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탈리아

로마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boriburuuu 2018. 12. 3. 15:56

로마에서는 1주일을 배정했는데 첫날 밤에 도착해서 6일간 보게 되었다. 근교도 가고 싶어 정말 열심히 돌아다녔다.

숙소는 한인민박으로 정했다. 여긴 조,석식을 한식으로 주고 다른 도시에 비해 요금도 저렴한 편이었는데 테르미니역 근처에만 60여곳의 한인민박이 있다고 하니 경쟁이 치열해서일게다. 밤 10시가 넘어 도착하니 사장님이 마중을 나와줘서 편하게 숙소에 갈 수 있었는데 나폴리를 거쳐 와서인지 그리 겁나보이지는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먼저 갔다. 집 근처에 있는 작은 성당인줄 알았는데 그 규모와 화려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로마 4대 바실리카 중의 하나로 에스퀼리노 언덕위에 지어진 이 성당은 몇번의 증개축을 통해 13세기부터 초기 기독교 양식부터 로마네스크, 바로크 양식까지 볼 수 있다. 이 성당은 제일 먼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는데 유명한 눈의 기적에 대한 일화를 갖고 있다. 하루는 로마 귀족인 조반니부부가 꿈에 성모를 만났는데 다음날 아침에 눈이 내리는 곳에 성당을 지으면 아들을 갖고 싶어하는 꿈을 이룰 것이라고 말한다. 한여름인 8월 5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들을 이를 리베리우스 교황에게 말했고 교황도 똑같은 꿈을 꾸어 밖을 보니 에스퀼리노 언덕에 눈이 하얗게 내려 있어 성당을 짓고 이름을 '눈의 성모마리아'라고 붙였단다.

현재의 성당은 5세기 교황 식스투스 3세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 마리아가 공식적으로 예수님의 어머니로 선포된 것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개축했다고 한다.

로마 시장(포로 로마노)에 있던 막센티우스 대저택(서기 312년)의 유물이며, 그 저택 기둥이 온전하게 보전되기는 이것이 유일한 작품이다. 보르지아 가문 출신의 교황 바오로 5세의 지시에 따라 1614년에 건축가 마데르노가 이 자리로 옮겼다. 높이는 14미터 50센티에 기석이 따로 있고 기둥의 지름은 1미터 75센티다. 기둥 꼭대기에 아기 예수를 안은 청동 성모상이 모셔져 있는데 베르텔로의 1614년 작품이다. 달을 밟고 서 있는 성모의 발은 성서 묵시록의 현시를 표현한다. 같은 해 1614년에 기둥 밑에 마데르노가 설계하여 석회석 수조를 설치하였습니다.

 

1377년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종탑은 그 높이가 75미터로 로마에서 가장 높은 종탑이다.

 

성당의 전면은 푸가에 의해 1743년 바로크양식으로 복구 되었다. 성스러운 문이라는 중앙의 문은 중앙 왼편 원주회랑에 위치하고 있다.

 

 

 

 성당 정면의 회랑에 들어가서 안을 살펴보면 회랑 오른편에 스페인 국왕 필립 4세의 동상이 있는데 대성당에 이바지한 바가 많은 인물이어서 여기에 석상이 안치되었다. 석상은 17세기에 베르니니가 초벌을 떴고 루첸티가 제작하였다.

 

 

 

 

 

 

 

성당 내부는 길이가 86미터로 4세기에 지어진 성당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데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과 벽화들이나 부조들이 이 성당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열주랑. 마찬가지로 천장은 황금으로 도금되어 있다. 하지만 신랑의 격자무늬 천장과는 달리 위로 볼록한 모양의 천장이었는데 아마도 건축가의 의지가 반영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 성당이 위대한 예술작으로 돋보이는 것은 성당의 축조형태와 각 부분의 조화 있는 배치 때문일 것이다. 이 성당은 로마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말하던, "우아한 율격"이라는 건축 규범에 입각하여 세워졌고, 두 줄의 기둥을 세워 회중석이 세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기둥 위에는 미술작품들로 장식된 상인방이 놓여 있다. 이 상인방은 제대 쪽의 압시스(반원공간)를 향하여 뻗어나가다 두 개의 아치를 만나기도 한다. 이 아치는 측면에 식스토 경당과 파울로 경당을 짓기 위한 버팀목이다. 기둥과 천장 사이의 벽은 원래 대형 창문들이 나 있던 곳인데 지금은 절반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마리아의 생애를 그린 벽화로 채워져 있다  

