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미술관/런던 내셔널 갤러리

폴 세잔, 폴 고갱, 에두아르 마네

boriburuuu 2020. 11. 27. 16:05

폴 세잔의 <물놀이>다. 1900-1906년.  세잔은 말년에 액상 프로방스에 있는 아틀리에에서 동일한 테마 3점을 그리며 보냈다. 이 그림에서 물감을 겹겹이 덧칠하고 그 위로 여러번 형태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황혼기를 그려냈다. 누드의 고상함과는 거리가 먼 거칠기까지한 정방형의 형태는 인상주의의 사실성과는 멀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회화의 아버지로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그림은 피카소에게 영향을 미쳤고 젊은 마티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폴 세잔의 <자화상>이다. 1880-1881년.  세잔이 1880-1년경 파리에서 이 자기 초상화를 그렸을 때 약 40세였다. 그는 이제 부양할 가족이 있는 중년이었고, 그의 초기 자기 초상화의 강도는 여기서 더 멀고 반사적인 존재로 자리를 내주었다. 비교적 작지만 초상화는 기념비적이고 권위가 있다. 이것은 1879년 이후 인상파 그룹과의 전시를 중단하고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 남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예술가의 삶에서 중요한시기였다. 세잔은 노골적인 표정이 없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우리를 응시한다. 그가 이전에 포즈를 취한 벽지는 단순히 장식적인 배경이 아니라 구성에 중요한 구조적 역할을 한다. 세잔은 그림 전체에 걸쳐 패턴의 요소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주변 환경과 완전히 통합했다. 초상화의 단순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묘한 메아리와 반복으로 가득 찬 구성을 만들었다

폴 세잔의 <프로방스의 산비탈>이다. 1890-1892년.  이 그림에서 각진 돌출된 암석의 벽은 채석장을 나타낼 수 있으며, 절단된 것은 지질 지층을 드러낸다. 산비탈은 세잔의 고향 프로방스 어딘가에 있지만, 구체적인 위치는 결정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이 그림은 1880년대 중반 세잔이 그리던 아이센 프로방스 주변의 풍경 장면과 관련이 있다. 

폴 고갱의 <수확>이다. 1890년.  1890년 고갱은 브리트니 르풀두에 있는 마리 헨리의 하숙집에 머물고 있었다. 이 그림의 곶은 마을 자체에서 약 1 마일 떨어진 해변의 서쪽 끝에 있다. 고갱은 이 풍경의 다른 버전을 그렸는데, 이 모든 것은 그의 합성주의 스타일의 강하게 정의된 형태와 평평한 색상의 영역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또한 1890-91년 겨울 파리에서 그린 상징주의 작품 '정의의 상실'의 배경을 위해 단순화된 형태로 그것을 사용했다. 

폴 고갱의 <창문 앞의 과일 그릇과 탱카드> 이다. 1890년.  고갱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는 1880년경 자신의 소장품을 위해 인수한 세잔의 컴포티어, 글래스, 애플(1879~80년 뉴욕 현대미술관)이었다. 이 정물화는 그 그림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과일, 도자기, 구겨진 식탁보, 그리고 오른쪽 하단의 각진 칼 등 많은 요소들을 반복한다. 전경과 거리가 함께 무너져 내리는 잘린 대각선 붓놀림과 평평한 원근법도 세잔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림의 맨 위에 있는 좁은 스트립 - 건물의 밀도가 높은 배열 -은 수수께끼의 일부다. 프레임을 포함하면 창에서 보는 뷰임을 시사하지만, 명확하게 정의된 더 큰 장면과 그 옆에 있는 더 작은 흐릿한 이미지 사이에는 연속성이 없다. 아직 구체적인 견해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고갱이 이 그림이 그려진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브리타니 시골보다 도시 풍경처럼 보인다. 

에드아르 마네의 <튈트리 정원의 음악회>다.  1862년.

마네의 <에바 곤잘레스>다. 1870년.  마네의 유일한 정식 제자인 에바 곤잘레스의 초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