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6

boriburuuu 2020. 12. 8. 00:16

고흐의 <파이프를 물고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이다.  1887년.  이 사진은 반 고흐가 전형적인 작업 모드로 나타나는데, 예술가의 스모크를 입고 파이프를 입가에 고정시킨 채 말이다. 그는 물감을 적게 사용하여 기름으로 스케치했다. 분홍색 지반층은 여전히 선명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그의 스모크 아래와 배경 아래. 파이프 흡연은 반 고흐를 차분하고 만족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봐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그의 파이프를 '평화롭게' 피울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을 포함했다.

고흐의 <자화상>이다. 1887년.  반 고흐는 이 자화상을 수많은 블루스로 그렸다. 배경뿐만 아니라 얼굴도. 눈의 흰자위도 파랗다. 그는 새로운 캔버스를 살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정물화의 뒷면에 자화상을 그렸다. 이전에는, 그는 때때로 그림과 교환하는 대가로 신용이나 그림 자료를 얻었다. 그는 파리 미술품 가게 주인인 페레 탕기로부터 그것들을 받았다. 하지만 탱귀의 아내는 그 일을 중단시켰다. 빈센트는 동생 테오에게 화가 나서 편지를 써서 그녀를 ‘오래된 마녀’라고 묘사했다.

고흐의 <저성징>이다. 1887년.  파리에서도 반 고흐는 도시 공원의 형태일 뿐이지만 항상 자연을 찾고 있었다. 저 숫양들은 전경에 있는 건가요?,익은 블랙베리를 위한 자줏빛 푸른색 줄무늬와 익지 않은 과일을 위한 짙은 빨간색? 그러나 반 고흐가 여기서 그린 그림보다는 빛과 그늘을 묘사하기 위해 작은 점과 대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가치가 덜할 것이다. 그는 신 인상파 화가들로부터 이런 그림의 방식을 들었다. 그들의 스타일은 때때로 포인틸리즘(또는 '점 예술'이라고 불리며, 그 당시 파리에서 가장 최근의 것이었다. 폴 시그낙은 그들의 주요 화가 중 하나였다. 반 고흐는 프랑스 수도로 이주한 후 그를 알게 되었다

고흐의 <붉은 양배추와 양파>다. 1887년. 반 고흐는 양파와 붉은 양배추 몇 개라는 더 간단한 주제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색 대비를 연구함으로써, 그는 그것들을 특별한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 정물화의 색깔이 시간이 흐르면서 변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식탁보가 지금은 회색빛이 도는 푸른색이지만 원래는 보라색이었다. 그것은 양파의 노란색과 오른쪽 상단 배경과 강한 대조를 이루었다.

고흐의 <쿠르베보이 다리>다. 1887년.  1887년 5월, 반 고흐는 파리의 센 강을 따라 30개의 강 장면과 풍경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 번의 세션으로 쿠르베보이의 다리(The Bridge)를 그렸으며, 물 속의 반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올바른 관점이나 인간 인물의 비율에 대해 덜 염려했다. 반 고흐는 온갖 종류의 색으로 물감을 나란히 그리고 때로는 층을 이루며 사용했다. 이것은 점묘법에 대한 그의 자유 변주곡이었다. 그 방법은 조르주 수라트와 폴 시그낙과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그에게 친숙했다.

고흐의 <자화상>이다. 1887년.  그가 모델에 접근할 수 없을 때, 반 고흐는 정기적으로 자신을 그렸다. 1887년 여름, 그는 실제로 일련의 자화상을 제작했다. 그가 이 그림에서 입는 공식 재킷은 예외다. 그중 대부분에서 그는 예술가의 스모크를 입고 있다. 이것은 반 고흐의 ‘양면’ 그림 중 하나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 그는 이 자화상을 다른 그림의 뒷면에 그렸다. 그는 빈털터리였다. 연구에 따르면 그는 털이 빠지는 값싼 페인트 브러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페인트에 박혀 있다.

고흐의 <토끼가 있는 풍경>이다. 1889년.

고흐의 <도비니의 정원>이다. 1890년.  반 고흐는 찰스 프랑수아 도비니의 작품을 평생 숭배했다. 이 유명한 풍경화가는 오베르에 살았었다. 그래서 빈센트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는 가능한 한 빨리 도비니의 집과 정원을 보러 갔다. 이것은 반 고흐의 첫 정원 그림이다. 그는 나중에 캔버스에 두 개의 더 큰 것을 만들었다. 반 고흐는 캔버스가 없었기 때문에 빨강과 흰색 줄무늬 티타월로 정원을 그렸다. 그는 먼저 수건을 빨간색과 섞인 납백색 안료의 밝은 분홍색 접지층으로 덮었다. 이 분홍색 베이스는 그가 정원에 사용했던 녹색 물감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라운드층은 물감의 스트로크 사이에 보인다.  붉은 색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져서 분홍색 밑부분은 이제 회색으로 보인다. 

고흐의 <오베르의 풍경>이다. 1890년.  이 작품은 파리 근처의 오베르쉬아즈 마을의 일부를 보여준다. 반 고흐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두 달을 그곳에서 보냈다. 반 고흐가 예술가로 일한 10년 동안, 그는 물감을 칠하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가운데에 있는 색 지붕의 끈을 위해 그는 수직 줄무늬를 사용했다. 마을 너머의 녹색 들판은 거의 획일적인 색깔의 지역이다. 하늘은 미완성이다. 그는 구름의 윤곽을 몇 줄의 빠른 파란색으로 그렸다.  

고흐의 <황혼의 풍경>이다. 1890년.  반 고흐는 오늘 저녁 지역 특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우버스 근처의 들판에서 풍경을 만들었다. 그는 검은 붓놀림으로 배나무의 뒤엉킨 검은 가지를 만들었다. 이것은 어두운 나무와 빛나는 노란색 하늘 사이의 대조를 강화한다. 그림은 형식이 넓기 때문에 다소 파노라마처럼 보인다. 그것은 폭이 1미터이고 높이가 50센티미터이다. 1890년 6월부터 반 고흐는 이러한 차원을 가진 총 13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한 사람만 빼고 모두 풍경이다. 그는 큰 롤에서 캔버스를 직접 잘라냈다. 

고흐의 <농가>다. 1890년.

고흐의 <꽃병의 꽃>이다. 1890년.  이 꽃은 그렇게 보여도 미완성인 것은 아니다. 반 고흐는 오베르에 살러 간 이후로 점점 심해지고있었기 때문에 느슨하고 분명하게 빠른 붓놀림으로 그것을 그렸다. 그는 꽃을 단지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고 꽤 거친 파란색 윤곽으로 그들을 에워쌌다. 그는 가셰박사의 집에서 꽃다발을 그렸는데, 그는 이를 '기성친구, 새로운 형제 같은 것'이라고 묘사했다. 심지어 사진 속에 꽃병이 서 있는 가셰의 빨간 테이블에 그렸다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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