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인도2

셋째날 꾸뜹 미나르 유적. 아그라로 이동

boriburuuu 2016. 3. 13. 18:10

어제 저녁부터 건기인데도 비가 엄청 많이 왔다. 아침식사를 하려고 하니 비 때문에 옥상에서 식사를 할 수 없어 방으로 음식을 날라다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암틈 인도에서는 매일 아침 한차례 전쟁을 치러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침 산책을 나가보니 역시 숙소 앞은 시장이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나 부지런하게 문을 연 상점도 있었고 앞에는 주로 옷가게가, 안쪽으로는 음식 등 상당히 큰 시장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배가 고팠는데도 음식의 파리떼 때문에 사먹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꾸뜹미나르도 역시 두번째 방문이다. 술탄국의 첫군주이자 노예왕조의 시조인 꾸듭 웃 딘 에이백이 세운 72.5m의 승전탑으로 힌두 왕조를 멸망시킨 이슬람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1193년에는 4층이었으나 1326년 새로운 수도 피러자바드를 건설하며 5층으로 개축했다. 당시는 지붕에 둥근 돔이 있었는데 1829년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가운데 새겨져 있는 아라비아 문자는 코란의 구절로 이슬람식 장식이다. 얼마전까지는 내부 계단을 통해 정상까지 올라갔으나 지금은 폐쇄중이다. 미나르는 미나레트의 인도식 발음으로 탑을 의미한다.


<아라비아 문자로 된 코란의 구절>

다음으로 현대 과학기술로도 설명할수 없는 쿠와트 알 모스크의 쇠기둥이 잇었다. 제작된 시기는 4세기 경으로 추축되는데 철의 함량이 99.99%까지 나오는데 이것은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주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1,00년간 노천에서 비바람을 맞고 서 있는데도 녹이 전혀 슬지 않는 것은 현대 과학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쇠기둥을 양손으로 안아 깍지를 끼우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단다. 그래서 철조망으로 가려서 들어가지 못하게 보호하고 있다.

< 해명이 불가능항 고대 유물'오파츠' 쇠기둥>

다음은 '이슬람의 힘'이란 의미의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이다. 인도 최초의 이슬람 사원으로 에이백은 27개의 힌두교사원을 파괴한 후 잔해 가운데 쓸만한 것을 골라 이 모스크를 지었다고 한다. 이런 철저하고 굴욕적인 재활용 덕에 이 기둥은 모든 우상을 거부하는 이슬람 모스크 답지 않고 힌두교적인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모스크 북서쪽에는 무덤처럼 벽돌을 쌓아 올린 또 하나의 승전탑인 알라이 미나르가 있는데 건설을 계획했던 알라 웃 딘 왕이 고작 1층을 완성하고 암살되어 미완성의 상태이기 때문에 탑처럼 보이이는 않는다. 만약 이 탑이 완성되었으면 거대한 꾸뜹 미나르가 보잘 것 없어 보였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1층 둘레가  25m,  꾸뜹 미나르가 15m이다.

날씨가  좋지 않아 비가 오락가락한다. 일라이 미나르 안쪽에는 에이백의 후계자였던 일투트미쉬의 무덤이 있다. 인도 최초의 이슬람식 돌무덤으로 잔디와 함께 쉴만한 몇 개의 기단을 갖고 있었다.

아그라로 이동을 해야하는 우리는 서둘러 대통령궁과 정부 청사들이 있는 지역으로 갔다. 내부는 겅개하디 않아 기념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대통령 궁>

다음으로 간 곳은 인디아 게이트이다. 비가 너무 쏟아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룸메이트와 함께 정신 없이 달려갔다 왔다.

<인디아 게이트 내외부>

이동중에 휴게소에서 잠깐 정차했는데 문 앞에서 전통 복장을 한 아이들이 연주와 춤을 선보이며 구걸(?)을 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를 여핼할 때면 기념품이나 사탕 등을 준비해 가서 전달해 온 나로서도 인도의 수많은 거지들을 대할 때면 항상 당혹스러워졌다. 과연 돈을 조금 주는 것이 좋은지 아님 버릇이 나빠지니까 무시해야할지를 놓고 항상 갈등해서 가이드인 하와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마음 내키는데로 하란 답이었다. 참 인도는 복잡한 나라였다.

세시간 쯤 달려 오후 6시 20분 경 아그라의 웃카르쉬 빌라 호텔레 도착했다. 내일은 꿈에 그리던 타지마할에 간다.