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탈리아 남부와 동부

폼페이 포트나 마리나, 바실리카, 포로 로마노, 대중 목욕탕

boriburuuu 2020. 8. 16. 11:59

오늘은 다시 기차역을 찾았다. 소렌토 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폼페이에서 내리면 된다. 어제 가는 길에 삼대가 함께 여행하는 한국인들을 만났는데 내가 책을 갖고 있는것을 보고 반가워하며 말을 걸었었다. 피렌체에선가 소매치기를 당해 책까지 분실해서 블로그 등을 보며 그때 그때 다니고 있다면서. 폼페이스카비역에서 내리면 바로 연결되었다.

가는 길에 상점 들이 레몬으로 장식되어 있다. 포지타노도 그렇고 이 지역은 레몬이 유명하다.

원래 입장료는 12유로지만 아르떼카드를 이용했다. 사실 전에 가봤던 곳이라 생략하려했으나 2017년에 재정비를 했다고해서 다시 가 보았는데 예전에 비해 규모가 많이 커진 느낌이 들긴 했다.

멀리 포트나 마리나가 보인다. '해변의 문'이란 뜻으로 폼페이로 들어가는 문이다. 원래 폼페이는 아말피와 마찬가지로 해안 절벽에 형성된 마을이었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반경 30킬로가 화산재에 묻히고 육지가 1.2킬로나 늘어나면서 육지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두 개의 문이 있는데 당시 마차가 다니던 길과 사람이 다니던 길을 구분해 놓은 것이다.

당시에 지금의 콘크리트와 비슷한 광물을 사용해 벽을 쌓은 모습이다.

 

바닥 돌의 모습인데 긴 세월에도 끄떡없이 잘 버티고 있다.

 

 

 

 

 

 

공공의 목적으로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바실리카로 2층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다. 바실리카는여러 용도로 쓰여졌는데 주로 시민을 위한 장소였으며 당시 2층에서는 법정 소송이 이루어졌단다. 가둥들 사이의 노천 마당은 시장이 들어서 각종 거래를 한 공간이었다. 바실리카로 들어서면 둘러싼 벽이 보이는데 이 벽과 높이가 다른 다른 기둥들이 있어 대지진으로 폼페이의 많은 부분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추측하게 하고 이 바실리카의 건축구조는 중세시대 이후의 기독교가 성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본따 만든 것으로 하나의 성당 건축양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포로 로마노다. 로마시대에 계획도시에는 전쟁을 위한 병사를 모집하거나 대표를 선출하는 투표장, 시장, 신전, 목욕탕 등 도시의 주요 시설이 이 포로 로마노를 주변으로 형성되었다. 원래 흰 대리석이 전체 바닥을 덮고 있었는데 나폴리 북쪽 카세르타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훔쳐가서 지금은 모래 바닥이다.

 

 

 

 

곡물 창고 안에는 사람 모습과 동물등의 석고본이 전시되어 있는데 화산 폭발 당시 부드러운 화산재에 묻혀 오랜세월이 흘러 시신은 썩어 없어졌지만 화산재는 그대로 굳어지면서 생겨난 공간에 석고를 부어 굳힌 뒤 주변 화산재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석고본들이다. 이곳은 베수비오 화산이 가장 잘 보이는 명소이기도 한다.

 

 

 

 

 

 

 

 

 

 

 

대중 목욕탕에 도착했다. 지중해 전역에 분포된 수많은 로마시대 목욕탕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목욕탕이다. 로마시대 사람들은 하루 일과가 2시에 끝나면 하루를 목욕탕에서 마무리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청결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해 도시도 항상 깨끗하게 관리해 큰 전염병이 돌았다는 기록이 없단다.

 

 

 

 

 

 

 

개인이 자신의 사물을 놓을 수 있었던 공중 목욕탕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