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그리스

아테네 제우스 신전과 하드리아누스 개선문

boriburuuu 2020. 12. 10. 20:44

아테네 제우스  신전 터를 찾았다.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혹은 '올림피에이온'으로도 불린다. 멀리서 높이 솟은 기둥들이 보인다. 고대 로마의 건축가이자 기술이면서 저술가인 비트루비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 신전은 당대의 모든 대리석 건축물 중 가장 유명했다고 한다. 하긴 제우스가 최고의 신이니. 

신전의 규모가 대단히 컸을 뿐 아니라 신전 내부에 안치된 제우스 신상이 거대했다고 한다.  신전이 들어서기 전 이 부지는 그리스의 신과 영웅들을 숭배하는 장소였다고 하는데 기원전 550년 아테네의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해 시전을 짓기 시작했고 사후 아들로서 아테네의 통치권을 물려 받은 히피아스와 히파르코스는 기원전 515년경에 기존의 신전을 대체할 새 제우스 신전 건설에 착수 했다. 

당대 유명 신전들로 사모스의 헤라 신전과 에페수스의 에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는데 이 두곳을 뛰어 넘는 신전을 아테네에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게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동생 히파르코스가 암살된 후 히피아스는 폭정을 했고 기원전 510년 권좌에서 쫒겨난다. 이후 336년간 미완의 상태로 방치되었다. 과거 참주정의 폭정을 경계해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 이곳을 방치했다고 한다. 

신전의 공사가 재개된 것은 기원전 174년 시리아의 왕 안티오코스 4세에 의해서였다. 건축가는 로마의 데키무스 코스티우스로 300년전의 구조, 재료, 기둥 수 등에 다소의 변화를 가했다. 기둥 양식도 도리아에서 코린트 기둥으로 바꿨다고 한다. 절반쯤 건설중이었던 기원전 164년 안티오코스 4세가 사망하고 공사는 다시 중단되었다. 기원전 87년 아테네가 로마에 반기를 들자 로마군은 도시를 점령하고 약탈했다. 이 때 제우스 신전의 기둥 일부를 로마로 가져가 카피톨리노 언덕의 제우스 신전을 짓는데 활용했다. 

심각한 손상을 입은 제우스 신전은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때 공사가 재개되었다. 황제가 사망한지 100년이 지난 124년경에 완공되었다. 결국 600년이 걸린 셈이다.  원래 기둥 수는 104개 였는데 16개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스를 열렬히 사랑했던 로마 건축왕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없었으면 더 걸렸을 수도 있다. 결국 132년 제우스 신에게 신전을 바치는 봉헌식이 열렸다.  완공 당시에는 신전 내부에 금과 상아로 장식된 제우스 신상이 뒤편에는 아테네 시민들이 황제를 칭송하기 위해 세운 하드리아누스 거상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267년 헤룰리족의 침략으로 약탈되고 보수되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아테네 시민들이 131-132년에 세운 문이다. 개선문 양면의 아치 바로 뒤에 희랍어로 문구가 세겨져 있다. 아크로폴리스와 마주한 면에는 "이곳은 테세우스의 고대 도시 아테네다.", 제우스 신전과 마주한 면에는"이곳은 테세우스가 아닌 하드리아누스의 도시다."라고 써 있다. 해석은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개선문이 아테네의 구시가와 신시가를 구분하는 기준점임을 알리고자 새긴 것이라고 한다. 한 편으로는 아테네의 과거 주인 테세우스에서 지금은 하드리아누스로 바뀌었음을 알리고자 문구를 새긴것으로 보고 있다.

멜리나 메르쿠리의 흉상이다. 가수이자 정치가였는데 군사 정권의 탄압을 받아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민주화 이후 귀국해서 그리스의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