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마일리지가 없어진다고 해서 3만 마일리지를 사용해서 시안 왕복 항공권을 끊었다. 공항 사용료와 세금 등 67,000원 정도가 들었다. 처음엔 혼자 우루무치까지 올라가려 했으나 시안만 간단히 돌아보려 계획하고 밴드에 희망자를 찾으니 두명이 희망해 같이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지에서 일행이 있으면 호텔비나 택시비 등을 절약할 수 있고 혼자 가기 어려운 곳도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점이 많으나 이번 일행들은 여행 경험이 적고 개성이 강해 한마디로 실패한 조합이었다. 돈이 많이 들고 교통이 불편한 외곽은 가려하지 않으니 그렇고 보는 속도도 기다리자니 일정을 소화할 수 없어 이틀이 지나고는 따로 다니기로 했으니 말이다. 이런 실패의 과정도 경험이고 공부다.
09:1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집에서 4시도 되기 전에 길을 나섰다. 1시간 반 전에 도착하면 되는데 여권과 비자를 갖고 있는 일행이 3시간 전을 고집하니 기다리게 하기가 그래서 시간을 맞춘 것이다. 처음으로 가본 2공항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체크인은 모바일로 하면서 좌석까지 결정되었는데 수화물도 셀프로 부치는 시스템이다. 역시 기술 강국 대한민국 답긴 한데 뭔가 어색하다. 안으로 들어가 면세점에서 구매한 유산균을 받아들고 한참을 기다려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에 사는 일행은 대한항공을 타면서도 비지니스를 끊어 따로 갔다. 참으로 처음 보는 캐릭터다. 어치피 알지도 못하는 일행에게 별다른 기대도 없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긴 했지만.
시안에 도착하자 한시간 이상 걸려서 입국 심사를 받았다. 미국과의 사이가 나빴을 당시 미국 스탬프가 찍힌 사람은 따로 줄을 세워 몇시간 고생을 시킨다고 들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도 별 이상없이 들여보내 주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모든 인터넷이 다 되는 것이었다. 3월에 모든 것이 불통이라 고생을 했는데 시작부터 모든 것이 잘 풀리는 느낌이었다.
수화물을 찾고나니 제주에서 온 일행이 면세품을 선반에 올려 놓고 내렸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하는데 또 한시간 이상을 보냈다. 첫날 오전 이동이라 박물관과 천복사 등을 보려 했는데 계획이 자꾸 엉킨다.
인천댁이 공항철도가 생겼다고해서 바이두맵을 열러보니 정말이다. 그런데 다른 도시와는 달리 여긴 공항철도가 따로 있고 지하철과 연결되는 것이어서 숙소까지 3번이나 갈아타야하고 해서 결국 공항버스(25위안)를 탔다. 숙소까지 가서 체크인을 마치기까지 전쟁을 치러낸 느낌이다. 아래 사진은 숙소로 들어가는 내부인데 허쉬 호텔은 규모는 작았으나 깔끔하고 친절해서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숙소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저녁때가 되어 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종업원에게 그림과 번역기로 음식을 주문했는데 음식도 좋은 편이었고 최선을 디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번 조합은 참. 나도 체질식을 하다보니 매운 것을 못먹는 편인데 인천에서 온 일행은 육류를 전혀 먹지 못하고 길거리 음식도 속이 좋지 않아 전혀 못먹는 스타일이고 제주댁은 집에서 전혀 음식을 해먹지 않고 매달 600만원 이상을 카드로 매식을 한다고 하니 개성이 강해도 보통 강한것이 아니다. 아무튼 새우 요리와 야채, 밥으로 저녁을 해결하니 제주댁이 오늘 저녁은 자기가 계산을 하겠다고 한다. 공항에서 그정도 민폐를 끼쳤으니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정작 나중에 보니 본인은 그런 생각이 아니었던가 보다. 저녁을 먹고 종루를 향해 걸어가 보았다. 가는 길에 피트니스 클럽이 있는데 안에 수영장까지 있는 모양이다. 인천댁이 수영강사이고 클럽을 운영하고 있어 관심을 보인다. 우리 숙소는 남문 아래쪽에 위치해서 성으로 들어가는 길에 해자를 만났다. 조명을 밝힌 모습이 아름답다. 명때의 시안 성벽도 예쁘게 조명을 밝혀 놓았다. 안에는 많은 상점들도 있었는데 우리나라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드디어 종루에 도착했다. 종루는 서안 시내 중심부 동서남북이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한 3층의 목조 건축물이다. 중국 전역의 종루 중 역사와 예술적 가치가 최고로 꼽히며 높이 36미터의 3층 누각 꼭대기에 솟은 상투처럼 생긴 나무 심지가 해질 녁이면 아름답게 빛난다. 구리를 덧씌우고 도금까지 해서 멀리서도 빛이 나며 어둠이 내리면 320개의 조명을 환하게 밝혀서 낮보다 자태가 훨씬 수려하다. 종루는 명 홍무 17년(1384)에 현재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창건되었다가, 만력 10년(1582)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면적은 1377.64㎡이고, 높이는 36m이다.
명대에는 낮에는 종을 치고 밤에는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고 하는데 종루는 종을 보관할 목적에서 지은 건물이다. 종루 1층에 있는 철종이 바로 명나라 때 시간을 알리기 위해 치던 종이라고 한다. 대형 종의 진품은 비림 박물관에 있고 여기는 복제품이 걸려 있다. 종루는 못을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건축기법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주변은 대형 꽃과 작은 꽃들로 장식해 놓고 있었고 단연 돋보이는 시의 랜드마크였다.
종루 앞쪽의 꽃시계다. 올해는 중국 건국 70주년이라 어디서나 조형물들을 만날 수 있었고 기념행사도 대단했던것 같다.
우린 종루 앞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저녁에 커피가 안되는 나는 음료를 시켰다. 이 팀하고 다니면서는 맨날 이렇게 먹고 노닥거려야하는 걱정이 앞을 가린다.
종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루가 있다. 고루는 종루보다 4년 앞선 1380년에 창건되었고 밤을 알리는 시계 역할을 해 북이 울리면 성문이 일제히 닫혔다. 높이는 33미터이고 명나라 초기 건축 예술의 정수로 꼽힌다. 청대에 이르러 여러 번 수리되었다고 하고 고루에 있던 북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고루 주변에 여행사들이 있어 장한가 공연을 예매하려고 하니 수수료를 50위안 정도 더 내야 한다. 그래서 다음으로 미룬다. 제주댁이 급작스럽게 금요일 병마용에 가기로 했던 것을 내일로 당기자고 한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해야하는 일정이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힘들었으나 의견을 받아 들여 일정을 바꾸었다. 내일은 새벽 5시면 기상을 해야해서 다음 일정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고루 옆의 분수가 반짝 공연을 하고 있다. 저 여인은 절대로 비켜주질 않는데 고집 센 아이 때문이었다.
고루의 북문 뒤로 베이위안먼(회족) 거리가 이어진다. 시안을 대표하는 이슬람 구역으로 7세기경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온 후이족들이 집단 거주를 하면서 독특한 문화 거리가 조성되었다. 거대한 인파로 꽉 메워진 후이족 거리를 보고 내일 일정 때문에 다음에 오기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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