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술관/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에드와르 마네

boriburuuu 2020. 10. 23. 13:22

마네의 <발코니>다. 화면에 화가 베르트 모리조, 기르메, 첼로 연주자 판니 클로가 등장한다. 이들의 어깨 너머에는 마네의 아들 레옹의 모습이 보인다. 역시 고야의 작품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모네는두 명의 여인이 입고 있는 순백색의 의상과 실내 배경의 어두운 색조에 대비시키고 있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 유명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다. 화면 속 인물들의 포즈는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팜>을 모사하여 제작한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판화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마네가 진정한 모델로 생각한 것은 16세기 티치아노의 <전원음악회>다. 두 명의 남성(한명을 동생인 외젠이다)과 그가 아끼던 모델 빅토린 뫼랑과 뒤의 한 여인이 등장하는 그림인데 마네는 거장의 작품을 근대적으로 표현하려 했을 뿐이나 커다란 스캔들에 휩싸였다. 그림속의 여인은 도전하듯 관객을 바라보고 있고 전혀 이상화되지 않은 나체이며 남자들은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다. 여인의 왼쪽 아래에는 빵, 과일바구니, 물병 등의 정물이 있다.

마네의 >작은 받침대 위에 놓인 모란 꽃병>이다.

마네의 <가슴을 드러낸 금발 여인>이다.

마네의 <부채를 든 베르트 모리조>이다.

마네의 <테이블 위의 과일 정물>이다. 아래는 모네의 <정물>이다.

마네의 <조르주 클레망소의 초상>이다.

마네의 <독서: 마네 부인과 아들 레옹 코엘라>이다.

마네의 <피아노를 치는 마네부인.>이다.

마네의 <제비꽃 장식을 단 베르트 모리조>다. 마네는 1868년 팡탱 라투르의 소개로 베르트 모리조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림 속의 이 젊은 여인은 그림을 배우고 있었으며, 곧잘 루브르박물관에서 옛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곤 했다. 모리조는 곧 마네와 절친한 사이가 되었고, 1876년에는 마네의 막내 동생과 결혼한다. 그녀는 마네를 위해 여러 차례 모델이 되어주었고, 오르세미술관의 걸작 ‘발코니’를 위해 다른 모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마네는 깊이 있는 시선에 섬세하고 각진 얼굴을 한 그녀의 색다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녀의 매력적인 얼굴과 눈은 마네의 검은색에 감싸여 화사하게 빛난다. 이 초상화는 마네가 그녀를 모델로 그린 그림 중에서 말년 작품에 해당한다. 작품의 모델인 모리조는 당시 인상주의 화가였다. 여성화가가 등장한 것은 당시가 격변기였음을 말해준다. 제국주의의 파급 속에서도 시민의식이 대두하고 의무교육과 언론집회의 자유가 확보되어, 인상주의를 근대화의 산물로 본다. 흑백의 대조가 눈을 사로잡아 모리조 부인의 미모가 더욱 살아나는 작품이다.

마네의 <로슈포르의 탈출>이다.

 

마네의 <바닷가>이다.

마네의 <투우장>이다.

마네의 <스페인 무용수 로라 드 발랑스>이다.

마네의 <흰 모란꽃 가지와 화훼용 가위>이다.

마네의 <마네의 부모인 오귀스트 마네 부부>이다.

마네의 <모란꽃과 화훼 가위>이다.

마네의 <에밀 졸라의 초상>이다. 에밀 졸라는 <올랭피아>, <피리 부는 소년>에 찬사를 보내 주어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 유명한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졸라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고 손에는 책이 있어 문학가라는 것이 나타난다. 벽에는 올랭피아가 걸려 있고 일본 판화 한 점과 벨라스케스 사본이 보인다. 이 그림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예술적 교감을 나누었던 졸라에 대한 오마주인 동시에 친구 졸라를 이상을 통해 표현한 마네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마네의 <부채와 함께 있는 여인, 니나 드 카이아스>이다.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이다.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온 후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작품을 모델로 하여 제작한 걸작이다. 모델은 친구인 르조슨 사령관이 데려온 황제 친위대의 피리부는 소년이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소년은 중앙에 당당하게 서 있으며 색채도 붉은색, 검은색, 흰색의 대비 효과에 의존한다. 깊이감을 부여하는 것은 소년의 발 아래 생기는 그림자다.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마네의 <올랭피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