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2014.07.27-08.14)

이스탄불 탁심광장 등을 돌아보며

boriburuuu 2016. 3. 6. 16:53

 룸메이트인 한나와 나는 아침산책에 나섰다. 위쪽으로 올라가니 자미가 있어 들어가보려 했는데 직원이 제지했다. 알고보니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긴 치마를 입어야 한단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자미가 아니라 왕의 아버지와 자식의 관을 모셔 놓은 곳이었다. 푸른 도자기 관 위에 터번을 얹어 놓은 모습이 특이했다. 직원에게 기념품을 주니 우리에게 윗층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때마침 벌개미취언니와 찌니짱이 와서 같이 올라가보니 유서 깊은 이슬람 학교였다. 사진을 찍으며 내부를 둘러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우리가 조그만 친절을 베풀면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신기했다.  자미 주변에는 레스토랑, 호텔 등 언덕 위에 예쁜 건물들이 있고 정원에는 토끼가 뛰어 놀고 있었다.자미를 지나자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여기는 평지가 많음에도 지진의 위험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산비탈에 급경사의 계단을 만들어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또한 지하 주차장이 거의 없어 대부분의 차들은 도로변에 주차해 놓고 있었다. 

 

 

 

 

 

 

 

 

 

 

 

 

 

 

 

 

 

 

 

 

 

 

 

 

 

 

 

 

 

 

 

 

 

 

 

 

 

 우리는 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 큰 길을 따라 올라갔다. 마지막 집을 지나고, 산 8부 능선까지 왔다고 생각되었다. 아직 차가 다닐 수 있는 큰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자, 철책으로 막아 놓고 출입금지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아마 정상에 군부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꼭 올라가야할 일이 없으므로 우리는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면서 언덕에서 시내 쪽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아직 가로등만 졸고 있을 뿐 햇살을 받은 밝은 시가지를 볼 수 없었다.

 

<가로등만 켜져 있는 부르사 시가지 풍경 1>

 .이곳은 차 두 대가 겨우 피해 다닐 좁은 길이었고, 길 양쪽에 바짝 붙여진 건물에는 어김없이 포도넝쿨이 지붕이나 창틀을 타고 자라고 있었다. 여기 땅이 좋은지 넝쿨에는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제는 날이 밝아졌다. 올라올 때는 보지 못했던 접시꽃, 앵두나무, 무화과, 올리브나무, 살구나무, 복분자 등이 자라고 있었다 

 

<주택 건물을 타고 올라간 포도 넝쿨 1>

자미를 지나서 조금 내려오다 시내로 내려가는 새로운 길을 택해 걸었다. 여기부터는 시가지라 가게들도 점점이 들어서 있었고, 2,3층집도 자주 눈에 띄었다. 특이한 것은 좀 오래된 집의 2층이 1층보다 튀어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길을 따라 내려오자 바로 호텔입구였다(06:30).  

 

<부르사에서 일행의 숙소인 호텔 모습>

아침식사를 마친 일행은 호텔을 출발(08:30)해서 어제 오던 길을 되짚어 달렸다. 어제와 같이 마르마라해는 버스를 타고 건너기 시작했다. 올 때는 바다와 산언덕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신경을 썼다면, 오늘은 배에 탄 사람들을 눈여겨보았다. 터키인들은 옛날 몽고에 살던 투르크족이지만, 외형은 많이 변해 있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코가 오뚝하고 반듯하게 서있고, 머리 색깔도 노란색 갈색 등 다양했다. 일행은 그들과 사진을 같이 찍으며 짧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의 터키인들은 사진 찍기를 좋아해서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물으면 생긋 웃으며 “좋다”고 했다. 일행은 다시 마르마라해를 건너 이스탄불로 들어왔다.

