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밖에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 올랐다. 산 위에 수호신인지 염소와 양 등을 조각해 놓았다. 이곳 날씨는 아침저녁은 제법 쌀쌀하나, 낮에는 무척 더워 일교차가 컸다. 하지만 바람이 불고 건조한 지역이라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했다. 어제 밤에는 비가 내렸고 아침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었으나 서서히 구름이 사라지고 붉은 태양이 방끗 웃으며 나타났다.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더니, 식탁 위에는 하루 운세를 점치는 동물뼈로 만든 기구가 놓여 있었다. 4개가 똑같아 보였으나 몽골인들은 양, 염소, 말, 낙타라고 모두 분명히 구분했다. 일행은 짐을 정리해 옹깅사원 옆에 있는 숙소를 출발(08:00)했다. 초원에는 소, 말, 염소, 양은 보였으나 낙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사막을 벗어나 서서히 몽골 중부지방으로 접어드는 것 같았다. 염소와 양들이 목동의 지휘아래 도로를 건널 때는 모든 차들이 그 자리에 서서 가축이 몽땅 건너야만 움직였다.
<식당 식탁 위에 서 본, 동물뼈로 만든 하루 운세를 보는 기구>
<사막지역 마을의 주유소 풍경>
<사막에 농사를 지은 듯한 야생부추가 있는 풍경>
또한 차가 달리는 도로 옆으로 “사막의 여우”가 날렵하게 뛰어갔다. 이곳의 여우는 원래 작은 것인지 아니면 새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황갈색의 털에 토끼보다 조금 크고 귀가 쫑긋한 것이 귀여워 보했다.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워낙 빨리 뛰어가는 바람에 잡지 못했다. 이곳에도 조롱이 많은 것 같았다. 파란 하늘에는 매가 바람을 타고 천천히 선회하기도 하고 초원에 앉아 있기도 했다.
일행은 도로 옆 언덕에 있는 바위를 등지고 끼리끼리 모여앉아 점심을 먹었다(14:20). 앞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풀이 잘 크기 때문에 가축과 게르가 사막보다 많이 보였다. 15세 전후로 보이는 목동 2명이 초원을 가로질러 말을 달리고 있었다. 넓은 들판이라 가축들이 잘 보일 뿐 아니라 열심히 풀을 뜯고 있어 심심하기 때문에 초원을 오가며 말 타기 시합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초원에 펼쳐진 숱한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
식사를 마친 후 3호차가 먼저 출발(15:00)했다. 차를 타고 작은 언덕을 넘어서자 노랑들판이 우리를 반겼다.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몽골에서는 처음 보는 갓꽃이었다. 갓꽃는 제주도 것보다 키가 작고, 포기도 많이 차지 않아 밭고랑이 훤하게 보였다. 그러나 눈이 모자랄 정도로 넓은 면적에 심겨져있어, 멀리서 볼 때는 도화지에 노랑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았다. 유채밭 옆에는 역시 드넓은 밀밭도 보였다. 이렇게 넓은 면적을 갈고 씨를 뿌리는 데는 트랙터가 아니면 불가능하리라.
<몽골에서 처음 본 갓꽃이 피어 있는 풍경>
하르호링이 가까워지자 포장도로에 들어섰는데, 곧 에르데네 조 사원 앞에 도착(16:00)했다. 에르데네 조 사원(Erdene Zuu Khiid)은 “백 개의 보물”이라는 뜻으로 1586년 알타이 칸이 카라코롬(하르호링의 옛이름)에 있던 유적의 벽돌 등을 토대로 건설했다고 한다. 몽골 최초의 불교 수도원으로 당초 성벽 안에 약 100채의 사찰과 300여개의 게르에 1,000여명의 승려가 거주했단다.
<에르에네조 사원 정문>
<사원의 백탑들>
정문을 들어가 왼쪽에 있는 건물은 달라이 라마 슘(Dalai Lama Sum)이다.아부타이 칸의 아들 알탕이 티베트에 있는 달라이 라마를 방문했던 일을 기념해 1675년에 건립했다. 안에는 자나바자르 동상을 비롯해 달라이 라마의 다양한 수호신과 17세기의 훌륭한 탱화가 있었다.