 이 격자 무늬의 천장은 줄리아노 다 상갈로의 1489년 작품으로 후에 금을 입혔다고 한다. 이 금은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한 유럽인들이 수확하여 맨처음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성당만 신대륙 금인줄 알았는데. 양 옆의 기둥들은 초기 기독교의 바실리카양식이라 볼 수 있다.

 

바닥의 문양이다. 여러가지 색의 대리석과 돌들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유일한 스테인드글라스다. 성당 정면 장미창문의 스테인글라스인데 새로 제작한 것은 1995년 하이날이라는 화가였다. 거기에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마리아를 '시온의 딸'로 표명한 사건이 그려져 있다. 성모가 그림에서 십계명판과 일곱 촉대로 상징된 구약과 성작(聖酌)으로 표상된 신약을 한데 이어주는 고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세례당이다. 1862년에 이 대성당은 지역 신도들의 본당이라는 자격도 부여되었으며, 그 기회에 대성당의 겨울 합창석이 세례당으로 바뀌었는데 발라디예가 작업한 것이다. 세례조는 고대 술잔 모양의 반암에다 설화석고를 얹어 장식하였다. 세례조 위에는 세례자의  동상이 있고 아기 천사들이 부채살 모양의 꽃대 위에 앉아 있다.

 

이 조각군 전체가 발라디예의 설계에 따라서 금세공인 스파냐가 만든 것이다. 제단 위의 흰 대리석 부조물은 성모 승천을 새긴 것으로 피에트로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원래는 보르지아 경당 외부에 안치하려고 만든 것이다.

 

 

 

 

 

 

 

 

 

 

다시 중앙 홀로 와서, 제단에 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덮개인 발다키노를 볼 수가 있다.  금빛으로 화려한 것이 이 발다키노의 특징이고 천개라고도 한다. 이 발다키노는 중세 시대에 권력자나 신의 자리를 덮는 목적으로 사용됐으며 그 자체로도 우주를 상징하기도 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설계한 것이 발다키노의 대표적 작품이다. 이 성당에서도 교황이 와서 미사를 집전할 때만 이곳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천사들이 성모와 그리스도를 에워싸고 경배하고 있고 성인들이 그려져 있는데, 왼편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조그맣게 그려진 교황 니콜라스 4세가 서 있고, 오른편에는 세례자 요한과 복음사가 요한, 성 안토니오와 조그맣게 그려진 콜론나 추기경이 서 있다. 그림 양끝의 나무기둥에서는 모자이크의 전형적인 장식으로 가지들이 위로 뻗어 올라가 나머지 공간을 다 덮고 있다.

 

 

갔을 때 사진을 찍지 못해 인터넷에서 사진을 가져왔다. 중앙 제단 천개 앞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경당이 있는데, 비오 9세 교황이 추진하여 베스피냐니가 세운 것이다. 그곳에 내려가면 예수님이 태어나서 누었던 말구유의 유물이라고 전해오는 성물이 안치되어 있다.

 

 

 

 

 

"고귀한 베르니니 가문이 여기서 부활을 기다리노라." 1600년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비석치고는 너무도 소박하여 사람들이 실망까지 한다. 베르니니는 평생을 두고 역대 교황들의 뜻을 받들어 예술작업에 정진하였지만 작품마다 자기의 종교적 열성과 심원한 신앙을 쏟아 부었다. 딸 다섯과 아들 넷을 두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에게는 이 신앙심이 전수되었는지 이 대성당의 참사원 성직자가 되었다. 베르니니가 죽은 것은 1680년 9월 28일이었으며, 나이 82세에 교황의 축복을 받고서 숨을 거두었다. 베르니니의 무덤을 손질하는 공사 중에 조각가가 평소에 지니고 다니던 조각칼이 발굴되어 지금은 대성당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