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9

boriburuuu 2020. 12. 8. 13:05

고흐의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이다. 1887년.  이 자화상에서 반 고흐는 검은 펠트 모자와 외투, 넥타이(크라바트)를 쓰고 있다. 그는 존경할 만한 신사처럼 보인다.

고흐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이다. 1887년.  가벼운 여름옷을 입은 예술가는 푸른색과 초록색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이 자화상을 위해 반 고흐는 캔버스에 대한 저렴한 대안인 판지를 사용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보라색으로 프라이밍 층을 칠했다. 그러나 그 보라색 페인트의 색소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체로 희미해졌다. 그의 어깨에는 분홍색 몇 획이 아직도 희미하게 보인다. 따라서 반 고흐가 조심스럽게 그린 원래의 색깔은 사라졌다. 예를 들어, 보라색 배경은 한때 그의 노란 밀짚모자와 대조되었다.


고흐의  <레오니 로즈 차비 데이비의 초상화 >다. 1887년.  반 고흐가 초상화를 더 그리기를 원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종종 기회를 얻지 못했다. 1887년 봄, 그는 레오니 로즈 차르부이 데이비라는 젊은 파리 여성을 그릴 기회를 가졌다. 그녀는 미술상 피에르 피르민 마틴의 조카로, 때때로 반 고흐의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다. 그녀는 불 옆에, 아기 요람 옆에 앉아 있다. 불이 바닥에 붉은 빛을 발한다. 방의 나머지 부분의 모양이 완전히 명확하지는 않다.

고흐의 <까밀 룰랭의 초상>이다. 1888년.  고흐는 아를레스(FR)에 있는 동안 모델의 성격에 정의를 이루는 '현대적' 초상화를 그리기를 원했다. "나는 색깔로 그것을 찾는다." 그는 여동생 윌레미엔에게 편지를 썼다. 모자의 파란색, 코트의 녹색과 빨간색, 배경의 노란색이 모두 카밀의 얼굴에 메아리친다. 카밀은 반 고흐의 친구인 우체부 조셉 롤린의 막내 아들이었다.

고흐의 <피에타(들라크루아 후)>다.  1889년.  반 고흐는 그의 피에타를 외젠 델라크루아의 그림 석판화에 바탕을 두었다. 사실, 그것은 복사본이라기 보다는 원작에 대한 변형이다. 델라크루아에서 반 고흐는 죽은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성모 마리아의 주제와 그림을 맡았다. 그는 자신의 색깔과 개인 서명을 추가했다.

고흐의 <나자로의 부활>이다. 1890년.  반 고흐는 이 그림을 렘브란트의 인쇄물에 바탕을 두었지만 인쇄물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는 주요 인물을 빼놓았다. 팔을 치켜든 그리스도. 반 고흐는 인간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마 무덤에서 나자로와 동일시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인물에게 빨간 수염을 주었던 것이다. 무덤 옆에 있는 두 여성은 알레스 출신의 두 지인이다. 녹색 드레스를 입은 루린 부인과 화려한 줄무늬가 있는 어두운 드레스를 입은 지누스 부인.색소 몇 개가 상당히 희미해졌다. 이것은 배경의 따뜻한 색과 전경의 레자로스의 차가운 색 사이의 원래 대조를 크게 제거했다.

 

로트렉의 <스페인 댄서>다. 1883-1886년.

'네덜란드의 미술관 >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센트 반 고흐8  (0) 2020.12.08
빈센트 반 고흐 7  (0) 2020.12.08
빈센트 반 고흐 6  (0) 2020.12.08
빈센트 반 고흐 5  (0) 2020.12.07
빈센트 반 고흐 4  (0) 2020.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