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미술관/런던 내셔널 갤러리

루이제 부룅, 앵그르, 조르주 쇠라

boriburuuu 2020. 11. 27. 12:54

엘리자베트 루이즈 비제 르 브룅이 그린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이다.  1782년.  매우 인기있는 자기 초상화의 예술가가 서명한 사본으로 현재 남작 에드먼드 드 로스 차일드의 컬렉션에 있다. 비제 르 브룬은 우리에게 그녀가 훌륭한 예술가와 그의 시터와 자신을 명시적으로 연관시키는 고도로 계산된 이미지를 제공한다.그녀는 자신의 직업(팔레트와 붓)의 도구를 들고 있는 동안 열린 표정으로 우리를 직접 바라보며 우아한 사회 숙녀로서, 그리고 뛰어난 전문 예술가로서 자신을 내세운다. 예를 들어 스튜디오에서가 아니라 야외에서 포즈를 취함으로써 그녀는 루벤스의 초상화에서 평범한 일광과 직사광선을 결합하여 대조적인 빛 효과를 복제한다. 막 등장하기 시작한, 여성 화가의 드문 존재를 알려 주는 경쾌한 초상화이다. 그녀는 실물보다 아름답게 그리는 부드러운 양식으로 유럽 지배 계급의 인기를 얻었고 18세기 가장 유명한 여성 초상화가였다. 가발이나 화장 등 관습적이며 귀족적인 소품을 자제하고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모델을 묘사하며 새 초상화의 지평을 열었다. 600점 이상의 초상화를 남겼다. 아름답기도 하군.

루이스 비제 르 브룅의 <알렉산드린-에밀리 브롱그니아트 >다. 1788-1789년. 이 매력적인 초상이 예술가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 르 브룅에 의해서 그려진 것은 브롱니 아르가 8살 때였다. 그녀는 녹색 비단 가방 공이 들어 있는 안에 검색한다. 그녀의 머리에 흰 드레스를 입고 같은 흰색의 스카프를 하고 있다. 스카프 아래의 검은 곱슬머리는 최대한 길게 보이게 연출하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관람자를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본다. 르 브륑과 브롱니 아르 가족 사이에는  긴밀한 유대감이 있었다. 비제 르 브륑의 딸 줄리는 에밀리보다 7개월 전에 태어나 이 둘은 종종 같이 놀 때가 많았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모아테시에 부인>이다.  1856년.  권력가였던 남편의 의뢰로 초상화를 그렸을 때 이네스 푸코는 23살의 젊은 여인이었다. 12년 후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35세였고 화가는 76세였다. 모델의 포즈는 물론 장신구와 의상까지 여러 번 바꿨고 어린 딸도 등장했었지만 라파엘로풍의 고전미와 고대 그리스 미술에 대한 오마쥬가 명백한 이 버전이 채택되었다. 이미 사진기의 보급으로 기존 초상화의 선례를 따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화가는 오히려 사진과의 경쟁을 하듯 모든 기교를 화면에 넣어 의상, 장신구, 소파를 덮은 천 등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실제와 흡사하다.  

앵그르의 <루지에로가 구한 안젤리카 >다. 1819-1832년.  여기서 보여지는 장면은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16세기 서사시 올랜도 후리오소의 에피소드에서 따온 것이다. 기독교 기사 루지에로가 야만인들에게 납치된 이교도 공주 안젤리카를 발견했다. 바위에 묶여 묶여 바다 괴물에게 희생된 채 남겨졌다. 러기에로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날 수 있는 전설적인 반마, 반그리핀 짐승인 하마를 타고 괴물의 열린 턱에 랜스를 꽂아 안젤리카를 구한다. 앵그르는 1819년 베르사유 궁전의 왕좌실을 위해 이 이야기의 더 큰 버전을 그렸다. 이 작은 버전에서 그는 바다 풍경 설정을 줄이고 Ruggiero와 Angelica 사이에 괴물을 배치함으로써 드라마를 강조한다. 그는 안젤리카가 당당하고 창백한 몸과 단단한 갑옷과 바위, 날카로운 창, 그리핀의 부리와 발톱, 그리고 괴물의 이빨을 대조함으로써 직면하는 위험을 강조한다. 

조르주 쇠라의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다. 1884년. 세느강에서 물놀이를 하는 노동자와 소년들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구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보여주는 점묘법의 첫번째 실험작이다. 오른쪽 땅의 끝부분으로 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점묘법을 활용해 퍼져 있는 빛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정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작품의 최종 효과는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그림자에서와같이 변화무쌍한 대기에서 무언가를 보존하는 것으로 고전적인 상의 회복, 부동성, 빛에 의해 나타나는 양감의 표현이다.

조지 쇠라의 <르 벡 뒤 그랜드 캠프>다. 1885년.  쇠라는 1885년 여름에 방문한 노르망디의 그랜드 캠프에서 첫 번째 해안 장면과 바다 풍경을 그렸다. 르벡 뒤 호크의 바위 봉우리가 동쪽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2차 세계 대전 중 폭격으로 크게 감소된 화려한 지질 학적 특징이었다. 쇠라는 이 그림의 연구 역할을 했던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렸다. 1888년 네 번째로 그림을 전시하기 전에 화가는 페인트의 미세한 터치로 표면을 다시 작업하고 페인트 테두리를 추가하여 그림 자체와 관련하여 색상을 변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