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고흐의 작품이다.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이다. 1888년. 이 작품 속에서 밤하늘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코발트 블루로 채색된 하늘은 다소 즉흥적인 방식으로 넓은 붓에 의해 강렬하게 칠해졌다. 수평 방향으로 넓게 칠해진 붓 터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약간 위쪽으로 향해 있는데, 이를 통해 반 고흐의 작업 과정을 알아볼 수 있다. 북두칠성을 포함하고 있는 큰 곰자리 모티프는 밤하늘에 넓게 자리잡고 있는데, 방사형으로 칠한 별의 가운데 부분에 흰색 물감을 튜브에서 직접 짜내어 바름으로써 하이라이트 효과를 주었다. 이렇게 운집되어 있는 밤하늘의 별무리들 중에서 몇 개는 마치 꽃과 같은 모양으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흐의 <장미와 아네모네>다. 1890년. 아를시기에 그렸던 <해바라기>연작의 강렬하고 밝은 색채들과 비교하면 <장미와 아네모네>의 색채는 한층 차분하고 심지어 우울해 보이기도 한다. 아를 시기에 반 고흐가 주로 눈부신 노란색, 붉은색, 밝은 녹색, 푸른색을 사용해 보색 대비효과를 나타내려 했던 것과 달리 1889-1890년 작품에서 그는 황토색, 보라색, 차가운 녹색, 푸른색이 주로 썼다. <장미와 아네모네>에서도 붉은 계열의 색채가 쓰이긴 했으나 1887년의 <데이지와 아네모네가 꽂혀 있는 꽃병>의 타는듯한 밝은 붉은색과는 달리 어둡다. 노란색 역시 <해바라기>연작의 밝은 노란색과는 차이가 있다.
고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폴 가셰박사의 정원>이다. 1890년. 반 고흐가 정신병에 고통 받고 있던 시기의 이 그림은 화풍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장방형의 캔버스에 표현된 이 작품의 전경에는 마치 병든 듯한 가늘고 약한 나무가 그려져 있다. 그 옆엔 생명력 넘치는 알로에가 그려져 있어 대조적이다. 알로에의 날카롭게 표현된 잎은 구불거리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함께 지면 위에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작품에 표현된 어둡고 동요하는 듯한 하늘은 전체적으로 불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고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이다. 1890년. 그림은 오베르의 교회를 표현한 작품이다. 13세기에 초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 교회의 양측 면에는 두 개의 로마네스크 풍의 예배당이 딸려 있다. 이는 격렬한 붓질로 지표면과 마치 용암이나 진흙의 격류처럼 감싸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갈래의 길로부터 갈라져 하나의 타오르는 유적처럼 보인다. 모네와는 달리, 고흐는 빛에 의한 인상을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비록 교회는 인식할 수 있도록 남아 있지만, 보는 이에게 이 그림은 실제 교회에 충실한 하나의 재현적 이미지를 제공하기 보다는 교회에 대한 하나의 “표현”적 형태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반 고흐가 사용한 회화적인 수단들은 이후 야수주의와 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을 예견하고 있다.
고흐의 <폴 가세박사의 초상>이다. 1890년. 미술품 수집가이자 아마추어 화가인 가세박사는 처음에 고흐와의 인상이 좋지 않았으나 점차 신뢰를 쌓아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고흐는 가셰박사가 우리시대에 가장 슬픈 표정을 가졌다고 봤고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고갱으로부터 갈구했으나 얻지 못했던 완벽한 친구의 이미지였다.
고흐의<두 소녀>이다. 1890년. 작품 속 대상은 모두 검은색 윤곽선으로 강하게 구획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는 고갱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고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 정원안의 가셰양>이다. 1890년. 이 작품은 그가 가셰 박사의 정원에서 그린 두 번째 그림으로서,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 작품 속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다. “나는 백장미 덩굴과 그 속을 산책하는 흰색 옷을 입은 인물의 습작을 하나 그렸어. 흰색 옷을 입은 사람은 바로 가셰 박사의 딸, 마르리트였지.”
고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짚더미>이다.
