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태국

빠이의 관광지를 돌아보며

boriburuuu 2016. 3. 7. 01:40

 이 리조트는 아침을 주지 않았다. 나는 가지고 온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일행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빠이 관광지를 보러 숙소를 출발(09:00)했다. 룸메이트는 혼자 다니면서 사진을 찍겠다며 오토바이를 빌려 일행보다 먼저 숙소를 나갔다.

 

 일행은 차를 타고 숙소를 출발(09:00)해“머뺑폭포(Mo Paeng Waterfall)”에 갔다. 나무 그늘을 지나 폭포로 갔으나 대단한 볼거리는 아니었다. 그저 더위를 식히며 물놀이하기가 제격인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기라 수량이 많고 흙탕물이 흘러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래에는 좀 더 멋있는 폭포가 있었으나 많은 사람이 보지는 않았다.

 

<머뻥폭포로 가는 일행>

 

<위 쪽의 머뻥폭포 모습>

 

<아래 쪽의 머뻥폭포 모습>

 

 일행은 내려오다 빠이에 정착한 화교 마을인“반 싼띠촌(Ban Santichon)”을 찾았다.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자 태국에서 본국 탈환명령을 기다리던 국민당 후손들이 생활하는 곳이었다. 대부분 윈난성(운남성) 사람들로 중국마을답게 차를 파는 곳이 많았다. 또한 기념품 가게를 겸한 중국 식당이 있는데, 다양한 중국 음식을 팔고 있었다. 입구 조금 위의 바위에는 “중화풍속 남호산지촌(中華風俗 南湖山地村)”이 한문으로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었다.

 

<반 싼띠촌의 마을 풍경 1>

 

<반 싼띠촌의 마을 풍경 2>

 

<반 싼띠촌의 마을 풍경 3>

 

<반 싼띠촌의 마을 풍경 4>

 

<반 싼띠촌의 마을 풍경 5>

 

<반 싼띠촌의 마을 풍경 6>

 

<반 싼띠촌의 마을 풍경 7>

 

<반 싼띠촌의 마을 풍경 8>

 

<반 싼띠촌의 마을 풍경 9>

 

<바위에 쓴 "중화풍속 남호산지촌" 모습>

 

 일행은 다시 차를 타고 조금 내려오다 한 사원에 들렸다. “왓 남후(Wat Namhoo)”로 법전과 째디가 있는 란나 양식의 평범한 곳이었다. 이곳은 500년 전에 만들었다는 란나 양식의 불상인 “프라 운므앙(Phra Muang)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었다. 불상은 신기하게도 머리 꼭대기 부분이 열리고 그곳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다고 했으나 직접 보지는 못했다. 앞의 연못가에는 작은 건물에 불상이 아닌 것을 모시고 있었다.

 

<왓 남후 대법전 전경>

 

<왓 남후 작은 사원 전경>

 

<왓 남후의 담장에 조각된 닭들>

 

 다시 차를 타고 빠이의 “뷰포인트(View Point)에 갔다. 빠이 비행장에서 매홍쏜으로 가는 길 오른쪽에 있는 곳으로 넓은 논밭, 마을, 산, 하늘 및 구름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일행은 여기에서 가슴을 쫙 펴고 다양한 포즈로 추억을 남겼다.

 

<빠이의 뷰 포인트 풍경 1>

 

<빠이의 뷰 포인트 풍경 2>

 

<빠이의 뷰 포인트 풍경 3>

 

 

 일행은 빠이 동쪽 반 매엔(Ban Mae Yen)마을의 오른쪽 언덕에 있는“왓 프라탓 매엔(Wat Phra That Mae Yen)”을 찾았다. 사원은 주차장 앞 언덕에 있으나 관광객이 별로 찾지 않고, 주차장 뒤 계단 위의 흰 불상을 찾았다. 그러나 나는 사원에 갔으나 그저 평범했다. 흰 불상이 있는 계단은 전에 350개 있었다고 하였나, 지금은 새로 만들어 300개 정도 되었다.

 

  땀을 흘리며 계단을 올라가니 커다란 흰 불상이 나타났다. 빠이의 어디서라도 잘 보이는 것으로 멀리서 볼 때는 아주 멋있었으나, 가까이서 보니 불상 뒤쪽에는 수리할 때 사용한 나무가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불상 앞에서 내다보는 풍경은 그만이었다. 빠이 시내와 함께 주변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그림이었다.


