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와 아도니스〉다. 1554년. 티치아노는 1553년부터 필리페 2세를 위해 '포에지에(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사랑과 관련된 주제를 시적으로 해석하여 조형화한 작품)' 연작 7점을 그렸는데 이 작품은 그 중 하나다. <다나에>와 짝을 이루고 있다. 무겁게 드리워진 구름과 그 사이 선명하게 제 존재를 드러내는 푸른색 하늘이 압권이다. 그 푸른 하늘과 대조를 이루는 붉은색 옷차림의 사냥꾼 아도니스가 외출하려고 하자 비너스가 온몸을 다 바쳐 막고 있다. 큐피드는 자신의 화살통을 나무에 걸어놓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고 하늘은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듯하다. 이 불길함은 결국 아도니스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비너스의 예감대로 아도니스는 사냥을 강행하다 결국 멧돼지에 물려 죽게 된다. 신화는 그날 그가 흘린 피가 땅을 적셔 피어난 꽃이 바로 아네모네라고 전한다. 화면 오른쪽 상단의 하늘에는 마차 하나가 지나고 있는데, 그곳에서 뿜어나온 빛나는 광채가 닿는 곳에 아마도 그 아네모네가 피어날 것이다. 폭풍우가 칠 것 같은 하늘은 절망적인 드라마를 암시하는데 큐피트는 한쪽 나무 아레에서 잠을 자고 있다. 티치아노는 이 작품에서 풍부한 색채를 부드럽고 다양하게 사용하며 그의 기술을 마음껏 보여주었는데 특히 개의 털이 부드러운 스푸마토 기법으로 잘 표현되어 감탄스럽다. 티치아노는 이 그림을 완성한 뒤, 비너스가 등을 보이지 않고 정면을 향하도록 그렸어야 했다며 아쉬움 가득한 글을 남겼다. 등보다 앞이 더 궁금한 남성 관람자들의 갈망을 티치아노가 뒤늦게 간파한 것이다.
<황금비를 맞는 다나에〉1560-65년. 딸이 낳은 아이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들은 왕이 딸 다나에를 탑에 가둔 사건부터 시작된다. 꽁꽁 가두어 그 어떤 남자와도 관계하지 못하게 하면 결국 외손자를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희대의 바람둥이 신 제우스는 황금비로 변신하여 그녀의 몸을 적신 뒤 결국 다나에를 임신하게 만든다. 그림은 바로 그 황금비가 탑을 뚫고 들어와 그녀에게 닿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펠리페 2세는 다나에를 ‘그 어떤 이유도 묻지 말고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백성’으로 해석하고 제우스를 자신으로 생각한 듯, 이 그림에 크게 기뻐했다. 하녀로 보이는 노파는 왕이 베푸는 풍요로움, 즉 ‘금화’ 모양의 비를 앞치마로 한 가득 받고 있다. 좋게 보면 능력 있는 왕이 베푸는 일종의 ‘성은’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삐딱한 시선으로 보자면, ‘돈’으로 여자의 성을 사는 모습으로도 읽힌다.
〈안드로스 섬의 주신 축제〉1523-26년. 안드로스 섬 마을에서 벌어진 술의 신 바쿠스(디오니소스)를 위한 축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 정중앙에는 하얀색의 그리스 옷차림을 한 남자가 포도주 잔을 높이 들고 있다. 중앙 아래 한 여인이 한손엔 플루트를, 다른 손으로는 술잔을 높이 쳐들어 술을 받고 있는데, 무릎에 놓인 악보에는 “술을 맘껏 마실 줄 모르는 사람은 술을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내용의 가사가 적혀 있다. 중앙에 있는 남자의 높이 치켜든 포도주 병은 그야말로 ‘술에 대한 예찬’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티치아노가 참고한 고대 그리스 신화는 3세기경의 그리스 철학자 필로스트라토스의 저서 《상상》에 기록된 것으로, 필로스트라토스는 “포도주를 적당히 마시는 것은 정신에 유익하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예나 지금이나 주당들의 핑계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절제되지 못한 술의 역효과 역시 티치아노는 놓치지 않았다. 화면 오른쪽 언덕에는 술에 곯아떨어진 한 사람이 바닥에 드러누워 있고, 그 아래 오른쪽 모퉁이에는 제 몸이 다 노출되는 것도 잊은 님프 하나가 널브러져 있다. 술하면 음악이, 음악이 나오면 춤이 나오기 마련이라 화면 오른쪽에는 티치아노 특유의 ‘고급스러운 붉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여인과 춤을 추고 있다. 남자의 손에 들린 것은 포도넝쿨로 만든 화관인데, 이는 디오니소스가 쓰고 다니던 것이다.
