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미술관/크뢸러 뮐러 미술관(고흐의 숲)

크뢸러 뮐러 미술관 5

boriburuuu 2020. 11. 8. 14:38

브라케의 작품이다. <카드 놀이가 있는 정물> 1919년.

파블로 피카소의 <기타>다.  1919년. 

파블로 피카소의 <바이올린>이다.  1911-12년.  피카소와 브라크는 20 세기 초반에 입체파를 발전 시켰다. 운동은 여러 단계를 거쳤는데 바이올린은 분석적 입체파의 한 예다. 이 단계에서 그림이나 물체는 해부되고 조각으로 나뉘며 여러 관점에서 묘사된다. 표면 네트워크 자연스러운 관점의 환상이 완전히 사라진다. 대신 선과 그림자로 구분하여 서로 옆과 뒤에 배치 된 표면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분석 입체파의 전형적인 예는 구성이 중간에서 구성되고 가장자리를 향해 '페이드 아웃'된다는 것인데 그림의 타원형 모양도 눈에 띈다. 이 그림에서 시작점인 바이올린은 목의 컬, 현, 다리, 몸의 곡선 및  구멍의 모양과 같은 몇 가지 영역에서만 인식 할 수 있다. 색상은 없어지고  황토색, 갈색 및 회색으로 제한된다. 모든 관심은 양식을 사용한 실험에 집중된다.

파블로 피카소의 <독서중인 여인>이다.

 

지노 세베리니가 그린<기타가 있는 정물>이다.

지노 세베리니의 <피에로>다. 1923년.

 

바트 반 더 렉의 <폭풍우>다. 1911년.  반 더 렉은 색상, 형태 및 내용을 근본적으로 단순화하기 위해 작전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네덜란드 주제인 남편을 위해 바다를 바라 보는 어부 여성들은 여전히 ​​잘 알려져 있다.반 더 렉은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을 만드는 것으로 그의 예술적 경력을 시작한다.이 경험은 후기 그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고립되고 정의된 형태와 그의 강력한 색채 사용은 이시기에서 비롯되었다. 1910 년에 그의 작품은 점점 더 추상적이되었다. 현실은 여전히 ​​그의 출발점이지만 그는 모든 모양을 블록으로 축소했다. 또한 그는 기본 색상 인 빨간색, 노란색 및 파란색 만 사용하고 회색, 검은 색 및 흰색을 추가했다. 그림에서 그는 항상 원래 색상에 가장 가까운 색상을 사용한다. 해변은 노란색, 바다색, 검은 색, 흰색 및 파란색의 여성복은 슈베닝겐의 정통 전통 의상 색상을 사용한다.  1917 년 반 더 렉은 몬드리안 및 도에스부르그와 함께 De Stijl의 공동 창립자이지만 궁극적으로 절대적인 추상화에 대한 탐구를 너무 많이 발견하고 2년 후 운동을 떠난다.

바트 반 더 렉이 그린 <고양이>인데 간결하고 강렬하다. 반 더 렉은 주로 잡지 De Stijl의 공동 창립자로 알려져 있다. 1916 년에는 몬드리안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업에서 급진적인 추상화를 선택하고 기본 색상 인 빨강, 노랑 및 파랑을 사용한다. 그 선택에 앞서 새로운 시각적 관용구에 대한 탐구가있었다. 고양이가 그 좋은 예다. 파리를 방문하는 동안 그는 루브르 박물관의 고전 이집트 예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에 영감을 받아 그는 매우 단순화된 형태와 차분한 색상의 스타일을 개발한다. 결과적으로 고양이에서 그는 측면과 옆면에서 동물을 묘사하고 검은 색, 흰색, 빨간색 및 주황색 만 사용한다. 

 

페르난도 레거의 작품들이다. <카드놀이하는 군인들>이다. 1917년.  레제는 세진과 나중에 피카소와 브라크의 영향을 받아 입체파 스타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예보다 훨씬 더 강조하여 그는 원뿔, 구 및 원통과 같은 그림과 물체를 볼륨으로 묘사한다. 그의 작품에서 실린더는 너무나 자주 등장하여 프랑스 평론가는 그를 입체파가 아닌 '튜 비스트'라고 불렀다. 1914 년 8 월, 제 1 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때 레거는 참호 건설을 위해 징집되어 전선에 배치된다. 그는 나중에 그림으로 발전시키는 많은 그림을 그립니다. 군인 카드 놀이는 독가스 공격 후 파리에서 회복하는 동안 만들어졌다. 로봇이 그림에서 레제는 입체파와 기계의 미학을 결합한다. 병사들은 살과 피의 사람이 아니라, 튼튼하고 기하학적 인 모양과 강철 단조 파이프와 같은 팔을 가진 로봇처럼 보인다. 반복되는 요소는 전쟁의 기계를 연상시킨다. 작고 넓은 색상 영역의 번갈아 가며 그림의 역 동성을 제공한다.

페르난도 레거의 <숲 속의 누드>다. 1909-1911년  레거의 첫 번째 대형 캔버스 인 나무 속의 누드 피규어는 세잔의 분석 접근 방식에 대한 경의가 될 수 있다. 기계화 된 풍경에서 우리는 기하학적 모양으로 구성된 세 가지 누드를 발견한다. 왼쪽에 팔을 올린 서있는 인물, 약간 아래로 약간 아래로 앉은 누드, 한 팔을 들어 올린 맨 오른쪽에 다른 누드가 있다. 모양의 명백한 혼란은 작업을 매우 역동적으로 만든다. 레거 자신은 녹색, 청회색, 회색 및 흰색의 냉정한 색조의 이 작업을 '볼륨 전투'로 간주한다. “색을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 했다. 볼륨만으로 충분했다. 

조르지오 드 치리코가 그린 <두송이의 포도송이>이다. 1928년.

조르지오 드 치리코가 그린 <해변에서 질주하는 말>이다. 1926년.

장 메트징거의 그림이란다. 처음 보고 앙리 루소의 그림인줄 알았는데

<기병과 함께 하는 컨트리 시트>다. 1924년.

장 메트징거의 <기타를 들고 있는 젊은 여인>이다.  1924년

 

 

 

 

 

 

 

 

 

 

 

 

 

 

 

 

그림에 대한 설명이 써 있었다.

 

이쪽 관은 현대 미술 작품들로 이곳에 있는 것만 빼고는 안에서는 직접 만져보고 다르게 배치해 볼 수 있게 했다.

 

 

 

 

 

 

 

 

 

 

 

 

 

좋아하는 화가의 그린을 띄워 그 중 일부를 그려보는 것으로 우린 고흐의 그림을 그려 보았는데 쉽지가 않았다. 그린다음 이메일을 적으니 바로 전송해주는 것이었다. 재미있었다.

 

뮤지엄을 나와서 성을 보러 갔다. 딸이 다리가 아프대서 멀리서 보기만 하고 차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