 

<왓 프라 매엔의 뒤에 있는 하얀 불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왓 프라탓 매엔의 뒤에 있는 하얀 불상 전경>

 

<하얀 불상이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빠이 시가지 풍경>

 

 이제 숙소로 들어가는 줄 알았더니, 외곽도로를 달렸다. 가는 길에는 리조트가 있고 코끼리 투어 캠프도 있으며 전원에서 일하는 농부의 모습도 아름답게 보였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타빠이 철교(Tha Pai Bridge, 일명 Memorial Bridge)”였다. 빠이강을 지나는 철교로 깐짜나부리의“콰이강의 다리”와 비슷한 구조로 영국이 점령한 미얀마를 공격하기 위해 1941년 일본이 건설했는데, 전쟁에 패한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다리를 태워버렸단다.

 

<일본군이 건설한 철교를 복원한 빠이의 타빠이철교(매모리얼철교) 1>

 

<일본군이 건설한 철교를 복원한 빠이의 타빠이철교(매모리얼철교) 2>

<빠이강 쪽에서 올려다 본 타빠이철교 모습>

 

 폐허로 방치됐던 철교는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2007년에 복원했으며, 국내외 관광객들이 빠이 방문 기념으로 촬영을 하러 오는 명소로 변했다고 한다. 일행도 여기서 기념촬영을 하고 숙소에 도착(12:25)했다. 점심은 밖에 나가 식당에서 맥주와 쌀국수로 먹고 방에서 쉬었다.

 

 오후는 자유 시간이라 나를 포함한 6명이 숙소를 출발(15:00)해 위앙 느아를 찾았다.“위앙 느아(Wiang Neue)”는 빠이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1251년 미얀마 북동부 지방의 산족이 이주해와 만든 마을이다. 위앙 느아는 북쪽의 성벽도시란 뜻으로 현재의 빠이 시내는 남쪽에 형성된 마을이어서 위앙 따이(Wiang Tai)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우리는 가는 길에 공원 같은 숲의 큰 나무 밑에 불상을 모신 것을 보며, 빠이 다리까지 두 번이나 물어서 갔다. 길옆에는 우리보다 작은 마늘을 캐서 매달아 논 것이 있었으며, 토지가 비옥해 농작물이 잘 크고 있었다. 일행이 오전에 뷰포인트에서 본 마을이 바로 여기였다.

 

 우리는 도시를 출입하던 성문(빠뚜 위앙 느아)에 도착했는데, 옆에는 예전에 있었던 해자가 있었다. 성벽은 무너져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성문은 그 자리에 복원해 놓은 것이다. 우리는 마을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며 가게에 들어갔다. 거기서 물과 과일인 잭 프루트(Jack Fruit)를 사먹고 왓 씨돈차이를 찾았다.

<위앙 느아의 마을 풍경>

 

 “왓 씨돈차이(Wat Shidonchai)”는 란나 양식의 사원이었다. 평범한 사원이었지만, 입구의 사자상이 오른쪽은 수놈이고 왼쪽은 암놈이었다. 수놈은 생식기를 달고 있어 구분할 수 있었다. 사원구경을 마치고 나오려 하자 소나기가 쏟아져 사원에 있는 의자에서 비를 피했다. 그곳에는 귀가 쫑긋 선 개들이 있었는데, 수캐가 암캐의 비 맞은 털을 열심히 핥아주자, 암놈은 기분이 좋은지 가만히 있었다. 사람도 이와 비슷할까.

 

<위앙 느아의 미얀마양식 왓 씨돈차이 입구 모습>

 

<위앙 느아의 미얀마양식인  왓 씨돈차이 전경>

 

 비가 그치자 우리는 돌아오면서 또 다른 사원을 찾으며, 한 주민에게 물었더니 바로 옆이라고 한다. 우리가 올 때“여기는 설마 사원이 아니겠지”라며 그냥 지나쳐 온 곳이다. 이곳은“왓뽕(Wat Pong)"이라는 산(샨) 양식의 사원이었다. 승려가 한 분 있었는데, 사원은 마치 창고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법전은 얼마나 어두운지 좌우를 잘 분간할 수 없었는데, 승려가 들어와 불을 켜주었다. 그러나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와 시내에 있는 “왓 루앙(Wat luang)”을 돌아보았다. 또한 재래시장에서 옥수수를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데, 한 건물 마당에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에어로빅을 하자, 여인들은 대부분 그곳으로 뛰어들어 함께 몸을 풀었다. 나는 혼자 밖에서 사진을 찍으며 거리를 둘러보다가 먼저 숙소로 들어왔다.

 

<빠이 시내에 있는 미얀마양식 왓 루앙의 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