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크로아티아

4일 스플리트로 이동 후 리바거리, 디오클레티아누스궁전의 열주 광장,돔니우스 성당,주피터신전

boriburuuu 2019. 9. 12. 23:55

크로아티아는 버스가 더 편리하다고 해서 스플리트로 가는 버스를 예매했다. 그런데 아직 체계적이지 않아 눈치껏 버스를 타야한다는데 당황했다. 운전수에게 8시에 스플리트 가는 버스냐며 예약된 페이지를 보여주니 짐값 20쿠나를 받고 우릴 태워주었고 버스는 정시에 출발했다. 그런데 한참 달리다가 우리 버스가 아니라고해서 무지 당황했다. 겟 바이 버스에서 티켓을 예매했는데 버스 회사는 크로아티아 버스 등이어서 정말 헷갈렸다. 다행히 전화를 하더니 우리 버스를 세우고 그 뒤에 버스를 세워 옮겨탈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짐값은 되돌려주지 않았다. 같은 시간에 같은 지역을 가는 버스가 동시에 있을거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예약된 페이지는 영어로 되어 있어 운전수 등은 그걸 읽을 수가 없다는 것이 난점이었다. 여하튼 버스는 한참을 달려 운전수가 우리 여권을 걷어 갔다. 바로 위 땅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이기 때문이다. 검사를 마치고 보스니아를 한참 달려 다시 크로아티아로 들어갔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보스니아의 승인을 받아 2.4킬로의 다리를 만든다고 한다. 다음 이 지역을 오게 되면 어쩌면 다리로 건너게 될지도 모르겠다.

스플리트 숙소는 구도시 한가운데 있어 돌아다니기는 정말 좋았지만 대신 너무 좁았다. 부킹닷컴에서 9.7의 상품평을 받아 예약을 했는데 가격은 꽤 비쌌는데 너무 좁은 숙소였다. 책에서 3박 이상이면 무료로 스플리트 카드를 준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성수기에는 5일 이상이어야 한단다. 3박이지만 하루는 흐바르섬을, 다른 하루는 시베니크 등 근교 도시를 돌아볼 예정이라 그냥 밖으로 나갔다.

 

 

스플리트는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근교인 살로나(디금의 솔린)에서 태어나 비운의 황제 누메리아누스의 경호대장이 되고 294년 페르시아를 정벌하고 돌아오던 중 황제가 새아버지에게 암살당하고 부하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된 인물이다. 그는 3세기 동안 20명의 황제가 바뀔만큼 불안한 정세를 수습하고 통치권을 강화했는데 나라를 동서로 나눈 후 2명의 황제와 2명의 부황제를 뽑아 분할 통치하는 사두 정치 체제를 확립했다. 그러나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로 유명한데 303년 기독교 탄압을 위한 칙령을 발표한 후 2년 동안 3-4000명의 기독교 신자들을 죽였다고 한다. 305년 은퇴를 선언하고 스플리트에서 남은 생을 보내려고 궁전을 지었으나 안타깝게도 311년 생을 마감했다. 퇴위 후 이 궁전에서 보낸 날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궁전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먼저 리바거리로 갔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청동의 문(남문)과 바다 사이에 있는 산책로로 반짝이는 하얀 대리석 거리를 따라 늘어선 야자수가 매우 아름답다. 역사적인 궁전과 벽과 바다, 현대 건축과 도시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어 3일 동안 자주 왔다 갔다 하면서 즐긴 거리다.

먼저 디오클레티아누스궁전의 열주 광장으로 들어갔다. 궁전 안에서 가장 큰 광장이라는데 규모는 글쎄? 관광객들로 꽉 들어차 있는 모습이다. 광장의 길이는 27m,너비 13.5m의 사각형  뜰에 웅장한 16개의 대리석 열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중 12개의 붉은 화강암 기둥은 이집트에서 가져왔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궁전을 지을  때 이집트에서 12마리의 스핑크스를 가져와 궁전을 장식하는데 사용했는데 2마리만 온전히 남아 있고 10마리는 이교도적이라는 이유로 살로나에서 이주해 온 기독교 난민들에 의해 머리가 잘렸다고 한다.

6-8월 12시 정각에는 로마 병사 6명이 나와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는데 끝나고 난 뒤에도 관광객들을 위해 무거운 옷을 입고 서 있었다.

먼저 돔 니우스 성당에 들어가 보았는데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눈이 휘둥그레졌다. 7세기에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에게 죽임을 당한 성 돔니우스를 위해 지은 성당인데 170년간 황제의 영묘였던 곳에 로마네스크양식의 성당을 세웠단다. 사라진 황제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고 미스테리로 남아 있단다. 대성당은 팔각형의 건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과 24개의 원주 기둥이 둘러싸고 있다.

성 돔니우스의 관이 안치되어 있고 기둥 사이에는 황제와 그의 아내의 얼굴을 조각해 놓았다.

 

 

 

 

 

 

 

 

성당의 문은 동부 아드리아 해 중세의 목각 중 가장 잘 보존된 것으로 13세기 스플리트에서 일하던 화가 안드리아 부비나의 작품이다. 1214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예수의 일생을 조각했고 한쪽 문에 14개씩 총 28개의 장면으로 나눠져 있다.

내부의 기둥들은 코린트식의 화려한 장식으로 되어 있고 이처럼 날개와 식물들로 표현된 것도 있었고 어느것 하나도 예사로운 것이 없어 성당에서 나가기가 싫을 정도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맞은편에 있는 주피터 신전으로 갔다. 자신을 주피터의 아들로 신격화한 황제는 이곳에 신전을 세워 주피터를 숭배하였다. 황제가 원래 이곳 출신의 노예의 신분에서 황제까지 올랐기 때문에 신분에 더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기독교인들이 황제의 영묘로 바꾸면서 이곳을 세례당으로 만들었다.  

 

이반 메슈트로비치가 조각한 세례자 요한의 모습인데 강인하고 슬퍼보이기도 하다. 특히 손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수임에게 세례를 준 거룩한 손이어서 저렇게 표현했을까?

 

신전 입구 오른쪽에 있는 이 석관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건물들을 기독교 건물로 바꾼 요하네스 성인의 관이란다.

 

<천정의 모습>

 

세례당 전면의 이 조각은 세례반의 작품으로 크로아티아 왕을 표현한 것으로 아드리아해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전기 로마네스크 작품 중 하나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