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몽골(2013.07.27-08.14)

울란바타르로 돌아가며

boriburuuu 2016. 3. 7. 00:05

오늘 새벽에 도착해 잠을 잤기 때문에 아침은 9시에 먹기로 했다. 하지만 잠든 지 3시간 후인 7시에 잠이 깼다. 짧은 시간이지만 푹 잔 탓인지 몸이 개운했다. 오늘은 점심으로 라면에 밥을 말아 먹을 예정이므로, 밥을 조금만 했다. 세면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우리와 같은 숙소에 잔 미국인 15명이 트럭과 미니버스를 앞세우고 자전거로 트레킹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젊은 나이였지만 그들의 열정과 체력이 부러웠다.

 

 아침은 빵, 잼, 버터, 과자, 소시지, 계란 프라이, 커피, 홍차 등으로 대부분의 여행자 캠프와 비슷했다. 그러나 잼이 다른 곳보다 맛있었고, 빵이 2가지였으며, 커피, 홍차, 우유, 설탕을 넣은 통을 테이블마다 올려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곳은 한 곳만 놓아둔 것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숙소에 수건이 없고, 전기불이 잘 들어오지 않았으며, 샤워장에 물이 잘 나오지 않는 단점도 있었다.

 

<일행의 어른터거 숙소인 여행자 캠프>

 

 이곳은 새벽에 도착해 잠만 자고 아침을 먹은 후, 숙소를 출발(10:00)했다. 일행은 볼강에서 휴식을 취하며 주유를 마쳤다. 볼강은 몽골의 아름다운 아이막의 수도이지만, 시간이 없어 바로 길을 떠났다(11:00). 여기서부터는 포장도로라 승차감이 좋았으며, 차가 속도를 높였다. 55분쯤 달리자 오르홍 아이막의 에르데네트에 도착했다.

 

<볼강으로 가는 길에서 본 풍경, 비가 내려도 가축들은 풀을 열심히 뜯고>

 


 “에르데네트(Erdenet)는 구리광산으로 유명한 곳으로 몽골의 작은 러시아라고 불렸다. 약 8,000명의 사람이 광산에서 일하며, 광산은 이 도시의 생명줄이었다. 공산당 집권기에는 에르데네트 인구(약73,450명)의 3분의 1이 러시아인이었지만, 지금은 약 1,000명 정도의 러시아인이 광산의 기술고문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에르데네트 입구의 시가지 모습>

 

<에르데네트 시가지를 지나 구리광산으로 들어가는 물파이프>

 


 몽골의 중북부지방 북쪽은 집들이 러시아 풍이 많았는데, 여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급경사의 지붕에 거의 붉거나 푸른색 맞배지붕이었다. 이 도시는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었으며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도시는 오래전에 건설된 탓인지 가로등이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몽골에서는 울란바타르에서만 보았던 아파트도 눈에 띠었다.

 

 여기의 구리광산은 시내 북쪽에 있는 노천광산으로 공산정권시절 몽골에서 개발된 대규모 사업 중의 하나였다. 이곳의 구리와 몰리브덴(금속원소) 생산량은 몽골 전체 수출량의 30%를 차지한다고 했다. 이곳도 한 번쯤 구경할 만한 곳이었지만, 시간이 없어 가보지 못했다. 여기에서도 주유를 하고 길을 떠났다(12:15).

 

 기사들은 음식점에서 시켜서 먹었고 일행은 대부분 음식점 주변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14:20). 나는 락규와 가스버너에 불을 켜고 라면을 끓여 준비해온 밥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500Km를 달리는 여정이었지만 포장도로라 잘 달렸다. 도로 옆에는 하르호링에 올 때 보았던 유채 밭과 밀밭이 눈이 모자랄 정도로 이어져 있었다. 울란바타르가 가까워지자 일요일에 놀러왔다 돌아가는 차들이 많아 속도가 줄어들었다.

 

<울란바타르로 가는 비 그친 도로변 풍경 1>

 

<울란바타르로 가는 비 그친 도로변 풍경 2>

 


<울란바타르로 가는 비 그친 도로변 풍경 4>

 

<울란바타르로 가는 비 그친 도로변 풍경 5>

 


<이곳의 밀은 누렇게 익어가고>

 









 드디어 울란바타르에 들어와 오늘 저녁을 먹을 설악산 식당에 도착(20:30)했다. 이곳은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한식집이었다. 3조가 제일 늦게 도착했는데, 자리에는 삼겹살 두루치기가 놓여 있었고, 불판에는 김치찌개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일행과 15일간 동거 동락한 기사들과 작별하는 자리라, 기사들에게 일행의 정성이 담긴 팁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