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몽골(2013.07.27-08.14)

옹깅히드를 돌아보며

boriburuuu 2016. 3. 6. 23:48



게르를 출발(08:30)하는데 다른 숙소와 같이 여기서도 소금을 뿌렸다. 우리도 예전에는 손님이 나간 후 소금을 뿌렸던 생각이 났다.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숙소를 떠나 초원을 달리자 삭사울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서쪽 지평선 끝에는 하얀 섬 같은 것이 보였으나, 좀 가까이 가자 레이더기지 같았다. 허허벌판 집이라고는 없는 초원에 그곳까지 전봇대가 줄을 맞추어 서있었다. 




<일행이 숙소를 출발하는데 소금을 뿌리는 몽골 전통복장의 여인>


<옹깅사원으로 가는 길에서 본 사막풍경>

 

<허허벌판의 사막에 세워진 전봇대>

 

 중간에서 휴식을 취한 후, 나무들이 푸른빛을 자랑하며 서있는 곳으로 오니 여러 채의 게르가 보였다. 그 중에서 식당과 화장실이 사원처럼 멋지게 생긴 “시크릿 오브 옹기 투어리스트 캠프”에 도착(12:30)했다. 여기에서도 2인 1실의 숙소를 배정 받았다.

<옹깅사원의 숙소 모습>

 




지금까지 게르의 문이 하나로 되어있었으나, 여기는 문이 두개였다. 그러나 문의 틈새가 잘 맞지 않아 여닫기가 만만치 않았다. 또한 천정 공기통도 낮에는 열어놓고 밤에는 닫는 것이었지만, 여기는 유리로 만들어놓아 항상 열어놓고 있었다. 아마 여닫는 것이 불편하여 개선한 것이리라. 하지만 바닥의 장판이 찢어진 곳이 있었고 침대의 쿠션이 좋지 않았으며 시트와 이불도 깨끗하지 않았다.

 

 앞산 바위에는 이곳의 명물인 아이벡스의 조각상을 만들어 놓아 보는 이를 즐겁게 했다. 일행은 걸어서 숙소를 출발해 옹깅히드로 향했다. 옹깅히드(Ongiin Khid, 옹깅사원)는 옹깅강이 구부러지는 양편에 유적이 남아 있었다. 강 북쪽에는 바를림사원(Barlim Khiid)이 있었고, 강 남쪽에는 호탁트사원(Khutagt Khiid)이 있었으며, 이 둘을 합해 옹깅사원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한 때 몽골에서 규모가 큰 사원 중의 하나였으며 전성기에는 천명이 넘는 승려가 있었다고 한다.

 

<숙소 앞산 바위에 있는 아이벡스 조각상>


 이 사원단지도 몽골의 다른 사원들처럼 공산주의 시절이던 1939년 완전히 파괴되고, 200명이 넘는 승려가 처형당했다고 한다. 이후 몽골이 민주화가 된 1990년 이후, 많은 승려들이 유적 한 가운데에 상점을 세우는 등 복구 작업에 힘쓰다가 2004년 작은 사원 하나를 완성했다고 한다. 정문도 없이 비닐 끈으로 사원 경계를 만든 곳을 지나자 무너진 유적들이 나타났다.

 

<새로 지은 사원 내부 모습 1>

 

<새로 지은 사원 내부 모습 2>

 

 먼저 일행을 반긴 것은 겨울이면 따뜻한 물이,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솟는다는 샘물이었다. 이 샘물은 “아픈 사람이 해가 뜨기 전에 마시면 치료에 효과를 본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새벽은 아니었지만 일행은 고무 두레박에 샘물을 퍼서 한 모금씩 마시고 안으로 들어갔다.

 

<옹깅사원의 명물인 샘물>




새로 지은 사원 앞에는 게르로 만든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보잘 것 없는 유물들이었으나 잘 보관관리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들도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좋은 자료들이 되리라. 옆에는 작은 사원이 있었고 문을 활짝 열어놓았으나 스님은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사원 뒷산에 올랐다. 앞에는 산세에 따라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수십 채의 사원이 무너진 채 방치된 모습이 보였다.

 

<미니 박물관인 게르의 겉모습, 뒤의 건물은 새로 지은 사원>

 

<옹깅사원 미니 박물관의 전시물 1>

 <옹깅사원 미니 박물관의 전시물 3> 

<옹깅사원 미니 박물관의 전시물 4> 

 그 앞에는 옹깅강이 어제부터 3일간 내린 비로 제법 많은 황토물이 흐르고 있었다. 옹깅강 건너편에도 엄청난 규모의 사원유적지가 있었다. 저 많은 사원 터에 한 때는 수많은 스님들이 기도하였으리라. 그들이 기도하는 모습과 사원이 파괴되는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언젠가는 무너져 없어질 유적과 유물”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세계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이 어떠한 유물이나 유적을 남기지 않고 이름만 남긴 것일까. 인생무상, 유물무상이라는 생각이 뇌뢰를 스쳤다.

 

<피괴된 사원들의 황량한 모습 1>

 

<피괴된 사원들의 황량한 모습 2>

 <피괴된 사원들의 황량한 모습 3>

 <피괴된 사원들의 황량한 모습 4>

 

<옹깅강 건너편의 파괴된 사원 유적지 모습>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옛 영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적지도 아름다움의 한 자락을 보태고 있었다. 사원유적지가 없다면 이곳은 몰골 사막의 멋있는 오아시스로써 한 몫을 했으리라. 일행은 산을 넘어 옹깅강을 따라 사원을 넓게 한 바퀴 도는 트레킹을 했다. 락규와 나도 그들을 따라 돌다가 옹깅강에서부터 산을 넘어 사원으로 되돌아왔다. 사원에는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모두 환갑이 넘은 나이에 부부동반이 많았다.

 

<뒷산에 올라 내려다본 옹깅사원과 주위 풍경>

 

<뒷산에 올라 사원 뒷쪽을 바라다본 풍경>

 

 









































옹깅강까지 내려가 보았다. 그래도 이 물이 흘러 잔디가 자라고 나무들이 자라 동물들의 식량이 되어 주고 유목민들도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곳에 비하면 그리 훌륭한 경치가 아닐지라도 우린 청정한 공기와 한적한 분위기를 즐기며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 봐도 정말 규모가 큰 게르호텔이었다.




<사원처럼 생긴 우리 캠프의 뒷모습>


<캠프 정면>

낙타 뼈나 치아를 이용해 점을 치거나 놀이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원을 다시 한 번 둘러보고 무너진 사원의 흙벽돌과 돌 벽돌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우리는 샘물에 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큰 물통에 가득 채워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 17시였다. 나는 일정을 정리하고 고비사막에서 처음으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전기를 보고 사진기 건전지를 충전시켰다. 저녁을 먹고,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몽골 전통의상 쇼를 보았다(21:00). 출연자는 관광객이거나 운전기사였다. 일행이 몽골의 전통의상을 입고 나올 때마다 유럽인이거나 동양인이거나를 막론하고 환호성이 터졌다. 세련되지는 않았으나 나름 멋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숙소 뒤 광장에서의 전통 의상쇼 장면 1>

<숙소 뒤 광장에서의 전통 의상쇼 장면 3> 

<숙소 뒤 광장에서의 전통 의상쇼 장면 4 : 3호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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