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2014.07.27-08.14)

이스탄불 돌마바흐체궁전을 돌아보며

boriburuuu 2016. 3. 6. 16:54

우리는 다시 갈라타다리로 향해 간다고 생각했는데 가다보니 자미가 나오고 다리가 보이질 않는다. 물어물어 다리에 도착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1층과 2층에는 식당들이 있어 호객행위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내일 보스포러스 해협에 올 계획이어서 우리는 둘러보고 길을 나섰다.  

 

<갈라타다리를 건너기 전에 있는 트램(일종의 전차) 모습> 

 

 

 

<갈라타다리에서 낚시하는 풍경>

 

돌아가는 길에 갈라타탑을 올라갈까하고 다시 갔는데 개미취언니는 기운이 없어 아래에 있겠다고하고 우리는 올라갔다. 줄이 길어 아래 상점에서 아이쇼핑만하고 내려오니 언니가 트램을 타보자고 한다. 중간이라 티켓은 어떻게 끊는지도 잘 몰라 우리는 택시를 타고 광장으로 돌아왔다.

 

 

 

<갈라타다리의 인도, 차도 및 트램 길 모습>

다리 1층은 고등어 케밥집이 있다고 했으나, 내일 들릴 예정이어서 구시가지 끝에서 되돌아 왔다. 돌아오는 길은 올 때 이미 본 곳이라서 기웃거리지 않고 곧바로 올라왔다.

 

<탁심광장과 이스티클랄거리 경계부근의 음식점들이 있는 풍경>

시간이 조금 남아 터키쉬 딜라이트(젤리)를 파는 가게들을 기웃거리다 공짜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구경하다가 약속 장소로 가서 일행과 합류했다. 갈라타 다리는 이스탄불의 유럽지역인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것으로, 골든 혼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원래는 1845년 만든 나무다리였었는데, 화재로 여러 차례 무너진 것을 1994년 길이 490m, 폭 80m의 2층 구조 강철다리로 재건설했다고 한다. 다리 2층 복판에는 트램, 좌우로 차도와 인도가 있었다. 인도가 상당히 넓어 그곳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모이는 장소로 갔더니 일행 대부분이 와있었다. 일행은 당초 계획보다 10분 일찍 버스를 타고 돌마바흐체궁전에 도착(14:40)했다. 돌마바흐체궁전(Dolmabahce Saray)은 오스만제국 말기인 19세기 중반 술탄 압뒬 메지드 1세가 건설했다. 술탄은 쇠퇴해가는 오스만제국의 부흥을 위해 궁전을 전형적인 바로크와 로코코양식으로 지었는데, 베르사유궁전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보스포루스해협에 자리 잡은 궁전은 길이 600m, 홀 43개, 방285개, 발코니 6개 및 목욕탕 6개를 갖추고 있는데, 내부 장식이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인테리어에 사용된 대리석과 가구는 유럽 각지에서 가져온 것이고, 벽은 600점이 넘는 유럽의 명화로 장식했다.  서구문명을 흠모했던 술탄은 궁전장식을 위해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술탄의 화려한 궁전 건설은 재정 부담이 커져 제국의 몰락을 재촉했다니, 현재의 지도자들이 눈여겨 볼만한 것이리라.  궁전 주위에서 버스를 내려 입장권을 살 때까지 시계탑 앞에서 기다려야 했다. 이 시계탑은 1890년 술탄 압뒬 하미드 2세가 세운 것으로, 높이가 27m였다. 알리가 입장권을 사와서 일행은 문 안으로 들어갔다. 궁전은 성처럼 높은 담이 둘러져 있었는데, 해변 쪽으로 나가는 문이 2개 있었다. 이곳은 궁전으로 들어가기 전의 정원으로 중앙에는 연못이 있고, 오리가 물을 내뿜고 있는 분수대가 멋지게 서 있었다.  

 

 

 

<돌마바흐체궁전 앞 시계탑 전경>

 

 

<돌마바흐체궁전 정원 옆문의 아름다운 모습>

 

 

<돌마바흐체궁전 정원에서 바다로 나가는 멋지고 예쁜 문이 있는 풍경> 

 

<돌마바흐체궁전 정문을 들어가 정원에 있는 연못과 분수대>

 

 

 

 

 

<돌마바흐체궁전 건물 입구 풍경>

 

<돌마바흐체궁전 건물 앞에서 멋진 꽃대를 높이 올려 꽃을 피운 선인장>

 

 

 

 

 

 

 

 

 

 

 

 

 

 

 

 

 여기서부터 더 문제였다. 궁전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면 신발 위에 비닐 신발을 신어야 했고, 그룹관광으로 중요지점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움직여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 무척 더뎠다. 게다가 햇볕은 따갑게 내려쪼여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궁전 앞에 선인장이 꽃대를 높게 치켜 올리고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풍경에 황홀해 하면서 줄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드디어 일행이 건물에 들어서서 알리의 설명을 들으며 앞으로 나갔다. 궁전의 중앙 연회장을 중심으로 남쪽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던 남자들의 공간인 셀람륵(Salamlik)이었고, 북쪽은 여성들의 공간인 하렘(Harem)이었다. 일행은 여러 곳을 보았으나 마지막에 들린 그랜드 홀이 궁전의 백미였다. 홀의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36m천장에서 늘어뜨려진 샹들리에는 영국의 빅토리아여왕이 선물했다고 한다. 무게가 4.5Kg나 나간다는 이것은 내가 본 것 중에 제일 큰 것이었다. 이 궁전은 오스만제국의 술탄 6명이 사용했으며, 터키공화국으로 바뀐 후에는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관저로 사용했다. 그는 1938년 11월 10일 이곳에서 사망했는데, 고인을 기리기 위해 궁전 안의 모든 시계는 사망시간인 9시5분에 멈춰져 있었다. 실제로 볼거리는 하렘에 더 많으나, 별도의 입장료를 내는 관계로 일행의 관람은 여기까지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입장료를 내더라도 하렘을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었다. 할 수없이 밖으로 나와 궁전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으나 가슴 한 구석이 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돌마바흐체궁전의 셀람륵 건물>

 

<돌마바흐체궁전의 하렘 건물>

궁전 안에는 촬영금지라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일행은 궁전을 나와 시계탑 건물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단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궁전을 나와 바삐 걸어서 궁전 주변을 둘러보다보니 미술관이 눈에 띠었다. 정말 바쁘게 터키 화가들의 작품을 관람했다. 

일행이 버스를 타고 호텔로 오다가 과일가게에 들렸다.일행이 묵을 호텔은 신시가지에서 아타튀르크다리를 건너 구시가지로 들어간 다음, 우회전해서 한참 올라가는 신흥 공업지구였다. 일행은 골든웨이호텔에 여장을 풀고 개별적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이번 여행 중 이스탄불에서는 아침만 주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