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2014.07.27-08.14)

괴뢰메 야외박물관 등을 돌아보며

boriburuuu 2016. 3. 6. 17:06

 어쨌든 아침식사를 끝내고, 호텔을 출발(08:40)했다. 버스를 탄지 1시간 40분 만에 하얀 얼음처럼 반짝이는 소금호수가 나타났다. 주차장에 도착(10:20)해보니, 벌써 여러 대의 버스와 승용차가 있었다.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소금호수로 향했다. 불과 50m도 안 되는 거리였음에도 이곳에 오는 관광객을 맞으려는 상점들이 여러 채 들어서 있었다. 상점들은 기념품을 팔기도 하고, 음식을 팔기도 했다. 소금호수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금 위를 걷고 있었다. 이 호수는 우기인 겨울에는 물이 출렁이는 짠 호수(염호)이지만, 5월에는 물과 소금이 뒤엉킨 상태이고, 지금(8월)은 비가 오지 않고 햇빛이 강하게 내려 비치기 때문에 하얀 소금 위를 마음대로 걸어 다닌다고했다. 지금과 같은 한여름에는 소금두께가 1m가 되는 곳도 있다고 했다. 하얀 소금호수를 바라보니 눈(雪)이 쌓인 것 같기도 하고, 얼음인 것 같기도 했다. 이곳에서 터키의 소금 소비량의 60%이상을 생산한다고 했다. 지난번 겨울에 왔을 때는 물이 엄청 많은 호수였는데 가이드가 김장을 하려면 배추를 담갔다 꺼내기만하면 된다고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소금호수를 걷고 식당으로 나왔다. 거기에는 일행을 안전하게 태우고 다니는 운전기사와 알리가 있었다. 또한 일행들도 소금호수 걷기를 마치고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호수를 구경하기도 했다.

 

 

 

우린 걸으며 사진을 찍다가 커피숍에 들어가 바깥 풍경을 즐겼다.

 

소금호수를 출발(10:55)해서 얼마가지 않아 도로변에서 멜론을 파는 곳이 있었다. 버스를 세우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려가더니 곧 올라왔다. 멜론을 딴 지가 오래되어 꼭지에 붙은 줄기가 말라비틀어졌기 때문에 사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고 했다. 그곳에서부터 한참을 가는 동안 거의 해바라기 밭이었다. 해바라기는 우리나라 것보다 키가 작았으나, 씨가 길었으며 까먹기도 하지만 기름을 많이 짠다고 했다.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큰 도시인 네브쉐히르(Nevsehir)에 도착(13:00)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광장의 시계탑이 아름다웠다. 여기에서 점심을 먹고 14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일행 몇 명과 조금 걸어가서 굴바체(Gulbahce)공원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다. 공원에는 벤치들이 있었는데, 나무그늘이 진 벤치에 현지인 청년 2명 앉아 있어 양해를 구하고 앉았다.

 

<네브쉐히르 중앙광장에 서 있는 아름다운 시계탑>

일행이 네브쉐히르를 출발(14:00)해서 우치하사르 성채와 괴뢰메 파노라마를 보자, 대부분 일어나서 사진을 찍으며 함성을 질렀다. 일행은 곧바로 괴뢰메 야외박물관에 도착했다. 카파도키아(Kappadokya)는 에르지넷스와 핫산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으로 형성된 응회암이었다. 이것이 수백만 년의 세월동안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오늘날처럼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변한 것이었다. 기암괴석은 신이 빚어낸 최고의 예술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었다. 이곳이 유명하게 된 데에는 기이한 자연과 함께 인간의 눈물겨운 역사가 있었다. 로마가 기독교를 승인하기 전의 종교탄압과 이슬람세력을 피해 카파도키아로 숨어든 기독교인들이 바위를 깎아 안식처를 만든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지하도시를 건설하고 교회와 수도원을 만들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왔던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와 자연의 신비로움을 인정받아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괴뢰메 야외박물관"은 동굴교회 밀집지역에 울타리를 쳐서 만든 박물관이었다. 현재 30여 개의 교회와 수도원 등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었다. 교회들은 건립 연대나 건립자가 명확치 않아 프레스코 벽화의 특징으로 이름을 붙였다. 박물관 입구를 들어올 때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입장권을 모두 걷어서 대조해서 입장이 끝났다. 일행은 동선을 따라 입구에서 시계 반대방향을 돌며 관람했다.  