이 사원은 방치와 번영을 계속하다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사원3채만 남았으며 수많은 승려들이 처형당하거나 시베리아로 끌려갔다고 한다. 사원은 1965년까지 닫혀 있다가, 종교적 사원이 아닌 박물관으로 재건되어 문을 열었다. 그 후, 1990년 공산주의가 물러가고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자 다시 사원으로 재건되었다고 했다.
일행은 에르데네 조 사원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원은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단지 안에 있었다. 성벽을 따라 15m 간격으로 불탑(스투파)이 99개 있고 단지 안에 9개의 불탑이 있어 총 108개의 불탑이 있었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단지 안에 있는 3개의 사원은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으로 부처의 일생 중 왼쪽부터 어린 시절, 사춘기, 성인기의 세 단계를 각각 상징한다고 했다.
<파괴되지 않은 3개의 사원에서>
살아남은 3개의 사원 중, 안뜰 남쪽에 있는 "바롱 조(Baruun zuu)"는 아브타이 칸과 그의 아들이 성인 부처를 기념하여 지은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석가모니의 양편에 두 조각상이 있는데, 왼쪽은 과거의 부처 산자의 조각상이고, 오른쪽에는 미래의 부처가 있었다. 중요 전시물로는 금으로 만든 “영원의 바퀴”와 조각상 등이 있었다.
<바롱 조에 모셔진 성인 부처>
<영원의 수레바퀴와 조각상들>
제일 중앙에 있는 것은 "부처의 사원(Zuu of Buddha)"이었다. 안에 들어서면 어린 부처상이 있고, 왼쪽에는 심판의 신 “아비다”가, 오른쪽에는 치료의 부처 “오토치 마날”이 있었다. 또한 태양의 신 “니암”과 달의 신“다바의 조각상과 참가면도 있었다.
<어린 부처상>
북쪽에 있는 "종 조(Zuun Zuu)"에는 사춘기의 부처를 나타내는 조각상이 있었다. 왼쪽은 자비의 보살인 관음보살의 조각상이, 오른쪽에는 티베트에서 거루파(황모파)불교를 창설한 총카파의 조각상이 있었다. 양쪽 옆 건물에는 각종 탱화가 관광객을 맞고 있었다.
<부처의 사춘기때 모습>
세 개의 사원을 나와 북쪽으로 가니 1799년에 건설했다는 금빛 불탑이 9개 있었다. 이것들은 한 건물에 있었으며, 성벽의 99개의 불탑과 합쳐 108개의 불탑이 되는 것이었다. 또한 옆에는 문이 잠긴 조그마한 푸른사원(Blue Temple)이 있는데, 이것은 에르데네 조에서 최초로 지어진 사원이라고 했다.
우리가 볼 때는 조잡하게도 보이지만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현지인의 모습을 보니 숙연해졌다.
<에르데네 조 사원 전성기에 사용했던 큰 솥과 향로 등을 전시한 모습>
사원을 둘러보고 있는데 북쪽 후문을 통해 몽골사람들이 나가고 있었다. 물어봤더니 사원 북쪽에 있는 “거북이 바위”를 보러 간다고 했다. 일행이 하나, 둘 사원정문을 나가고 있어 망설이고 있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언제 이곳에 다시 오겠냐. 가보자”고 했다. 락규를 포함해 3명은 북서쪽으로 난 길을 뛰다시피 하여 거북이 바위를 둘러보았다. 고대 카라코롬의 경계를 표시하고 도시의 수호신 역할도 했다는 거북이는 큰 돌에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에르데네 조 사원 북쪽의 거북이 바위 1>
부지런히 되돌아서 정문을 나왔더니, 차량 한 대가 늦게 와서 지금 사원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3호차 운전기사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바로 하르호링이었다. 3호차가 없어서 찾았더니, 아들 둘을 태우고 서쪽에서 오고 있었다. 사원 관람을 마친 7대의 차량은 바로 3Km정도 떨어진 “믕흐 텡게르 투어리스트 캠프”로 갔다(17:20).
밥에 게르에서 하는 전통 공연을 보러 갔다. 나중에 울란바트르에서 공연을 볼 계획이지만 . 연주자들과 가수 그리고 서커스로 이루어진 공연은 꽤 훌륭했다. 마두금이란 악기가 꽤 흥미로웠다. 그런데 어린 여자 아이의 모습이 너무 안스러워 우린 서로 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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