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영국(2017.06.21-07.20)

25일 셜록의 동상과 코난 도일의 카페, 세인트 메리 성당,스코티시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boriburuuu 2019. 8. 15. 19:32

오늘은 에딘버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 인버네스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셜록 홈즈의 동상이 있었고 길 건너에 코난 도일이 작품을 쓰던 카페와 살던 집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씨였다 우린 앞에 있는 세인트 메리 성당에 들어가 보았다. 상당히 현대적이고 밝은 느낌의 성당이었다.

 

 

 

 

 

 

 

 

 

 

 

 

 

 

 

 

 

 

 

 

 

 

 

 

 

 

 

 

 

 

 

 

 

 

 

 

 

우린 먼저 스코티시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 갔다. 뉴타운의 붉은색 네오 고딕풍 건물로 비극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와 어린 왕자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월터 스콧 등의 초상화와 동상이 있다. 앨런 램지와 반다이크, 게인즈버러 등 예술가들의 초상화를 비롯해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았다. 재미 잇는 것은 메리의 왕국이엇는데도 대영제국이 번영을 누렸던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를 특별히 전시해 놓았다는 점이다. 전시물들의 수준도 매우 높았지만 건물 그 자체도 정말 멋있었다. 

 

 

 

정방형의 사각 난간에 금박 작품으로 인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메리 여왕의 초상화>다. 메리여왕은 큰 키에 날씬한 몸매, 금발에 호박색 눈을 가진 뛰어난 미모에다 음악과 시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러나 현명하지 못한 결혼과 정치적 조치로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반란을 유발했으며, 잉글랜드의 왕권을 위협하는 로마 가톨릭교도라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제임스 5세의 외동딸인 메리는 태어난 지 6일 만에 아버지가 죽자 왕위에 올랐다. 1558년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의 동맹을 위해 프랑수아와 정략 결혼해 프랑스 왕비가 되었으나, 1년 만에 프랑수아가 죽자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신구교 간 대립이 팽배했으며, 귀족들은 국왕의 보좌보다는 개인적인 세력 확대에 관심이 많았다. 1565년 단리 백작과의 결혼, 1567년 보스월과의 결혼에 모두 실패해,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스코틀랜드의 귀족들로부터 배척당했다. 1578년 퇴위하고 작은 섬에 유폐되었다. 메리는 부당한 감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풀려나지 못하고 1587년에 처형당했다. 

 

 

 

 

 

 

 

 

 

 

 

 

 

빌렘 비싱과 얀 반 더르 파르트가 그린 <앤 왕비>이다. 빌렘 비싱과 그의 조수 얀 반 더르 파르트가 그린 그림으로 1685년 덴마크의 게오르그 왕자와 결혼한지 2년이 지나 20세였던 앤 공주를 그렸고 1702년 앤공주는 왕위에 오른다. 이 작품은 여러개의 버전으로 그려져 선물로 증정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앤공주 발 밑의 개는 부부간의 정절을 암시하고 기둥은 종교적인 힘을 나타내며 장미는 순결함을 의미한다. 결혼 후 앤공주는 12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모두 죽었고 스튜어트 왕조의 최후의 계승자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