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요르단

열네번째 (12.07) 제라쉬-마다바-느보산

boriburuuu 2016. 12. 31. 16:42

아침 일찍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미터를 요구하니 순순히 미터를 꺾어 주었다. 제라쉬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북부터미널로 갔는데 친절하게 버스 위치를 물어 그 앞에 우릴 인계해주었다. 1,75원이 나왔으나 2원을 주었다. 그런데 여기도 버스가 다 차야 가는 시스템이어서 좀 기다렸다. 기다리는 김에 마다바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니 바로 앞에서 20분에 한대씩 간다는 고급 정보도 듣고 해서 기분이 썩 좋아졌다. 여기서 버스는 모객하는 사람, 운전하는 사람, 요금을 받고 보조하는 사람 등 세 명은 협력하는 모양새였다.


<북부 버스터미널>

<가는길에 본 풍경들>




1시간 정도 걸려서 제라쉬 앞에서 내려 주었다. 맞은편에서 타면 된다는 말과 함께. 요금은 1원을 주니 잔돈을 남겨 주었다. 로마 유적을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원형에 가깝게 유지, 보수된 곳은 처음인 것 같다. 제라쉬는 암만에서 북쪽으로  50킬로 떨어졌고 그리스가 발전시킨 10대 도시 중 하나였다. 가르슈, 게라사, 제라쉬로 불린다. 기원전 63년 로마가 점령하고 확장시켰으며 대대적 건축 공사를 했다. 열주도로와 교차로 건물을 비롯, 중앙광장, 북쪽 게이트, 남북쪽 극장 등 도시 건축물들이 건설되었고 106년 트라얀 황제 때 더욱 번성했다. 이 때 목욕장 건물 2동과 수도교를 건설했다. 129년 3차 유대 반란을 종식시켜 로마 5현제 중 하나로 간주되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방문 환영으로 개선문과 마차 경기장, 제우스 신전, 님페움, 아르테미스 신전 등이 건설되었다. 400-600년 비잔틴 시대에 13개의 성당이 건설되었으나 634년 이슬람 군이 들어온 후 모스크가 건립되었다. 아르테미스 신전 앞의 모스크 유적은 이슬람 오마야드 왕조에서 건설했고 746년 대지진으로 대부분 훼손되고 인구 2만 중 4000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십자군이 들어와서 막사를 신전 등의 돌을 캐 성곽을 쌓았고 모래에 파묻히고 말았다. 1906년 스위스 여행가 세트젠이 모래에 파묻힌 유적을 발견하고 1925년 발굴하기 시작했는데 모래 덕분에 보존 상태가 아주 좋았다.  

개선문은 3개의 아치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운데 큰 문은 높이 13m, 폭이 7m, 두께가 6,5m이다. 문 옆에 코린토스 기둥이 서 있는데 주두와 베이스가 모두 아칸토스 잎 문양이다

<개선문>







일반 사람들이 통행하는 작은 문 옆에도 아치 닛치가 있는데 조각상은 사라지고 없다. 여길 지나면 마차 경기장이 있다. 15,0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길이 245m, 폭 52m이다. u자 모양이고 양쪽에 객석이 있었을 것이며 반원 객석 맞은편에 10-20마리가 동시에 출발할 수 있는 출발 문이 있었다. 다른 곳에서도 마차 경기장을 많이 보았는데 이렇게 보존상태가 좋은 곳은 처음이어서 약간 흥분이 되었다.

<전차 경기장 히드포럼의 외부벽>


<히드포럼 내부>

<히드포럼 객석>

<전차경기장 터>

<전차경기장 출입문>


<히드포럼의 전체적인 모습>

이곳을 지나면 남문이다. 개선문과 규모나 모양이 비슷하다. 주두가 아칸토스 잎으로 장식한 코린트식 기둥이고 비잔틴 시대 초기 작품의 원형을 잘 보여준다. 남문 양쪽으로 십자군이 건설한 성벽(3,456m)이 보인다.



남문을 지나면 타원형 광장이다. 이오니아식 기둥 열주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데 기둥에 기증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광장 한 가운데 기념주가 있는데 이오니아 기둥 위에 조각상이 있었을 것 같으나 이슬람 시대에 없어졌다. 양쪽에 있었던 분수는 흔적만 남아 있다.

<타원형 광장과 이오니아 기둥들>

언덕에 제우스 신전과 남쪽 극장이 있다. 광장에서 서남쪽 높은 언덕 높이 일부 벽과 돌기둥이 있는 곳이 22-69년 완공한 제우스신전이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기둥들만 보아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제우스 신전>


<제우스 신전에서 내려다 본 광장>

<제우스 신전의 기둥들>







타원형 광장과 가까운  남쪽 극장은 비교적 복원이 잘된 상태다. 3000여 객석과 진입 통로 무대 등을 보아 화려했던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복원된 무대 뒤 장식 벽과 오케스트라 아래 개구부 장식은 나바테아 고유의 삼각 박공장식이다. 이 극장은 1세기 로마 도미티아누스 황제시대에 건립된 로마 예술의 정수이다. 안내원을 자처하는 남자를 만났는데 가장 공명이 잘 되는 장소, 오리지널과 복원된 곳의 차이, 포토죤 등을 알려주어 매우 유익했다. 인도에서도 가는 곳마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 도움을 받곤 했는데.

