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몽골(2013.07.27-08.14)

어른터거로 가며

boriburuuu 2016. 3. 7. 00:04

몽골은 보통 밤에는 소나기가 왔지만 낮에는 잘 오지 않았다. 어쩌다 검은 구름이 생기고 소나기가 10분 정도 내릴 때가 있었지만 차를 타고 가거나 비가 일행을 피해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은 예외였다. 잠에서 깼을 때는 비가 많이 내렸다. 일어나 세면을 하고나니 빗줄기는 가늘어졌어도 그칠 기미가 없었다.

 

 오늘은 차를 타고 280Km 떨어진 어른 터거까지 가야했다. 점심에 먹을 밥을 하고나서 아침을 먹었다. 방으로 돌아와 어제 17시경 빨아놓은 양말을 만져보니 아직 덜 말랐다. 이곳은 건조한 지역이라 빨래가 잘 말랐으나, 엊저녁에 비가 내렸기 때문인 것 같았다. 비닐에 싸서 가방에 넣고 체크아웃 했다.

 

 처음에는 무릉 시내여서 포장도로를 달렸다. 그러나 15분쯤 달리니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비는 계속 내렸고, 길은 미끄러워 평소보다 더 천천히 달려야 했지만, 가축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구름이 있어 하늘은 낮아보였으며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어른터거로 가는 풍경 1>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어른터거로 가는 풍경 2>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어른터거로 가는 풍경 3>

  비가와도 기사들은 휴식을 취해야했고, 일행은 생리적인 현상은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으나 위에서 물은 새지 않았다. 잠시 끼리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서양인을 실은 지프 한 대가 멈춰 섰다. 기사가 내리는데 보니 하르호링에서 울란바타르로 돌아갔던 4호차 운전기사였다. 그는 우리 일행을 보고 멈춘 것 같았다.

   “회자정리”란 말처럼 그는 일행과 일주일이상 함께하다 헤어졌으나, 이곳에서 예정 없이 다시 만났다. 하지만 그는 울란바타르에서 오는 길이었고, 일행은 그쪽으로 가고 있는 길이었으므로, 또다시 헤어져야만 했다. 그와 작별하고 일행은 언덕을 넘고 초원을 가로질러 목적지로 향했다. 

 한 시간쯤 차를 달리자 차들이 멈춰서 있었다. 일행뿐이 아니라 다른 차들도 있었다. 차에서 내려 앞으로 가보았더니 강물이 흐르며 다리는 임시로 만든 부교가 있었다. 셀렝게 골의 하놀강으로 이 부교를 건너는데 자동차는 1대당 5,000투그릭을 내야하고 사람은 걸어서 건너는 곳이었다. 만약 이곳을 건너지 않으면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일행은 사진을 찍으며 차가 건너기 전에 모두 걸어서 건너갔다.

 

<자동차는 5,000투그릭을, 사람은 내려서 걸어가는 부교 모습>

 

 

<부교를 건너 바라본 바위산 풍경>

 

  다시 차에 올라 10분쯤 가자 급경사 오르막길인데 오르막 꼭대기 부근에 바위가 있었다. 1호차를 시작으로 모든 차가 천천히 그러나 힘을 줘서 차의 하부가 바위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5대는 잇달아 올라왔으나 3대는 보이지 않았지만 계속 갈 길을 달렸다. 40분쯤 가도 뒤따르는 차가 보이지 않자 휴식을 취했다(12:10).

 

 몽골의 시골은 핸드폰이 있어도 기지국이 없어 통화가 불가능했다. 우리의 옛날처럼 사람이 직접 가지 않으면 저쪽의 상황을 알 길이 없었다. 10분 이상 기다려도 차 3대가 보이지 앉자, 1호차 운전기사는 다른 기사 2명을 태우고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몽골의 시골을 운행하는 기사들은 대부분 운전기사이자 정비사였다. 기사가 여러 명 있으면 어지간한 고장은 자체 수리했다. 웬만한 부품은 중고품이긴 해도 가지고 다녔으며, 그들은 모르는 사람이 고장으로 고생해도 가던 길을 멈추고 도와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1호차가 떠난 지 1시간이 넘어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일행은 다시 비가 조금 오다 그치자 점심을 먹었다. 5대의 차 중에 4대는 문제가 없었으나 1호차를 탔던 사람은 가방이 없어 점심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침 컵라면을 가지고 온 일행이 있어 그것으로 조금씩 요기를 했다.

