었다.

 

<왕궁 북쪽 해자와 성벽 모습>

 

<새로 지은 것 같은 왕궁의 북문인 "화평문(和平門)">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태평루의 정원 풍경 1>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태평루의 정원 풍경 2>

 

<일행이 나온 왕궁 동문의 하나인 "현인문(顯仁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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