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2014.07.27-08.14)

이스탄불 성 소피아성당을 돌아보며

boriburuuu 2016. 3. 6. 16:58

우리는 선착장에서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 술탄 아흐메트지역 중심부에 도착(12:55)했다. 일행은 알리의 안내로 성 소피아성당(아야소피아성당)을 찾았다. 이 성당은 비잔틴 건축의 백미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1세 때인 537년에 완공되었다. 건물은 길이 77m, 넓이 71.7m로 정사각형의 그리스 십자형 플랜에 가깝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엄청난 규모의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기둥이 아닌 거대한 돔이라는 사실이다. 높이 55m, 폭33m에 달하는 거대한 돔은 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었다.

 


 


 


 


 


 


 


 

<성 소피아성당 전경>

약 900년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당으로 영광을 누려오던 성 소피아성당은 오스만제국으로 넘어가면서 한 때 헐릴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건물의 아름다움에 반한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위기를 넘겼다. 대신 원래의 용도를 바꿔 이슬람사원으로 개조되었다. 성당건물 주위의 미나레는 이 때 건립되었고, 내부의 모자이크화는 회벽으로 덮었다고 했다. 터키공화국에 들어와 1935년부터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었다. 그러나 건물 안에 기독교의 특징인 모자이크화와 이슬람교의 특징인 코란의 금문자나 건물 밖의 미나레 등을 바라보고 있으니, 적과의 동침이 생각나는 묘한 감정이 샘솟았다. 이 건물 기둥 역시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과 바알백의 헬리오스 신전에서 가져와 지었다니.  본당에 들어서니 높고 넓은 돔 건물에 압도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본당 왼쪽에서 보수작업을 하고 있어서 그쪽은 잘 볼 수가 없었다. 입구 양쪽에는 1250L의 물을 담을 수 있는 대리석 항아리가 있었는데, 이것은 고대 페르가몬왕국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내랑에서 본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이 모자이크화는 앱스에 있는 867년에 만들어진 성모자상이다. 성모 마리아는 콘스탄티노플의 수호성인이고 625년에 있었던 페르시아와 북방 아바르족의 포위를 기적적으로 벗어나게 해 줬다고 믿고 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무너지려고 할 때 성모가 나타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고 한다.

이 모자이크화에서 가운데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품에 안고 있다. 양 옆의 두 사람은 성모에게  선물을 바치고 있는데 오른쪽 인물은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성처럼 보이는 콘스탄티노플을 바치고 있다. 왼쪽의 사람은 유스티아누스 황제로 손에 들고 있는 하기야 소피아를 바치고 있다. 불 타 버린 하기야 소피아를 재건축한 황제로 기존 성당이 따라 오지 못할 만큼 아주 거대한 만들고는 "솔로몬, 내가 그대를 이겼다."라고 말했다는 인물이다.  이 성당은 트랄레스의 수학자인 안테미오스와 밀레투스의 물리학자인 이시도르스가 치밀한 과학적 설계에 의해 제작했다고 한다.

 

<본당 중암 돔 모습, 사진 오른쪽은 보수공사를 하는 장비들> 

<페르가몬왕국에서 가져온 커다란 대리석 항아리>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오스만 제국의 베흐메트 2세가 이 성당을 모스크로 탈바꿈시킨다. 내부를 회칠을 하고 아랍어로 쓴 서예판을 달아 놓았다. 이슬람권에서는 서예는 중요한 미술 분야다

중앙 바닥의 오른쪽으로 둥근 큰 원이 있고, 그 주위로 녹색, 붉은색, 흰색 등의 작은 원이 있었는데, 큰 원은 당시 황제가 앉아서 예배를 드리던 곳이었다. 황제가 앉은 의자에서 발을 내린 부분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성소피아성당은 대단한 신전이었으며, 비잔틴황제들의 대관식이 거행된 장소이기도 했다.

<본당 중앙 오른쪽 바닥에 황제가 앉아 예배를 드리던 둥근 원>

중앙 돔을 중심으로는 커다란 원판에 이슬람 문자들이 쓰여 있는 것이 여러 개 있었다. 제일 안쪽의 미흐랍은 오른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는데, 이는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본당 오른쪽에는 마흐무드 1세의 도서관이 있었으나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 기둥들은 에페소 인근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가져와 재활용을 한 것이다.

 

 

 

 

 

 

 

 

 

 

<중앙 돔 부근의 큰 원판에 코란을 금으로 쓴 이슬람 문자 1>

<본당 건물 제일 안쪽에 오른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는 미흐랍> 

<술탄 마흐무드 1세 도서관 안내판> 

<술타 마흐무드 1세 도서관 모습> 

박물관 내부에는 91개의 채광창이 있는데, 이것은 자연광을 이용해 벽화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출구 뒤편에는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비잔틴 황제의 모자이크화가 있었다. 오른쪽은 콘스탄티누스대제로 콘스탄티노플을 봉헌하는 장면이고, 왼쪽은 유스티니아누스황제가 아야소피아성당을 봉헌하는 장면이었다.  일행은 알리의 안내에 따라 2층 갤러리로 올라갔다. 내랑 왼쪽 끝에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있었는데, 계단이 아니라 비탈길로 되어 있었다. 여성들이 예배를 드리는 2층 갤러리 중앙 앞쪽에 푸른색 원이 있었는데, 이것은 여왕의 예배장소라고 했다.

<2층 갤러리 중앙 앞쪽에 여왕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인 푸른색 원>

<2층 갤러리 벽에 만들어졌던 십자가가 이슬람에 의해 훼손된 모습>

중앙 갤러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가니 “천국의 문”이라는 대리석 문이 나오고, 지진으로 바닥에 깔린 대리석이 깨진 흔적이 있었다. 오른쪽 벽에는 중앙에 예수가, 오른쪽에 세례 요한, 왼쪽에 성모 마리아가 있는 모자이크화가 있었다. 그림의 제목(간청, 탄원)이 말해주듯, 세 사람 모두 밝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특히 요한의 표정이 매우 수심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2층 갤러리 오른쪽에 있는 "천국의 문"> 

 

<천국의 문을 들어서 본당 천정에 그려진 천사 모습>

<천국의 문을 들어서자 지진으로 2층 바닥의 대리석이 깨진 모습>

<천국의 문을 들어서 오른쪽 벽에 있는 예수, 마리아, 요한이 그려진 성화>

<위의 그림이 훼손돼 원래의 그림을 보여준 모습>

갤러리 끝에는 두 개의 모자이크화가 더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양옆에는 콤네누스황제와 황제의 부인 이레인이 있었다. 왼쪽 것은 앉아 있는 예수를 중심으로 여왕 조에(Zoe)와 그녀의 세 번째 남편 콘스탄티누스 9세가 있는 그림이었다.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가 콤네누스황제 부부와 함께 그려진 그림>

 <예수가 여왕 조예 및 남편인 콘스탄티누스 9세와 함께 그려진 그림> 

런 모양으로 덮어버린 이슬람 흔적을 걷어 내고 기독교 모자이크화를 복원하고 있었다.



일행은 보수 중인 2층 왼쪽 끝에 있는 출구를 따라 건물 밖으로 나왔다. 입구에는 하기스소피아성당이라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곳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며 일행이 모두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출구로 향했다.

 

 

 

 

이렇게 유물이 아무데나 놓여있고 사람들은 음식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도 덕분에 귀한 유물 중 일부에 잠시 앉아 포즈를 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