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미술관/베를린 국립회화관

니콜라 푸생, 벨라스케스, 카날레토 등

boriburuuu 2020. 12. 16. 00:18

니콜라 푸생의 <자화상>이다.  1649년.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레 안델리스의 화가는 1624년부터 로마에 살았다. 1640년에서 1642년까지의 유일한 해는 그를 프랑스의 집으로 데려 갔다. 그러나 영원한 도시에서는 그에게 큰 찬사를 보냈다. 푸신은 시인 조반니 바티스타 마리노의 권고에 따라 1626년부터 프란체스코 바베리니 추기경의 고객 중 한 명이었다. 1632년부터 푸신은 파올리나 가도에 스튜디오를 유지했다. 예술가는 악의적인 백악기 주인과 스케치 북으로 자신을 묘사하여 엄격한 그림에 대한 그의 선호도를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푸신은 고대와 이탈리아의 고르네상스에서 최고의 예술적 업적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니콜라스 푸생 < 잠든 리날도를 납치하는 아르미다>다. 1637년경 

니콜라스 푸생의 <주노와 죽은 아르고스가 있는 풍경>이다.

니콜라 푸생의 <토성과 사계절을 가진 헬리오스와 파에톤>이다. 1629 - 1630년. 젊은 파에톤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태양 신 헬리오스(아폴과 동일시)에게 하루 동안 호렌의 배경에 있는 태양 전차를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소년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야 할 소원이다. 조디악 표지판의 아치 아래에 앉아있는 헬리오스는 계절의 인격화인  Leier Apolls로 표시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꽃으로 장식된 젊은 여성이 봄을 구현하고 파에톤 뒤에는 여름이 거울을 들고 있는 여성으로 앉아 있다. 전경에는 포도로 가득 찬 꽃병 옆에 있는 잠자는 술취한 가을이 있다. 왼쪽에는 겨울의 앉아있는 얼어 붙은 인물이 있다,

니콜라스푸생의 <성 마테오와 천사가 있는 풍경>이다. 1639-1640년.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젊은 부인의 초상>이다. 1630년. 벨라스케스의 동시대인이자 동료 안달루시아인인 수르바란이 평생 명암의 극명한 대조를 위해 헌신했다면 벨라스케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법정에 서게 된 후, 빛에 대한 그의 취급은 매우 현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해졌지만 현실적이 되었다. 그는 대기 가치를 미묘하게 전달하는 기술을 익혔다. 이 부인의 초상화의 효과는 최소한 중립적이고 옅은 회색빛 땅과 피사체의 얼굴과 머리카락에서 비롯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흐릿하지만, 먼 곳에서는 내실의 먼지가 가득 찬 공기를 통해 보이는 것 같다. 벨라스케스가 자주 사용하는 양식 장비인 이 의자는 벨라스케스가 제한된 자원으로부터 가장 강력한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유일한 소품으로, 그것은 방에 우연히 나타난 것 같다. 그것은 숙녀가 위엄 있는 포즈를 취할 수 있게 해준다. 사진 뒷면의 메모는 그녀가 화가의 아내라는 이전의 믿음으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대개 스페인 대사의 부인이자 리바레스의 누이인 몬테레이 백작 부인으로 생각된다. 그녀는 이탈리아에 살았는데, 이것은 이 그림이 로마에서 처음 돌아온 1631년에 그려진 것임을 나타낸다.

 

폼페오 기롤라모 바토니의 <아모르와 프쉬케>다.

지오반니 안토니오 카날레토의 <리알토성>이다.

지오반니 안토니오 카날레토의 <리알토 다리의 오른쪽 풍경>이다.

지오반니 안토니오 카날레토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지오반니 안토니오 카날레토의 <베네치아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이다.

지오반니 발키스카의 <성 아가타>이다.

필립 반 다이크의 <미술 수업>이다.

필립 반 다이크의 <확성기>이다.

피터 드 링의 <악기가 있는 정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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