 

<배를 타고 오며 본 마르마라해 풍경 1> 

 

<배를 타고 오며 본 마르마라해 풍경 2> 

 

<배를 타고 오며 본 현지 여인들 모습>

 

이스탄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대륙에 걸쳐 있는 도시로 예로부터 유럽과 아시아의 가교 역할을 했다. 즉 이곳은 보스포루스해협을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고, 유럽지역은 다시 골든 혼을 중심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여기에 사람이 최초로 정착한 것은 기원전 1000년경이란다. 처음에는 리고스(Lygos)라고 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및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이스탄불은 로마, 비잔틴제국, 오스만제국을 통틀어 모두 122명의 통치자가 지배했던 도시로 그 기간은 무려 1600년 정도라고 한다. 터키공화국 수립 후, 1923년부터 현재까지 앙카라가 수도이다.  일행이 탄 버스는 이스탄불 신시가지의 중심인 탁심광장에 도착(11:30)했다. 여기서는 3시간 동안 자유 시간이므로 점심까지 해결하고 14:30분에 모이라고 했다. 오늘도 명절연휴라 환전을 하지 못해서 각 팀별로 일정액을 받았다.  탁심광장 중앙에는 12m 높이의 “공화국기념비”가 우뚝 서있었다. 이것은 1928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피에트로 카노니카가 만든 것으로 터키 독립전쟁과 공화국 탄생을 기념하는 조형물이었다. 기념비 앞까지는 빨간색 트램이 오가고 있어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했다.

 

 

 

 

 

 

 

 

 

<탁심광장에 우뚝 선 "공화국 기념비">

기념비가 있는 곳에서 광장 남쪽으로 이어져 있는 이스티클락거리는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데, 차량통행을 제한해 보행자의 천국이었다. 여기는 명품가게, 레스토랑, 은행 및 각국 영사관 등이 밀집해 있었다. 일행은 팀끼리 뿔뿔이 흩어져 중심거리를 걸어갔다. 여기에는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거리를 활보하기도하고 상점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탁심광장 주위의 풍경> 

 

<이스탄불의 명동인 "이스티클락거리" 풍경 1> 

 

<이스탄불의 명동인 "이스티클락거리" 풍경 2>

한 곳에 이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우리도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더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었다. 그 상점의 점원이 과자에 아이스크림을 퍼 담는 모양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마치 마술을 하는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다. 그는 우리를 보자 “쫀득쫀득한 아이스크림”이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왔다갔다는 증거가 아닐까.

 

<쫀득쫀득한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와 재미있는 점원>

 

 

 

<이스티클락거리 옆 골목 풍경>

조금 더 내려가자, 상당히 큰 교회가 있었다. 우리는 교회를 둘러보고 나서 다시 거리로 발길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넓은 길이 좁아졌으나 우리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갔다. 멀리가지 않아 큰 탑이 보였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고 처음 왔음에도, 저 높은 건물이 갈라타탑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갈라타탑은 신시가지를 대표하는 명소로 528년 비잔틴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황제가 이스탄불의 항구를 지키기 위해서 건축했다. 높이 67m, 직경 9m, 벽두께 3.75m의 건물은 당초 등대로 쓰이다가 포로수용소 및 기상관측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총11층인데 10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있어 한 층만 걸어 올라가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는 물론 아시아지역까지 전망된단다. 우리는 이 탑에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너무나 긴 줄이 늘어서 있어 시간이 허락지 않아 돌아서고 말았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니 둥근 지붕들이 나타났고 더 가보니 보스포러스 해협이었다.

 

가는 길에 만난 이름모를 모스크다. 분위기가 밝아서 좋았다.

 

 

 

 

해협에 도착했다. 빵도 팔고 있고.

해협을 왕복하는 유람선이 보인다. 우리도 저걸 타게 되겠지.

 

 

 

낙시꾼들이 다리 위에서 뿐 아니라 아래에서도 낙시질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주변에서는 고등어 샌드위치가 유명하다. 빈 낙시대를 들고 폼을 한번 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