〈비너스를 경배함〉이다. 1518-19년. 오른쪽에 놓인 비너스(아프로디테) 상을 숭배하는 수많은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 상단의 날개 달린 세 아이는 아마도 큐피드(에로스)를 포함한 님프들로 비너스의 상징인 사과를 모아들고 있다. 그림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결국 우리에게 선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풍부한 생식력을 바탕으로 한 ‘풍요’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규모가 큰 유치원의 모습을 능가하는 수많은 어린아이들은 바로 그 사랑의 힘으로 생산된 결과물이다.
티치아노의 <시지푸스>다. 1558년-59년. 신화속의 교활한 인간 시지푸스는 자신을 잡으러 온 죽음의 신을 속이고 잡아 가둬 인간이 죽지 않게 되는 큰 변고를 일으켰다. 또 시지푸스는 죽음의 신에게 잡혀간 후에도 장례식도 안 지내는 아내의 버릇만 고쳐주고 싶다며 지상으로 보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사실 자신이 죽기전에 아내에게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고 미리 시켰던 것이다. 시지푸스는 그렇게 신을 속이고 지상에 와서 장수하다가 죽었다. 죽은 뒤 시지푸스는 생전에 그렇게 신을 모독하고 괴롭힌 여러 죄로 산꼭대기에 커다란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시지푸스가 커다란 바위를 가파른 산위로 힘겹게 끌어올려 산꼭대기에 도달할 쯤엔 바위가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런 바위 운반이라는 반복적인 고통은 끝이 없다. 인간은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두려움을 느낀다는 말처럼 시지푸스는 그런 상황에서 절망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아무런 대가나 즐거움도 없고 끝없이 해야만 하는 괴로운 일이 시지푸스가 지은 죄만큼 최악의 형벌이었다.
티치아노의 <개와 오르간 연주자가 함께 있는 비너스>다. 1550년. 이 그림과 비슷한 5점의 그림이 있는데 베네치아 테라 페르마의 별장에 위치한 이 그림은 비너스가 큰 창문 앞에 기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발치에는 오르간 연주자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비너스는 개의 존재에 정신이 팔려 시선을 돌렸다. 이 그림들은 조르지오네/티티안 잠자는 비너스로 시작된 비너스의 하위 장르 개발의 마지막 단계로 볼 수 있으며, 음악가와 함께한 비너스의 그림은 다양한 해석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일부 미술사학자들에게는 더 심오한 의미가 결여된 에로틱한 작품이 분명하고, 다른 작품에게는 상당한 상징적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마리오 에키코가 제안한 바와 같이 미와 조화를 아는 도구로서 시력과 청력을 가지고 신플라토닉적 관점에서 감각의 우화로 해석되어 왔다.
'스페인 미술관 > 프라도미술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브뤼헬, 모르, 카라바조, 코레조 (0) | 2020.11.19 |
---|---|
보티첼리와 한스 발둥 (0) | 2020.11.19 |
티치아노 초상화 위주 (0) | 2020.11.19 |
티치아노 종교화 (0) | 2020.11.19 |
라파엘로 산치오 (0) | 2020.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