<무대>



<공명이 되는 곳.신기하게도 한걸음만 떨어져도 안된다.>

<오리지널 바위와 공명이 되는 동그란 홈>

<로마의 표식>

<포토죤>

아르테미스 신전은 우아한 기둥으로 장식된 신전 입구 문에서 계단을 딛고 한참 올라가 언덕 높은 곳에 우뚝 서 있다. 11개의 기둥과 120m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차나 잡다한 물건을 파는 젊은이가 안내를 자처한다. 신전을 설명하고 지하의 방들을 보여준 후 우리가 감히 올라가지 못했던 신전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심지어는 아르테미스처럼 활을 쏘는 포즈를 취하라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 감사의 표시로 삼색 볼펜을 주었는데 그 청년은 돈을 원했을 것이나 돈을 주기는 좀 그랬다. 신전 옆 22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솟아 있는 넓은 유적터가 에스플란트 사원이다. 비잔틴 시대의 교회터로 규모가 크고 주위에 여러 교회건물이 모여 있다. 제일 위쪽에 성 다미안돠 코스마스 교회, 성 요한교회, 성 조지교회 등이 있으며 그 밑에 성 데오도로스 교회, 그 아래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겅물터가 대성당이다. 성 다미안과 코스마스교회 바닥에 선명한 모자이크 타일이 있다. 아르테미스 입구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면 오른쪽에 큰 목욕장이 있었다. 왼쪽을 올려다보면 규모가 작은 북쪽 극장이 보이고 계속 직진하면 북쪽 게이트가 나온다. 언덕 방향으로 올라가면 도로 옆에 여러 교회가 산재해 잇다. 교회 뒤 언덕으로 올라가면 십자군 시대의 성벽 터를 볼 수 있다. .














열주 기둥은 550년에 520개였지만 지금은 71개 뿐이다. 남쪽은 코린트식, 북쪽은 이오니아식이다. 바닥 포장석은 오리지널이다. 열주도로에 들어서면 처음 님페움(시장건물)을 만나고 육교건물이 잇는 첫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시민들의 마을로 가고 북쪽으로 가면 님페움 신전과 아르테미스 신전이 나온다. 우린 아르테미스에서 거꾸로 돌아 나왔다.




<코링트식 기둥들>

<이오니아식 기둥>



나오는 길에 박물관에 들렀다. 유적들이 잘 전시되어 있어 잠깐 둘러 보았다.




















<박물관 외관>











<돌아오는 버스가 경찰에게 잡혔다>

바쁘게 제라쉬를 보고 암만으로 돌아온 우리는 마다바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역시 1원을 주니 이번에는 더 많은 잔돈을 준다. 그러나 30분이 걸린다는 이 버스는 가는 동안 내내 사람들을 태우느라 1시간 반이 걸렸다. 4시면 보통 문을 닫는데 3시가 다되어가고 있어 우리는 속이 탔다. 운전수에게 가는 길에 성 조지교회가 있으면 내려 달라고 하니 가질 않는단다. 내려서 택시를 타면 1원을 주면 될거라고해서 버스에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에서 내리더니 택시를 잡고 운전수에게 목적지를 알려주고는 타란다. 시간땜에 애태우는 것을 알아차렸나보다. 그래도 우리나라 같으면 운전중인 기사가 차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주는 서비스는 기대조차 할 수 없을텐데 참 놀랍다. 여하튼 시간안에 그리스 정교교회인 세인트 조르지 교회에 보관되어 있는 6세기 시대의 예루살렘 시 지도가 대표적인 모자이크 벽화를 보게 되었다. 옛 예루살렘 지도인데 성경에 기록된 옛 지명과 똑같이 일치하는 아주 귀중한 모자이크 지도가 바닥에 있었다. 마다바는 다수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벽화 및 바닥들이 발견된 기독교 도시이다. 근처의 모자이크화등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느보산에 10디나르에 한시간이라고 한다. 7디나르에 깎아서 시로부터 동북쪽으로 약 10㎞ 지점에 있는 느보산에 갔다. 기독교 구약시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애굽을 나와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다는 곳이다. 이 곳 또한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었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언니는 눈물을 글썽인다. 아랫쪽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샘물이 솟았다고 알려진 모세의 샘에서는 약 3,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물이 샘솟고 있다고 하는데 시간 관계상 멀리서 샘을 바라보기만하고 돌아섰다. 마다바의 남쪽에는 카락성이 있는데 12세기 카락 지역의 통치자였던 리노드 대 샤리용 군주가 회교인 대상(caravan)들을 상대로 공격을 가하던 주요 요새였으며, 1187년대 회교군의 유명한 명장인 살라할 딘 장군에 의해 정복되었다.


<성 조지교회>


<교회 전면>
















<옛 예루살렘 지도>







<작은 나무위에 그린 최후의 만찬>








<느보산 모세 기념교회 입구 조각>



<느보산 아래 모세의 샘-오른쪽 큰 나무>


<기념교회 내부 전면>


<양 옆의 모자이크들>







<모세의 지팡이>

<이스라엘까지의 거리>

<기념교회 외관>

<우물>




<예배를 보고 있는 사람들>




<박물관>











차를 타고 터미널에 내려 달라고 했더니 아저씨는 서 있는 청년들에게 우리를 인계하고 떠났다. 청년들은 어디에 갈거냐고 해서 암만의 다운타운에 간다고 했더니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린 버스에 올라탔고 정말 우리 동네에 우릴 내려주어 5분쯤 걸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는 비좁았지만 한가지 좋은 점은 이스라엘도 그랬지만 따뜻한 물이 퀄퀄 나오는 점이었다. 사막 지역인데 물 공급량이 이렇게 좋다니. 오늘은 한군데를 선택해서 가야한다고 생각했던 두 곳을 그것도 느보산까지 다녀와서 뿌듯햇다. 내일은 페트라로 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