 


 기다린다는 것은 어디에서나 따분하고 힘든 일이었다. 차에 타기도 하고 밖에 나와 일행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며 초원이나 산 위를 올라가 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은 영 흐르지 않았고, 지나가는 다른 차에게 물어보아도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대장ㅇ님이 상황을 보러 가려고 했으나 남아 있는 기사 두명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3호차 기사에게 가지고 간 담배를 주며 설득을 하니 겨우 대장님을 싣고 갔다. 그러나 또 종 무소식이다. 2시간 쯤 지나 다른 일행을 태우고 돌아온 대장님의 말로는 좁은 길에서 차량 한 대가 바위에 걸려 엔진이 완전히 고장 나 기사들이 모두 차를 분해해서 새로 조립을 하고 있단다.

오늘 일정인 유목민 체험과 어른터거 분화구 산책은 물 건너 간 것 같았다.

 


<기다리다 지쳐 산 위에 올라가서 발견한 야생화 1>

 

<기다리다 지쳐 산 위에 올라가서 발견한 야생화 2>


 날이 흐리고 산과 나무로 만들어진 그늘로 19시가 되자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행은 주위의 마른 나무를 주워서 불을 피웠다. 불쏘시개가 마땅치 앉자 차에 있던 쓰레기들을 모두 꺼내와 피웠다. 여자들은 대부분 차안에 있었으나 남자들은 빙 둘러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비가 조금씩 내렸으나 젖은 옷이 불에 잘 마르고 따뜻해서 좋았다.

 

<저녁 때가 되자 추워져 나무를 줏어다 불을 피우는 일행>

 

  아무생각 없이 불을 쬐고 있는데 갑자기“펑”소리가 진동했다. 불을 쬐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불 주위를 피했다. 그러나 나와 동갑인 분이 왼쪽 가슴을 쓸어안고 아픈 표정을 지었다. 물어보니 무엇인가 날아와 가슴부위에 맞았다는 것이었다. 옷을 올리고 가슴을 살펴보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본인은 괜찮다고 했으나 걱정이 되었다.

 

 이것은 차에 있는 쓰레기를 태울 때, 누군가 사용한 부탄가스를 쓰레기 비닐에 담았는데,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불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아니라 얼굴에 맞았더라면 큰일이었을 것인데, 이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다사다난한 시간이 흐르고 20시가 되자 정비가 끝난 차가 돌아왔다. 모두 환호하며 기뻐했다. 태우던 불을 흙으로 묻고 8시간동안 지루한 휴식을 취한 곳을 출발(20:10)했다.

 

 비는 조금씩 내리고 날은 저물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사들은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 여러 갈래로 갈라진 길을 잘도 찾아 나갔다. 물론 두 번인가 길을 잘못 들었었지만 5백 미터를 가기 전에 다시 돌아와 정확한 길을 찾아 달렸다. 이 길을 수없이 다녔기 때문에 이정표는 물론,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갈 수 있었으리라.

 

 날이 저물고 어두워 낮보다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일행은 저녁을 굶은 채 다음 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어른터거 여행자 켐프”에 도착했다. 일행이 도착하자 캠프에 불은 켜져 있었으나, 잠을 자는지 사람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일행은 전등을 꺼내들고 식당으로 들어가자, 숙소 직원들이 나와 방을 배정받았다. 캠프는 일행이 오는 날이기 때문에 테이블에 음식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일행은 새벽 3시가 넘어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 불을 피우고 잠을 청했다(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