고흐의 <낮잠>이다. 1889-90년. 이 작품은 동일한 주제를 다룬 장 프랑수아 밀레의 작품을 모사한 것이다. 반 고흐는 이 작품을 그리며 밀레의 원작에 충실 하려고 노력했다. 반 고흐의 <낮잠>은 밀레의 작품에서 기본적인 구도만 좌우로 바뀌어있을 뿐이며, 누워있는 인물의 자세나 배경의 모습, 전면에 놓여진 기물들의 모습은 모두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고흐는 1860년대 프랑스 농촌의 평화로움을 표현한 밀레의 장면에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덧입혔다. 반 고흐는 푸른색과 보라색, 노란색과 주황색 등을 대조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밀레의 파스텔 그림과는 다른 매우 독창적인 느낌을 만들어냈다.
고흐의 <아를의 여인, 지누 부인의 초상>이다. 1888년.
고흐의 <유진 보쉬의 초상>이다. 19세기.
고흐의 <자화상>이다. (1889년) 오렌지색은 차가운 색인 쑥색과 청록색에 의해 한층 강조되어 보인다. 또한 물결치듯 표현된 머리, 수염과 대조되는 그의 정적인 모습은 환시효과를 주는 배경의 아라베스크 무늬와 만나 한층 두드러져 보인다. 반 고흐 특유의 소용돌이 치는 아라베스크 무늬는 그가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시기부터 주로 나타난다. 당시 반 고흐는 사이프러스 나무, 하늘 등의 소재를 넘실대는 곡선의 형태로 표현했다. 이런 모습은 그가 당시 겪고 있던 고통과 불안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흐의 <이탈리아 여인의 초상(아스고티나 세라토리, 파리의 캬바레 르 탕부랭의 주인)>이다. 1887년. 이 그림 속의 여성은 화가 코로, 제롬, 마네의 전 모델이었고 반 고흐가 이 초상화를 그리기 몇 달 전에 잠시 동안 연애 사건을 일으킨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다. 반 고흐는 인상주의와 일본 판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 초상화는 반 고흐가 관심을 보인 이 두 가지 영역이 그의 그림 속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 속에서 보이는 비대칭의 테두리, 그림자나 원근법이 사용되지 않은 양식화된 인물, 단색의 배경은 일본 판화의 특징과 일치한다.
고흐의 <구리꽃병의 왕관패모꽃>이다. 1887년. 이 작품 속에 표현된 패모꽃은 봄에 피는 백합과의 알뿌리 식물이다. 따라서 빈센트 반 고흐가 이 작품을 그렸던 때에는 봄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작품 속의 종은 19세기 프랑스와 독일의 정원에서 자란 왕관패모꽃이다. 각각의 뿌리로부터 뻗어 나온 하나의 긴 줄기에 오렌지-레드 계열의 꽃이 세 개에서 네 개 정도 핀다. 그런데, 작품 속의 구리 화병에 꽂혀있는 꽃을 보면, 고흐가 단지 하나 또는 두 개의 뿌리가 있는 패모꽃을 그린 것으로 파악된다.
고흐의 <생 레미 드 프로방스의 세인트 폴 병원>이다. 1889년. 그림 왼쪽에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는 이미 단순한 나무가 아니고, 뒤편의 건물들과 그 위 하늘도 눈에 보이는 대로의 사물이 아니다. 모든 사물은 두터운 외관을 벗어버리고 생명의 가장 원초적인 힘으로 충만해 있다. 나무와 집과 하늘 그리고 땅과 인간마저 하나의 움직임 속으로 끌어드리는 역동성이야말로 작가의 이성이 마비되었음을 보여준다.
고흐의 <몽마르트의 선술집>이다. 1886년. 파리 몽마르트르에 도착한 지 반년만에 그려진 이 그림은 당시 빈센트가 몽마르트르를 소재로 그린 많은 풍경들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특히 그 구도와 화법은 이미 향후의 그의 걸작으로 꼽히는 『오베르-쉬르-우아즈 성당』, 『낮잠』등에서 보여주게 될 반 고흐 고유의 화법을 그대로 예시하고 있다. 자신의 일상 주변을 소재로 한, 근경도 원경도 아닌 시점, 풍경과 인물에 대한 즉흥적 표현으로 과장되지 않은 인상, 그리고 적극적이며 강렬한 터치는 인상주의와 사실주의를 동시에 추구한 그의 화법을 부족함 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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