 

 

 

 

 

먼저 오른쪽 첫머리에 있는 “성 바실리우스교회”를 찾았다. 규모가 의외로 작았으며 정면 벽에는 예수의 상반신이 그려져 있고, 남쪽 벽에는 뱀과 싸우는 성 그레고리우스의 성화가 있었다. 다음은 “엘말르교회”로 4개의 기둥이 돔을 받치고 있으며, 중앙 돔에는 예수가 그려져 있었다. 뒤에는 가브리엘천사가 왼손에 공 모양의 십자가가 그려진 것을 들고 있는데, 모양이 사과 같다고 해서 엘마르(사과)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엘말르교회와 붙어있는 “성 바르바라교회”는 11세기에 조성되었는데, 바르바라는 기독교 박해시대에 예수를 믿었던 여인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감금되어 결국 죽임을 당했는데, 이곳은 그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오른쪽 벽화에는 순례자들을 축복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있는데 세 손가락을 펴서 삼위일체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일란르교회”는 성 그레고리우스와 성 테오도르가 뱀과 싸우는 벽화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었다. 뱀과 싸우는 벽화 옆에는 십자가를 쥐고 있는 두 사람은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황제와 그의 어머니 헬레나였다. 오른쪽 벽면에 그려진 세 명의 성인은 성 바실리우스, 성 토마스, 성 오노프리우스란다. 그런데 오노프리우스를 자세히 보면 얼굴에는 수염이 있고 가슴은 여자처럼 볼록하게 나와 있었다. 다음은 수도원 식당이었다. 수도사들이 식당으로 이용했던 곳으로 음식물 저장고, 주방, 식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식당은 한 번에 30명 정도 이용하는 규모이고 벽화는 없었다. 이어서 작은 돌계단을 올라가“카란륵교회(어둠의 교회)”를 찾았다. 여기는 별도의 입장료를 받았으며, 교회 안에는 직원이 지키고 있었다. 대부분의 일행은 들어오지 않았으나 락규를 포함해서 일행 몇 명은 들어가 보았다. 이 교회는 13세기에 지어졌으며 이곳 박물관 중 프레스코 벽화의 보존상태가 가장 좋았다. 어둠의 교회라는 별칭처럼 채광창이 작아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그림의 보존상태가 좋다고 했다. <예수 상> <최후의 만찬> <예수의 일대기> 등 유명한 그림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과연 잘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교회의 벽화들은 얼굴부분의 훼손이 많은데, 여기는 하나의 훼손도 없었다. 벽화들이 훼손된 것은 이슬람에서는 눈을 없애면 상대를 완전히 죽였다고 믿기 때문에 성화의 눈 주위가 집중적으로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끝으로 “차르클르교회”였다. 성화는 예수의 탄생과 성장, 기적, 고난과 부활이라는 3단계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교회는 주로 고난과 부활에 관련된 벽화였다. 중앙 돔에는 예수와 천사들이 있고, 네 귀퉁이에는 4복음서의 저자인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이 그려져 있었다. 성 소피아성당에 있는 그림이 여기에도 있는데, 왼쪽이 성모 마리아, 가운데가 예수, 오른쪽이 세례자 요한이었다. “남자수도원”과 “여자수도원”은 아쉽게도 개방하지 않았다.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아본 사람은 입구의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다 일행이 모두 나오자 밖으로 나왔다. 박물관 입구 100m쯤 밖에 “토카리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교회에 들어가려면 괴뢰메 야외박물관 입장권이 있어야하나, 대장이 모두 걷어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괴뢰메 야외박물관 앞 나무그늘에서 쉬면서 바라본 풍경>


<관광객에게 개방하지 않는 남자수도원 모습>

 

 

<관광객에게 개방하지 않는 여자수도원 모습>

가파도키아는 44도였다. 무더위의 정점이랄까? 그런데도 그늘로 들어가면 그리 덥지 않다. 그래서 바위 속에 집을 만들었을 것이다. 룸메이트와 함께 바위 집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2층 집인데 베란다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내부에 정원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였다. 수공예품을 만들어서 팔고 있나보다. 뭐라도 하나 사줄 것이 있나 하고 살펴 보았으나 쓸만한 물건이 없어 기념품만 주고 돌아섰다.  

 

 

 

 <베란다가 있는 바위 집>

버스를 타고나서, 기독교인들이 바위를 파서 교회를 만들고 프레스코 벽화를 그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비록 파기 쉬운 돌이었다지만,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을까. 생각만해도 눈이 아찔하고 혼자라면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