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2014.07.27-08.14)

앙카라 아타튀르크영묘를 돌아보며

boriburuuu 2016. 3. 6. 17:04

흐드를륵 언덕은 아침햇살을 받은 붉은색 집들과 골목길이 멋있게 보인다는 말을 듣고 언덕을 올랐다(05:10). 낮에는 그렇게 덥던 날씨가 해 뜨기 전 아침은 제법 서늘했다. 나는 일행 몇 명과 어제 올랐던 언덕에 다시 올라왔는데, 몇 명은 건너편 언덕에 올라와 있었다. 이제 동쪽하늘이 붉어지며 해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너나없이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카메라에만 매달려 있었다. 어느 정도 사진을 찍었는지 같이 온 사람에게도 포즈를 잡아주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제는 해가 솟아올랐고 아침을 먹을 시간도 가까워졌다. 돌아오는 길에 케르반사라이와 시가지 풍경을 보며 숙소로 왔다.

 

<흐드를륵 언덕에 아침해가 떠 오르려는 모습> 

 

<흐드를륵 언덕에서 바라본 사프란볼루의 일출> 

 

<아침 해가 뜬 후 흐드를륵 언덕에서 바라본 사프란볼루 풍경> 

<사프란볼루의 골목길 아침 풍경> 

<사프란볼루의 대상들 숙소였던 케르반사라이 건물 모습> 

<대상들이 북적였을 케르반사라이는 현재 식당으로 영업 중>

아침은 평소보다 조금 빠른 시간(06:50)에 호텔에서 먹었다. 빵, 토마토, 주스 등으로 어느 곳보다 간단했으며 항상 아침에는 나오는 물과 커피도 없었다. 그러나 빵을 워낙 좋아하는 나는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아침 식사 후 일행은 버스를 타고 앙카라로 향했다(08:30). 오늘도 2시간 정도 달리다 휴식을 취했다. 사프란볼루에서 앙카라로 가는 길은 가을과 같은 풍경을 나타냈다. 특히 터키 북부지역은 건조해서 풀들이 말라비틀어지고, 밀 수확을 끝낸 들판은 누런색을 나타내 가을 같은 분위기였다. 버스 창문을 통해 바라보니, 길옆에는 자운영과 비슷한 꽃과 흰 야생화가 군락을 이뤄 넓게 펼쳐져 있었다. 산이나 들판에 있는 돌들은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것으로 흙은 20cm~1m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아나톨리아고원 중부인 앙카라가 가까워지자 푸른색이 보였다.

 

 

 

 

 

 

 

 

 

 

 

 

 

 

 

 

 

 

 

 

 

 

 

 

 

 

 

 

 

 

 

 

 

 

 

 

 

 

 

 

 

 

 

 

 

 

 

 

 

 

 

 

 

 

 

 

 

 

 

 

 

 

 

 

 

 

 

 

 

<터키의 휴게소에서 세차를 해주는 모습>  

일행이 탄 버스는 앙카라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영묘”에 도착(12:00)했다. 여기에서 무스타파 케말은 이름이고, 아타튀르크는 “터키공화국(국가)의 아버지란 뜻”인데 1934년 터키 국회가 그에게 명예로운 이 호칭을 수여했다고 한다. 무스타파 케말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만제국이 패전국이 되어 영토분할을 골자로 하는 세브르조약을 강요당하자 민족독립운동을 주도했다. 1920년 앙카라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2년간 군사작전을 진두지휘해 그리스 점령군을 완전히 격퇴시켰다. 독립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그는 1923년 7월 터키의 독립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로잔조약을 연합군과 체결하고, 수도를 앙카라로 하는 터키공화국을 탄생시키고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재임하는 동안 이슬람 전통복장 폐지, 남녀평등법, 일부일처제, 여성 선거권 부여 및 로마자를 터키어로 표기하는 문자개혁 등 수많은 개혁을 단행했다. 국가를 존폐의 위기에서 구해내고, 조국근대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그는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에 5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마지막 근무했던 돌마바흐체궁전의 시계는 그 이후로 시간을 멈추었고, 매년 그 시간(11. 10. 09:05)에는 전국적으로 그를 위한 추모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또한 모든 도시에 아타튀르크광장과 동상이 있으며, 화폐에도 그의 초상을 새겨 넣어 영원한 터키의 아버지로 기리고 있었다. 일행은 검색을 마치고, 버스에 다시 올라 영묘 후문으로 갔다. 후문에도 군인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었다. 영묘는 직사각형의 커다란 건물로 정문에서부터 약500m에 입구가 있고, 24마리의 사자상이 지키고 있는 참배 길을 걸어야 광장이 나온다. 그러나 일행은 후문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박물관을 돌아본 다음 참배로만 걸었다.  

 

<아타튀르크영묘 후문에서 총을 들고 지키는 터키 군인이 있는 모습> 

 

<아타튀르크영묘 후문 입구에서 영묘로 가는 길의 조각들> 

일행이 건물로 들어가는 시간이 마침 경비병들의 근무교대시간이었다. 이들의 교대는 군인답게 씩씩하고 절도 있게 진행되었다. 영국왕궁 근위병들의 교대식보단 못했지만 운이 좋은 것 같았다.  

 

<아타튀르크영묘 경비병들의 근무교대시간 모습> 

 

<경비병들이 교대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모습>

안으로 들어가자 본당에 아타튀르크의 관이 있었고, 본당을 중심으로 口자의 회랑으로 되어 있었다. 회랑은 독립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박물관 내부에는 아타튀르크가 생전에 쓰던 물건과 각국에서 받은 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또한 그의 진두지휘로 독립전쟁을 치르는 장면을 사진자료와 미니어처로 전시했다.  

 

<아타튀르크영묘 건물 안에 있는 아타튀르크 무덤> 

 

<아타튀르크영묘 1층에 있는 독립박물관의 전시물 1> 

 

<아타튀르크영묘 1층에 있는 독립박물관의 전시물 2> 

 

<아타튀르크영묘 1층에 있는 독립박물관의 전시물 3> 

앙카라(Ankara)는 아나톨리아고원 중앙에 자리한 터키공화국의 수도로,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기원전 2000년경 고대 히타이트왕국의 중심도시였으며, 기원전 8세기에는 프리기아의 요새로, 로마와 오스만제국을 거치는 동안 중부 아나톨리아의 문화와 교역의 중심도시로 명성을 날렸다.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참배로를 걸어 광장 바깥쪽에 있는 회랑을 한 바퀴 돌았다. 그곳에도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사용하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눈에 확 띄는 것은 그가 탔던 자동차, 배 및 선박 등이었다. 

 

<정문에서 아타튀르크영묘로 들어오는 참배로 풍경>

 

<밖의 회랑에 전시된 독립전쟁 당시에 사용하던 대포>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타던 자동차>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타던 선박>

이곳은 앙카라의 높은 언덕이라 도시가 잘 내려다 보였다. 또한 본당 맞은편인 광장 바깥 회랑 중앙에는 터키공화국 2대 대통령인 “이스메트 이뇌뉘(Ismet Inonu)의 묘가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석관으로 장식된 무덤이었지만, 큰 건물로 장식된 초대 대통령 영묘 앞에 있기 때문인지 어딘가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아타튀르크영묘 맞은편에 있는 2대 대통령 이스메트 이뇌뉘의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