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미술관/에르미타쥐 미술관

제2일 에르미타주 구관 회화 위주

boriburuuu 2019. 8. 17. 18:25

 

 안토니 반 다이크의 <엘리자벳과 와톤의 초상화>이다.

 

 안토니 반 다이크의 <여인의 초상>이다.

 

리오넬로 스파다가 그린  <성 베드로의 순교> 다. 베드로의 고통스러운 표정과 주름까지 정말 생생하다.

라파엘로의 회랑이다. 에르미따쥐에서 유일하게 원본이 아닌 작품으로 예카테리나 대제가 화가들을 바티칸으로 보내 보고 와서 그대로 모사하게 했다고 한다. 사실 바티칸의 회랑도 라파엘로 자신은 전혀 그리지 않고 제자들이 그렸다고 하기도 한다.  라파엘의 성경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데 천장화가 성경의 주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란다. 이 회랑은 레오나르도 다빈치홀과 미켈란젤로홀을 연결하고 있다.(다빈치 2점과 미켈란젤로 작품 1점만이 있을 뿐이지만)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아침>이다. 

 프란시스 고야의<여배우 안토니오 드 자라테의 초상>이다. 이 작품은 그의 절정기의 작품으로 고요한 초상화 갤러리 중 하나다. 이 여배우는 그의 곁에 머물던 사람 중 하나로 초상화를 그린지 얼마 후 죽었다고 한다. 정교하며 살아있는 듯 표현되었고 표정은 슬픈 듯 꿈꾸는듯한 울적함을 담아내고 있다.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모습이다.

역시  그리스인이면서 스페인의 그림을 대표하는 엘 그레꼬의 그림도 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도와 제자들을 다룬 13점의 회화를 남겼는데 이 그림도 비슷하다. 반신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어두운 배경에 생동감 있는 복장을 한 두 성인은 전형적인 길고 창백한 얼굴임에도 사실적으로 보인다. 성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고 성 바오로는 분명한 태도로 책을 눌러서 펼치고 있다.

엘 그레꼬의 <시인 알론소 에르실라 이 주니가의 초상화>다.

안토니 카노바의 <큐피트와 푸쉬케의 키스>다.

 

 

 

궁전이라 천장, 바닥, 벽 등 하나도  남다르지 않은 곳이 없다.

 

 

 

 

 달리의 그림이다. 한참을 봐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등장 인물들은 또 왜 그리도 많은지. 최후의 심판을 그린 그림인 듯하다.

 

 

 

 

 

 

 

 

 

 크라나크의 <성모자>다.

 

 크라나크의 <여인의 초상>이다.

 

라파엘로의 작품도 하나 있었다. 역시 잘 그리는 주제인 초원의 성모자다. 항상 단아하고 교과서적이다. 원형의 그림 틀안의 성모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매우 편온한 사색에 빠져 있다. 어린 예수는 어머니가 들고 있는 책을 바라보고 있는데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듯 보인다. 1500년대 초에 그려진 이 그림은 가운데 두 주인공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뒷배경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눈덮힌 산과 봄의 햇살에 녹고 있는 대지는 성모의 순수한 영혼을 암시하고 있다.

 

 찰스 레블런의 <다달루스와 이카루스>다.

 

 

 

토마스 게인즈버러의 <하늘색 의상을 입고 있는 여인의 초상>이다. 이 여인의 자세는 루브르의 <정숙한 비너스>를 모방하고 있고 양감이 넘치는 머리 장식, 흰색의 인위적인 사용과 여인의 피부색의 아름다움 등은 후대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가볍고 부드러운 붓질은 움직임을 나타내고 잇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게인즈버러의 걸작 중의 걸작이다.

 

 장 오노레 프리고나르의 작품들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은밀한 입맞춤>은 언제 봐도 재미있다. 프리고나르의 대표작으로 젊은이는 은밀하게 방에 들어와 장식천이 달린 여자를 끌어당기며 입맞춤을 하고 있다. 문 뒤편으로는 세명의 여인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고 그로 인해 이 연인들에 대함 감시가 소홀해지고 있다. 문이 조금 열려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네덜란드의 회화 기법에 충실하다.

장 오노레 프리고나르의 <어찌할 수 없는 박탈: 입맞춤에 사로잡혀>다.

 

 

 

엘리자벳 루이즈 비제 르 브륄의 <자화상>이다. 본인도 아름답고 특히 마리 앙트와네트의 초상을 아름답게 그려 그 당시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렸다는 여류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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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브뤼겔 엘더의 <이집트로의 피신 중 휴식>이다.

 

 

레닌의 초상화다. 모스크바에서 얼떨결에 레닌묘를 갔다왔는데...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스 2세의 모습이다.  니콜라이 2세는 1868년 5월 1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황제 알렉산드르 3세와 덴마크 출신의 황후 마리아 표도로브나 사이에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남에게 봉사하는 따뜻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유약했기 때문에 군주감으로는 적합하지 못한 성격이었다. 1896년 5월 26일 알렉산드르 3세에 이어 황제가 되었는데 헌신적인 남편이자 관대한 아버지로 정치보다 가정생활에 더 큰 관심을 쏟았던 그는 막상 황제가 되고 나서는 부황의 뒤를 이어 시대 착오적인 압제정치를 계속 펼쳐 전제 정치의 힘만 더욱 강해져 버렸다. 언론과 사상을 엄격히 통제했고, 교육에도 많은 제한을 가했으며 종교 박해도 더욱 심해졌다. 또한 강력한 산업화 정책으로 큰 성과를 낳았으나, 균형 잃은 산업화는 한편으로 위기를 가져왔다. 결국 그는 2월 혁명을 겪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